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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12 16:09 수정 : 2014.05.12 17:02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 사진기자단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57

청와대 앞 경찰에 포위된 가족에 ‘순수 유가족’ 발언
“순수 유가족? 또 이간질이다. 싸우러 온 것도 아닌데…”

지난 금요일 당신의 입 구실을 하는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순수 유가족’이라는 말을 꺼내들었습니다. 그 순수 유가족 맞은편엔 불순 유가족이 있겠죠. 청와대 대변인 지킴이로 나섰던 출입기자들도 어처구니없었던지 그 뜻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유가족 아닌 사람도 있고…’라고 얼버무렸습니다. 당시 청와대 들머리에서 경찰에 포위돼 있던 유가족들의 가슴엔 아이들 영정이 들려 있었습니다. 분향소에 있어야 할 아이들 영정을 들고 나선 것입니다. 가족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영정을 들고 거리로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민 대변인의 발표를 보면, 유가족을 순수 혹은 불순으로 나누어 대처하겠다는 청와대 의지는 잘 드러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청와대 진입로에) 유가족분들이 와 계시는데, 순수 유가족분들의 요청을 듣는 일이라면 누군가가 나서서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입장이 정리가 됐다.” 그는 얼결에 그것이 정리된 청와대 입장이라고 실토했습니다. 유가족마저 침묵하고 순종하는 유가족과 따지고 행동하는 유가족으로 분리해, 전자는 보듬고 후자는 따돌리겠다는 의지를 말입니다.

권력자들이 침묵을 강요할 때 쓰는 말이 있었습니다. ‘빨갱이는 말이 많아!’ 이 터무니없는 규정은 이렇게 변용되면서 그 독성과 위협의 강도는 배가됐습니다. ‘말이 많으면 빨갱이!’ 정부 혹은 권력을 가진 집단에 대해 시비를 따지거나, 그런 집단을 비판하면 으레 이런 말을 들어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낙인인데…, 이 말 앞에서 사람들은 침묵해야 했습니다.

빨갱이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게 ‘불순분자’였습니다. 불순분자란 우리 사회를 혼란시키고 불안을 조성하고, 경제를 위축시키고, 위화감을 조성하고, 불신을 야기하는 그런 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권력을 비판하고, 시비를 따지고, 정의를 요구하고, 자유와 평화를 주장하고, 공정성과 평등을 강조하다 보면 대개 이 딱지가 붙었습니다. 이들 또한 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억압에 적당히 순응해, 숨죽여가며 살아가는 소시민을 들쑤셔 말을 하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 선동꾼이었던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마땅히 사라져야 할 독재의 유령과도 같은 말이었습니다.

유족들은 언젠가부터 이 정권의 이런 이간질과 분리 대처 속셈에 속앓이를 많이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 보상금을 더 타기 위해 생떼를 쓴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집회도 하고 거리로 나서면 야당 패거리이거나 그 정치 선동에 휘말리고 있다고 빈정거렸습니다. 분노를 행동에 옮기면 무리에 섞인 종북세력의 선동에 놀아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을 주장하는 유족들을 다른 유족들과 시민들로부터 격리시키려 한 것입니다. 종북에 휘둘린다는 수준에 이르면, 그건 협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추모의 노란 색깔엔 친노, 촛불엔 종북이란 딱지를 붙이려 한 지는 오래됐습니다.

생떼니 정치 선동이니 종북이니 하는 겁박의 말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가만히 있으라, 입을 다물라.’ 주검으로 돌아온 사람이 270명을 넘고, 아직 주검으로나마 돌아오지 못한 이들 모두가 바로 그 ‘가만히 있으라’는 책임자의 말에 따르다가 희생당했는데, 아직 서른명 가까운 실종자가 있는데도 가만히 있으라니요.

유가족들은 이미 그 경고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비통한 마음을 가누기도 힘든데, 자칫 종북에 선동꾼으로 내몰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가족들이, 결국 ‘눈 가리고 아웅’으로 확인된 한국방송(KBS) 사장의 사과를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습니다. 불순분자 혹은 불순 유가족으로 내몰리고, 정치적 이념적 선동꾼으로 매도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하고 싶은 말, 해야만 할 행동, 치밀어 오르는 슬픔과 분노를 마음껏 말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합니다. 그날 청와대 앞을 떠나기 전 한 유가족은 말을 했답니다. “순수 유가족? 또 이간질이다. 우린 싸우러 온 것도 아닌데….”

그런 두려움은 또 다른 피해자인 안산의 또래 아이들 가슴속에도 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안산 문화광장에선 안산의 고교생 2000여명이 추모 촛불집회를 열었습니다. 한 학생은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우리는 친구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언론과 사회는 우리의 이 마음을 정치적 이념 대립이나 세대간 갈등으로 왜곡하지 말아 주세요.” 왜 아이들이 그런 걱정을 해야 하는 겁니까. 고교생이 무엇 때문에 이념, 세대 갈등에 섞이는 걸 두려워해야 합니까. 얼마나 그런 낙인과 딱지가 나붙었으면, 그런 하소연을 했을까요. 하긴 ‘빨갱이의 시체 장사 운운’ 말까지 지껄이는 자가 있으니 더 할 말도 없습니다. 이건 민주국가도 자유국가도 아닙니다.

당신은 그날 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순수/불순의 분리가 청와대의 뜻임을 알려주는 일종의 협박이었습니다. “경제에 있어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심리가 아니겠습니까. 심리가 안정돼야 비로소 경제가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 불안이나 분열을 야기시키는 일들은 국민 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 고통은 국민들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 만약 이대로 계속 나아간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옳아, 박정희, 전두환 시절 많이 듣던 바로 그 소리입니다. 사회 불안, 분열 그리고 민생 경제 위협 혹은 북한의 도발 위험 등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끓어오를 때마다 즐겨 이용하던 협박이었습니다. 이를 앞세워 말과 행동을 막았던 것입니다. 사실 국민을 불안케 한 것도,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 것도 정부요,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케 한 것도 정권인데도 말입니다. 사실 세월호 참사를 당하고도 이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비겁한 정부를 뜯어고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나라는 망국의 길로 접어들 것입니다.

상을 당했으면, 절제와 정숙은 당연한 일입니다. 회식 자제하고 여행 덜 가고, 과시적 소비 절제하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당신의 부모님 상을 치를 때, 소비심리 위축과 경기 위축을 걱정하는 정부의 발표나, 언론의 보도가 있었습니까. 천안함의 장병이 수장됐을 때도 그랬습니까. 정부는 오히려 나라 전체를 상갓집 분위기로 조성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사실 그 일보다 더 큰 국민적 아픔이고 시련입니다.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수장되기까지 이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 국민이 제 잘못인 양 괴로워하고 있는 건 구할 수 있는 생명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실로 민생이 걱정된다면, 조용히 관계 부처장관들을 불러 ‘깨알 지시’를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대책회의 앞에 ‘긴급’까지 떡 붙여놓고, 요란을 떨었으니, 참으로 구차스럽습니다. 아무리 국민이 미련하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로 속아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수출은 호조세를 보이며 경기가 추세치를 따라 회복세를 지속했다.”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소비지표가 잡히지는 않았기에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예단하기 어려운 만큼) 사고 여파가 단기에 끝날 가능성과 장기화할 가능성에 따라 시나리오를 상정해서 보고 있다. 좀 더 지켜보고 판단하겠다.” 공직자라면 이 정도의 금도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당신에 대한 하야 요구는 자꾸만 커지고 있습니다. 양심적인 종교인과 지식인에서부터 이제 시민들에게로, 지면에서 거리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이 정부의 으름짱에, 이제 시민들은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당신네들이야말로 가만히 있으라, 이것은 주권자의 명령이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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