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청년연대 회원들과 관악 고시촌 1인 거주 청년들이 2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을 찾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청년정책 실패 인정과 사과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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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 온기가 윗목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그말
알면서 속이는지 모르고 속이는지 또 궁금
대기업 곳간 쌓이는 만큼 가계엔 고스란히 빚더미 쌓여
어느 것 하나 멀쩡한 분야 없는데
당신의 무지·무능이 준칙·경로·목표가 되는 걸 어찌할지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100
답장 없는 편지가 벌써 100번째입니다. 2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푸념도 많았고, 따지는 것도 많았고,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첫 편지에서 기대했던 애틋한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더 차가운 편이었고, 반대로 당신의 말은 생각보다 훨씬 더 경솔했습니다. 알면서 속이는 것인지, 모르고 속이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많았습니다.
처음엔 자신만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사람의 자기방어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겠거니 했습니다. ‘살아온 날들이 오죽했으면…’ 안쓰러웠습니다. 그러나 지금 드는 생각은 몰라서 속이고 알면서도 속인다는 것입니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는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의 이미지가 겹칠 지경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람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거짓말이 되풀이되기 때문일 겁니다. 당신은 입만 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아랫목의 온기가 윗목으로 옮겨가고 있다. 국회가 발목을 잡아 온기가 퍼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믿게 했으니,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만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우리 경제를 두고 ‘총체적 위기’라고 규정한 것이 얼마나 기분 나빴을까요.
청와대는 이튿날 곧바로 “근거 없는 위기론은 심리를 위축시켜 경제 활성화에 역행한다”고 노발대발했습니다. 그러면서 경기가 회복세를 타고 있으며, 아랫목의 온기를 윗목으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두고 당신의 든든한 지원자인 한 보수신문의 주필은 이렇게 개탄했습니다. “경제 실상을 깡그리 무시한 보도자료!” 게다가 임기 첫해부터 경제위기론을 앞세워 정치권을 비판한 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사실 경제성장률은 2년 연속 3%를 넘었으니 나쁜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벌어들인 돈은 대기업 곳간에만 쌓이고, 가계엔 빚더미만 쌓입니다. 분석기관마다 다르지만 10대 그룹 상장사들의 사내유보금은 지난해 503조원에서 537조원 사이라고 합니다. 천문학적입니다. 증가율은 8.1%에 이르러, 지디피(GDP) 성장률의 두 배에 이릅니다.
반면 가계 빚은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95조원에 이릅니다. 전년도보다 68조원가량이나 늘었습니다. 가계부채는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당신의 임기 첫해인 2013년엔 1000조원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증가 속도는 작년 3, 4분기의 경우 전년 대비 6.6%였습니다. 가계소득 증가율이 3% 정도였으니, 빚이 얼마나 빨리 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되었습니다. 컨설팅회사 매킨지가 한국을 7대 가계부채 위험국으로 꼽은 건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지난해 기업에게선 세금을 1조2000억원이나 덜 걷었고, 봉급생활자들에게선 3조4000억원이나 더 거뒀습니다. 가계를 쥐어짜고 또 짜고 있는 형국입니다. 담뱃세도 그렇고 연말정산도 그렇고, 가계에서 뜯어내기 위해 안달입니다.
그렇다고 기업들 형편이 모두 좋아진 것도 아닙니다.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돈이 없어 허덕입니다. 회사채 시장은 외환위기 사태 때보다 더 얼어붙었다고 합니다. 기업 경영 전망이 좋지 않은데 누가 회사채를 사주겠습니까. 돈 많은 재벌기업들도 올해 기업의 경영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라고 합니다. 현실이 그런데,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오른쪽)가 17일 오후 청와대에서 3자 회동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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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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