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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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대 논리]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철학 차이가 만든 간극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기초연금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65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기초연금 공약을 내놓았다. 이는 상대편인 민주당 공약보다 강력한 것이었다. 문재인 후보 쪽은 전체 80% 노인에게 기존 노령연금의 2배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박 후보의 공약은 어르신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지난 9월20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죄송한 마음’이라는 표현으로 기초연금 축소를 공식화했다. 정책은 전체 노인이 아닌 소득 하위 70%에게 10만~20만원씩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 선거의 결정적인 변수였던 핵심 공약을 수정하는 일은 중대한 사안이다. 두 사설은 상황의 심각성에 비추어볼 때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야 했다며 한목소리를 낸다. 특히 한겨레는 ‘공약 파기’라는 표현을 쓰며 비판의 수위를 높인다. 복지는 보통 진보진영이 앞세우는 의제다. 그러나 지난 선거에서 박 대통령은 진보정당들만큼 강한 복지 정책을 내놓았다. 이제 와서 이를 실행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공약(空約)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하지만 기초연금 축소를 바라보는 두 신문의 입장은 뚜렷하게 갈린다. 중앙은 연금 지급 대상에서 소득 상위 30% 노인들을 제외하는 정도는 ‘충분히 국민의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일’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한겨레는 ‘공약 파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비난한다. 두 사설의 논조가 왜 이토록 극명하게 달라지는가? 한겨레와 중앙의 사설에는 복지에 대한 서로 다른 철학이 담겨 있다. 이는 과거 학교 무상급식 논란과도 맥을 같이한다. 한겨레의 입장은 ‘보편적 복지’에 가깝다. 복지는 국민 모두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반면 중앙은 ‘선택적 복지’를 앞세운다. 복지는 생계가 위협받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수단이어야 한다. 살 만한 이들까지 국가가 나서서 도움을 주어야 할 이유는 없다. 둘의 입장은 팽팽한 평행선을 달린다. 중앙은 민주당을 비판하며, “부자 증세를 요구하며 소득 상위 30%에게도 기초연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한겨레는 전혀 다른 논리를 편다. 복지예산 확보를 위해 부자 감세부터 철회하고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조정하라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중앙의 비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들은 부자일수록 세금을 더 내야 하고, 혜택은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누려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복지는 사회 통합과 평등을 이루는 핵심 정책이다. 선택적 복지를 내세우는 입장에서도 한겨레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기란 쉽지 않다. 이들에 따르면 경제규모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복지비용은 경제를 굴리는 데 부담이 되며, 고소득자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복지혜택을 베푸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러니 복지가 장기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현 상황에서의 복지는 어려운 이들이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꾸리게 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고 믿는다. 단계 3 시각차가 나온 배경 논리가 상대에게 먹히지 않을 때, 표현의 강도는 높아지기 마련이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을 주요 공약을 파기하는 “독선적 국정운영”을 펴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중앙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을 향하여 “장외투쟁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이성이 무뎌진 건 아닌지” 반성해보라고 일갈한다. 두 사설 모두에는 격한 감정이 느껴진다. 과연 두 사설의 입장이 좁혀질 가능성은 없을까?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나타난 문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왜 기초연금 공약이 호소력 있게 다가왔는지부터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기초연금은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다. 모든 어르신에게 20만원을 매달 드리건, 하위 70%에게만 지급하건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박 대통령이 과연 공약을 지켰는지 못 지켰는지보다 어떻게 하면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논쟁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 중앙 사설도 복지 확대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한겨레 또한 복지 정책에 따르는 재정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다. 기초연금을 둘러싼 문제의 해법은 결국 ‘복지 정책을 확대하면서도 재정에 부담을 더는 방법’에 있다. 두 사설은 공통된 해법에 이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추천 도서]
경제쇼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왕의서재 펴냄
2013년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번역
부키 펴냄, 2011년 <경제쇼>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미래를 위한 ‘강제 저축’이다. 현재 수준보다 버거운 저축은 경제상황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소비가 주니 경제는 위축되고, 막대한 자금을 갖추게 된 국민연금 기관은 대출로 기업 활동을 옥죄려 한다. 반면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는 복지 없는 사회의 삭막함을 비꼰다. 미국은 유럽보다 소득은 높지만 삶은 더 팍팍하다. 출산에서 자녀 교육, 집 마련에서 노후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문제가 자유경쟁에 내맡겨진 미국의 현실은 보편적 복지가 퍼져 있는 유럽과 비교된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등 복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한편에서는 ‘선택적 복지’와 ‘선 성장, 후 복지’를 외치기도 한다. 두 책을 견주어 읽으며 양쪽의 핵심주장을 짚어볼 일이다.
[키워드로 보는 사설]
기초연금 논란 기초연금은 기존의 기초노령연금을 한층 강화한 것이다. 2008년부터 정부는 65살 이상 노인들 가운데 소득 수준 하위 60%에게 연금을 지급해왔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5%(2009년 기준)에 이른다. 노인 10명 중 4.5명이 빈곤에 시달리는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3배나 많다. 노령기초연금은 과거 경제발전의 주역이었지만 지금은 사회의 보살핌 없이 빈곤으로 내몰린 노인세대들을 위한 제도인 셈이다. 현재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은 매달 8만원 남짓이다. 이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있었으나, 정책대결로 떠오르는 것은 지난 대선 때이다. 문재인 후보는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과 소득 하위 80%까지 대상자를 확대하는 정책을 내세웠다. 박근혜 후보는 65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지급을 제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전세계적 경기불황으로 현재 세수 부족분은 10조원에 달한다. 하반기에도 이를 메울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기초연금수정안을 내놓았다.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만 국민연금 납입 기간에 따라 10만원에서 20만원까지 차등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수정안은 또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민이 납부한 돈으로 운영된다. 이와 달리 기초연금은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한다. 현 정부는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을 보완하는 제도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오래 납부한 사람일수록 기초연금을 적게 받게 하는 정책은 성실 납부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반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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