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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14 19:49 수정 : 2013.10.14 19:49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분석하였습니다. 다음주 10월22일에는 ‘국가기록물 관리 문제’에 대한 논제가 실립니다.

[한겨레 사설] 기초연금 공약 파기, ‘어물쩍 사과’로 넘길 일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기초연금 공약 파기와 관련해 국무회의 석상에서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실상 사과의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공약 포기는 아니며 실행에 옮기지 못한 부분은 임기 내에 반드시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우선 박 대통령의 사과 형식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노인 복지 공약의 전면 후퇴는 대통령이 국민 앞에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해도 모자랄 사안이다. 사과 대상도 당연히 전체 국민이 돼야 한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 형식으로 간접사과의 뜻을 밝힌 것부터가 이 문제에 대한 안이한 인식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다.

임기 내 기초연금 공약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이 또한 헛약속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공약 이행 여부를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국민대타협위원회에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있지도 않은 국민대타협위를 만들어 공약 이행 여부를 논의하겠다는 것은 비판을 무마하려는 눈가림용이란 의심이 든다. 그런 불확실한 헛약속을 내세우며 공약 파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65살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상위 30%를 제외하고 나머지 70%에게 10만~20만원을 차등지급하는 정부안은, 65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월 20만원씩을 지급한다는 대선 공약과는 분명 다르다. 어쨌든 현재로선 공약을 파기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공약 이행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흔적도 찾기 어렵다. 부자 감세 철회, 사회간접자본 투자 조정 등을 통한 복지예산 확보가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경제 여건이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공약을 포기하는 것은 결국 공약을 지킬 의지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 1월 “공약을 발표할 때마다 재원이 어떻게 소요되며, 실현 가능한지 따지고 또 따졌다”고 말했다. 공약을 철저히 준비했다는 것인데, 불과 8개월여 사이에 많은 공약이 공수표가 돼가고 있다. 박 대통령이 금과옥조처럼 내세운 신뢰와 원칙이 공약 이행 단계에서 크게 퇴색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경제 부흥과 일자리 창출을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여야가 서로 협력해 민생법안이 빨리 통과되도록 부탁드린다”고 한 대목도 문제다.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야당에 협력만 요구할 수 있는지 답답하다. 주요 공약은 파기하면서 야당에는 알아서 협력하라는 독선적 국정운영으로는 나라의 미래를 이끌 수 없다.

[중앙일보 사설] 박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설명 책임을 다하라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하면서 기초연금 축소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라는 발언을 했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주겠다던 계획이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 대한 차등 지급으로 변경된 데 대한 입장 표명인 셈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선 어려운 노인들은 거의 대부분(지급 대상의 90%) 월 20만원을 꽉 채워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당초의 공약을 못 지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또 박 대통령이 임기 내 반드시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으나 현재의 재정 여건을 감안하면 이 역시 어려워 보인다.

이유가 무엇이든 핵심 공약을 수정한 이상 대통령은 국민에게 경위를 직접 설명하고 흔쾌히 사과했어야 했다. 이어 앞으로의 실행 계획과 현실적인 대안을 함께 밝혀야 했다. 대통령 눈치나 보는 장관들 죽 모아놓고 아무리 ‘죄송한 마음’이라고 해 봤자 국민에게까지 사과의 마음이 전달되진 않는다.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대통령의 권위나 신뢰가 추락하는 건 결코 아니다. 최고 국정 책임자로서 국민에 대한 설명 책임을 성실히 다하라는 것이다. 사과와 설득의 고통을 피해선 안 된다.

돌이켜보면 소득 상위 30%를 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정도는 설명하기에 따라 충분히 국민의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무리한 공약을 억지로 실행한다면 우리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위험을 불 보듯 한 상황에서 초반 궤도 수정을 잘못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획일적으로 지급하는 연금이 우리 경제 형편에 합당한가 하는 근본적인 의구심도 아직 남아 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공약에 무리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결과적으로 약속을 못 지킨 데 대해 사과한 뒤, 대안을 설명하면서 정면돌파를 했어야 했다. 그게 원칙과 소신의 리더십이다. 복지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지만 재정의 부담능력을 벗어나선 곤란하다. 국민도 이를 잘 이해한다.

월 20만원이 부자에겐 강물에 물 한 방울 더하는 셈이지만 빈곤층에겐 간절한 물 한 모금일 수 있다. 제한된 재정으로 복지 효과를 높이려면 절실한 계층에 보다 두터운 혜택이 돌아가도록 정교한 전달체계를 다듬어야 한다. 그게 지금 정부에게 던져진 과제다.

한편 민주당은 기초연금 축소를 ‘공약 파기’로 몰아세우고 있다. 하지만 부자 증세를 요구하는 민주당이 소득 상위 30%에게도 기초연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모순이다. 민주당은 또 중상층 봉급생활자들의 소득세를 높이는 세제 개편안이 처음 나왔을 때 ‘세금폭탄’이라며 비난하지 않았나. 일관성 있는 논리를 찾기 어려운 자세다. 그동안 장외투쟁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이성이 무뎌진 건 아닌지 자기성찰을 해야 할 판이다. 민주당은 합리적인 비판과 현실적인 대안을 내놔야 수권정당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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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대 논리]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철학 차이가 만든 간극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기초연금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65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기초연금 공약을 내놓았다. 이는 상대편인 민주당 공약보다 강력한 것이었다. 문재인 후보 쪽은 전체 80% 노인에게 기존 노령연금의 2배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박 후보의 공약은 어르신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지난 9월20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죄송한 마음’이라는 표현으로 기초연금 축소를 공식화했다. 정책은 전체 노인이 아닌 소득 하위 70%에게 10만~20만원씩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 선거의 결정적인 변수였던 핵심 공약을 수정하는 일은 중대한 사안이다. 두 사설은 상황의 심각성에 비추어볼 때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야 했다며 한목소리를 낸다.

특히 한겨레는 ‘공약 파기’라는 표현을 쓰며 비판의 수위를 높인다. 복지는 보통 진보진영이 앞세우는 의제다. 그러나 지난 선거에서 박 대통령은 진보정당들만큼 강한 복지 정책을 내놓았다. 이제 와서 이를 실행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공약(空約)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하지만 기초연금 축소를 바라보는 두 신문의 입장은 뚜렷하게 갈린다. 중앙은 연금 지급 대상에서 소득 상위 30% 노인들을 제외하는 정도는 ‘충분히 국민의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일’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한겨레는 ‘공약 파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비난한다. 두 사설의 논조가 왜 이토록 극명하게 달라지는가?

한겨레와 중앙의 사설에는 복지에 대한 서로 다른 철학이 담겨 있다. 이는 과거 학교 무상급식 논란과도 맥을 같이한다. 한겨레의 입장은 ‘보편적 복지’에 가깝다. 복지는 국민 모두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반면 중앙은 ‘선택적 복지’를 앞세운다. 복지는 생계가 위협받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수단이어야 한다. 살 만한 이들까지 국가가 나서서 도움을 주어야 할 이유는 없다.

둘의 입장은 팽팽한 평행선을 달린다. 중앙은 민주당을 비판하며, “부자 증세를 요구하며 소득 상위 30%에게도 기초연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한겨레는 전혀 다른 논리를 편다. 복지예산 확보를 위해 부자 감세부터 철회하고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조정하라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중앙의 비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들은 부자일수록 세금을 더 내야 하고, 혜택은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누려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복지는 사회 통합과 평등을 이루는 핵심 정책이다.

선택적 복지를 내세우는 입장에서도 한겨레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기란 쉽지 않다. 이들에 따르면 경제규모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복지비용은 경제를 굴리는 데 부담이 되며, 고소득자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복지혜택을 베푸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러니 복지가 장기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현 상황에서의 복지는 어려운 이들이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꾸리게 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고 믿는다.

단계 3 시각차가 나온 배경

논리가 상대에게 먹히지 않을 때, 표현의 강도는 높아지기 마련이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을 주요 공약을 파기하는 “독선적 국정운영”을 펴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중앙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을 향하여 “장외투쟁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이성이 무뎌진 건 아닌지” 반성해보라고 일갈한다. 두 사설 모두에는 격한 감정이 느껴진다. 과연 두 사설의 입장이 좁혀질 가능성은 없을까?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나타난 문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왜 기초연금 공약이 호소력 있게 다가왔는지부터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기초연금은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다. 모든 어르신에게 20만원을 매달 드리건, 하위 70%에게만 지급하건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박 대통령이 과연 공약을 지켰는지 못 지켰는지보다 어떻게 하면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논쟁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

중앙 사설도 복지 확대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한겨레 또한 복지 정책에 따르는 재정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다. 기초연금을 둘러싼 문제의 해법은 결국 ‘복지 정책을 확대하면서도 재정에 부담을 더는 방법’에 있다. 두 사설은 공통된 해법에 이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추천 도서]


경제쇼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왕의서재 펴냄
2013년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번역
부키 펴냄, 2011년

<경제쇼>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미래를 위한 ‘강제 저축’이다. 현재 수준보다 버거운 저축은 경제상황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소비가 주니 경제는 위축되고, 막대한 자금을 갖추게 된 국민연금 기관은 대출로 기업 활동을 옥죄려 한다.

반면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는 복지 없는 사회의 삭막함을 비꼰다. 미국은 유럽보다 소득은 높지만 삶은 더 팍팍하다. 출산에서 자녀 교육, 집 마련에서 노후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문제가 자유경쟁에 내맡겨진 미국의 현실은 보편적 복지가 퍼져 있는 유럽과 비교된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등 복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한편에서는 ‘선택적 복지’와 ‘선 성장, 후 복지’를 외치기도 한다. 두 책을 견주어 읽으며 양쪽의 핵심주장을 짚어볼 일이다.


[키워드로 보는 사설]
기초연금 논란

기초연금은 기존의 기초노령연금을 한층 강화한 것이다. 2008년부터 정부는 65살 이상 노인들 가운데 소득 수준 하위 60%에게 연금을 지급해왔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5%(2009년 기준)에 이른다. 노인 10명 중 4.5명이 빈곤에 시달리는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3배나 많다. 노령기초연금은 과거 경제발전의 주역이었지만 지금은 사회의 보살핌 없이 빈곤으로 내몰린 노인세대들을 위한 제도인 셈이다.

현재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은 매달 8만원 남짓이다. 이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있었으나, 정책대결로 떠오르는 것은 지난 대선 때이다. 문재인 후보는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과 소득 하위 80%까지 대상자를 확대하는 정책을 내세웠다. 박근혜 후보는 65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지급을 제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전세계적 경기불황으로 현재 세수 부족분은 10조원에 달한다. 하반기에도 이를 메울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기초연금수정안을 내놓았다.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만 국민연금 납입 기간에 따라 10만원에서 20만원까지 차등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수정안은 또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민이 납부한 돈으로 운영된다. 이와 달리 기초연금은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한다. 현 정부는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을 보완하는 제도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오래 납부한 사람일수록 기초연금을 적게 받게 하는 정책은 성실 납부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반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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