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0시22분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서거했다. 연합뉴스
|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한겨레 사설] 끝까지 김영삼의 ‘민주화’ 정신 외면한 박근혜 정부
박근혜 대통령은 끝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해 운구를 지켜보며 고인을 배웅하는 것으로 대신했을 뿐이다. 해외순방에 따른 감기와 피로누적 등 건강상의 이유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건강보다는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쓴웃음을 짓는다.
전직 대통령의 첫 국가장에 현직 대통령이 불참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나타난 사회적 추모 열기 속에서 박 대통령은 혼자 ‘외딴섬’처럼 보이고 있는 점이다. 어느 틈엔가 ‘김영삼’의 반대말이 ‘박근혜’처럼 되어버렸다. 그것은 단지 김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악연이나, 고인과 박 대통령 사이에 형성된 과거의 껄끄러운 관계 탓만은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 꽉 막힌 불통의 리더십이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업적과 매력적인 인간적 면모가 추앙될수록 박 대통령이 초라해지는 상황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를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최근의 국무회의 발언 등을 보면 추모 열기를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박 대통령의 이런 기류는 김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읽은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일제 잔재 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세우기” 등은 말하면서도, 정작 고인의 최대 업적인 반독재 민주화 투쟁, 군정 종식 등에 대한 헌사는 거의 없었다. 민주화의 산증인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애써 외면하는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등이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꼴찌”라는 자신의 과거 발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시대 분위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 열기는 보여준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이제 박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려 할수록 마이너스 효과가 빚어지게 됐다는 점이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온 국민이 과거 독재정치 시절에 대한 ‘산 역사공부’를 하게 되면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겨냥하고 있는 박정희 시대의 미화라는 목표도 허망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긍정적 유산 못지않게 마이너스 유산도 많이 남긴 정치인이다. 박 대통령이 진정 김 전 대통령을 이기고 싶다면 고인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경계하려고 노력할 일이다. ‘통 큰 리더십’은 본받고, ‘1인 보스 정치’의 폐해는 떨치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거꾸로만 가고 있다. 냉정하고 속 좁은 깨알 리더십은 영결식 불참에서도 확인됐다. 다음 총선에서 친박 세력들을 공천하려고 발벗고 나서는 등 여전히 철 지난 보스 정치에도 매달리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경시의 문제점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다. 박 대통령은 이 시점에서 자신의 말을 거꾸로 새기길 바란다. 이대로 가다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꼴찌”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음을 말이다.
[중앙일보 사설] ‘양김 이후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권의 과제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수많은 국민이 세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분향소를 찾아 애도를 표하고 있다. IMF 환란에 가려졌던 YS의 많은 업적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열기 속에는 YS가 생전에 보여준 ‘통 큰 정치’를 계승하지 못한 채 당리당략과 정쟁만 일삼아온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역설적으로 담겨 있다.
YS와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집권을 마친 지 12년이 지났다. 그러나 정치권은 양김을 대체할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하긴커녕 퇴행을 거듭했다. 양김은 싸우면서도 도울 땐 돕는 경쟁적 협력관계로 파국을 막고 타협을 끌어냈다. 그러나 지금의 여야는 ‘밀리면 끝’이란 강박관념 아래 죽기 살기로 싸우는 ‘원수정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양김 시대와 달리 저성장·양극화·저출산·고령화의 4중고에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야의 리더들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불통과 독주, 장외투쟁 같은 구태만 되풀이한다. 경제 살리기 법안들이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어렵게 타결된 자유무역협정(FTA)이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최근엔 야당이 거듭된 내홍으로 지리멸렬해지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렇다고 지역감정과 정치자금, 제왕적 공천권에 기반했던 양김식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양김의 투쟁을 정당화해준 독재정권도, 일사불란하게 따라와주던 국민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이뤄진 지 30년 가까이 흘렀고 국민의 의식수준도 크게 높아진 지금 필요한 리더십은 ‘작고 낮은 협치의 리더십’이다. 양김 같은 영웅형 정치인 대신 정당 밑바닥에서부터 커온 생활밀착형 정치인들이 소통과 정책 능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런 리더십으로 나아가는 대신 지역주의에 기대 계파정치에만 몰두해왔다. 그 결과 YS나 DJ처럼 멀리 볼 줄 아는 전략가가 사라지고 눈앞의 이익만 쫓는 생계형 정치인들로 국회가 메워졌다. 국회가 힘도 권위도 잃으니 여당 대표는 청와대 눈치 보기 급급하고 야당 대표는 4~5개월마다 바뀌는 신세로 전락했다.
정치권이 살아나려면 스스로 개혁에 나서는 것 외엔 답이 없다. 여당은 권력자의 거수기에서 벗어나 민심과 소통하고, 야당은 정부를 몰아치면서 반사이익에만 골몰하는 대신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서로 정책으로 경쟁하되, 민생 현안에선 연대하는 협치를 실현해가야 한다. 공정한 경쟁으로 당 대표를 엄선하고, 충분한 시간과 권한을 줘 리더십을 훈련할 기회를 줘야 한다. 당을 다수 국민에게 개방해 인물을 키우는 것도 과제다.
[추천 도서]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김영삼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2015년 11월22일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47년 경남고등학교를 나와 1952년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51년 장택상 국무총리 비서로 정치에 입문하여 1954년 제3대 민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출마했다. 만 26살에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의정활동을 시작해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이후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1970년대 40대 기수론을 제창하고 김대중과 함께 박정희 정권에 맞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펼쳤고, 1990년 3당 합당에 의해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어 1992년 12월18일 실시된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42%의 지지를 얻어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93년 2월25일대통령에 취임한 김영삼은 자신의 정부를 최초의 ‘문민정부’로 규정하고 ‘신한국 창조’라는 국정 지표를 바탕으로 광범위한 개혁을 추진했다. 검찰 사정과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등 정치 개혁을 필두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제거, 국군보안사의 조직 축소와 명칭 변경, 금융실명제 실시 등 핵심적인 개혁을 통해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개혁철학과 개혁방향이 모호한 상태에서 대통령의 결단에만 의존해 개혁이 진행되면 서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다. 그 결과 임기 중 발생한 무수히 많은 사건·사고들뿐만 아니라 정경유착의 표본인 한보비리 및 차남 김현철의 국정개입 등 일련의 사건으로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설상가상으로 집권 말기에 발생한 외환위기 상황에서 아이엠에프(IMF) 관리체제를 수용함으로써 엄청난 국민적 비판 속에서 임기를 마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우리나라 민주화에 청춘을 바쳤으며, 대통령에 당선되고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지만 대통령 당선을 위해 군사정권과 손을 잡은 3당 합당과 국민들을 고난에 빠뜨린 아이엠에프 사태는 그의 그림자로, 공과 과가 뚜렷한 대통령이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