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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25 21:31 수정 : 2016.01.25 21:31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함께 구성한 지면으로 두 언론사의 사설을 통해 중3~고2 학생 독자들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비교분석하였습니다.

[한겨레 사설] 민주주의 저력 보여준 대만의 정권교체

16일 치러진 대만 선거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국민당의 8년 집권이 끝나고 다시 민진당 시대가 열렸다. 1996년 첫 총통(대통령) 선거에선 국민당이, 2000년과 2004년 선거에선 민진당이 승리한 바 있다. 선거 역사는 길지 않지만 민주주의가 착실하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승패를 가른 건 역시 경제였다. 마잉주 국민당 정권은 633공약(6%대 경제성장, 개인소득 3만달러, 3% 이하 실업률)을 전혀 지키지 못했다. 국민의 실질소득은 정체된 가운데 투기자본이 대거 유입돼 부동산 값만 급등했다. 빈부 격차가 심해졌고, 초임이 2만2천대만달러(약 80만원)인 젊은이를 이르는 ‘22K세대’라는 말이 유행했다. 국민당의 지지층인 중산층이 대거 이탈하면서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는 역대 총통선거에서 가장 큰 표차로 낙승했다.

국민당 정권의 친중국 노선 역시 심판대에 올랐다. 마잉주 총통은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국가전략으로 추진해왔다. 그 결과 중국의 관광객과 투자는 늘어났지만 국내 산업 기반은 오히려 취약해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고착돼가고 있다. 대중국 종속이 구조화한 것이다. 선거 막판에 민진당 지지자들을 결집시킬 정도로 큰 이슈가 된 ‘쯔위 사건’은 지금의 양안(중국-대만) 관계에 비판적인 민심을 잘 보여준다. 쯔위는 한국 걸그룹에서 활동하는 대만 소녀로,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가 중국 쪽의 거센 항의를 받자 결국 공개사과했다.

대만 역사상 첫 여성 최고지도자로 뽑힌 차이잉원 후보는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대만 독립이라는 민진당의 전통적인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현실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가 최대 이슈인 활력 있는 경제, 빈부격차 및 세대갈등 해소에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미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 양안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갈지도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다. 본토 출신자와 대만인의 여전한 갈등 역시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대만은 지구촌에서 몇 남지 않은 분단국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동질성이 있다. 둘 다 장기 독재정권을 경험하고 ‘아시아의 4룡’으로 불린 것도 일치한다.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볼 때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대만에 대해서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대만이 현재 겪는 문제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대만의 성공과 실패 모두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쉽지 않은 대내외 여건에서 주기적으로 정권교체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만은 우리에게 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중앙일보 사설] 대만 대선에 따른 양안 관계 변화에 주목한다

“슬퍼할지라도 포기하지는 말자.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4년 전 대만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외친 말이다. 그런 그가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 16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대만 역사상 첫 여성 지도자가 됐다.

차이잉원은 ‘대만의 딸’로 불린다. 대만의 자랑스러운 여성이란 의미가 있지만 대만 독립을 당의 강령으로 삼고 있는 민진당 출신이라는 점에서 대만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뜻도 깔려 있다. 우리가 이번 대만 대선의 결과를 주목하는 이유다. 대만의 지도자 선출은 대만 국내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중국과의 미묘한 양안(兩岸) 문제가 되기도 하고 또 미·중 사이의 가장 민감한 이슈로서 미·중 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차이잉원의 당선 배경엔 대만 경제의 침체와 경쟁 상대인 국민당의 내분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지난 8년간 집권한 국민당 출신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친(親)중국화 정책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 있다.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대만 내 산업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생겼고, 대륙으로 기회를 찾아 떠나는 인재 유출 현상도 심각하다. 대만 경제가 중국에 종속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마잉주가 추구한 중국과의 경제협력 과실은 일부 사람만 향유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았다.

대만인의 정체성 변화도 눈길을 끈다. 2008년 자신을 대만인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이 48.4%에서 2014년엔 60.4%로 뛰었다. 반면 대만인이자 중국인이라고 응답한이는 43.1%에서 32.3%로, 중국인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은 4.5%에서 3.3%로 줄었다.

차이잉원은 양안 정책과 관련해 ‘현상 유지’ 정책을 추구하겠다고 말한다. 과거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처럼 대만 독립을 서두르지도 않을 것이고 또 마잉주처럼 중국에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중국은 차이잉원의 당선에 대해 ‘대만 독립의 분열 행동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고 경계심을 나타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양안 문제를 매번 다음 세대에게 미룰 수 없다며 돌파구 찾기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양안 관계가 마잉주 때와 같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최근 한국의 걸그룹 멤버인 대만의 쯔위(周子瑜)가 한국 방송에서 대만기를 흔든 게 양안 네티즌 사이의 격렬한 감정 싸움을 유발하듯이 앞으로 양안 간 긴장은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연말 미국 대선에서 대중 강경파가 당선될 경우 양안 간 파고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미·중 갈등은 한반도 안정에 불안 요소다. 북핵과 더불어 동북아의 불안정 요인 하나가 추가된 셈이다.

양안 관계는 남북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동된다. 대만과 북한은 서로를 대(對)중국 정책의 지렛대로 활용한 적이 있다. 대만이 90년대 후반 핵 폐기물을 북한에 수출하려 했던 것이 좋은 예다. 대만 지도자 변화에 따른 양안 관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우리의 외교 및 안보 전략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때다.

[논리 대 논리]

한겨레 “대만 성공과 실패 우리에게 타산지석”…중앙 “동북아 불안정 요인 추가된 셈”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지난 16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야당인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가 국민당 주리륜 후보를 누르고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날 이루어진 총선에서도 민진당은 113개 의석 가운데 63석을 획득해, 35석에 그친 국민당에 압승을 거두었다.

이러한 선거 결과에 대해 한겨레와 중앙은 비슷한 분석을 내놓는다. 한겨레는 “승패를 가른 건 역시 경제”라고 잘라 말한다. 중앙 또한, “차이잉원의 당선 배경엔 대만 경제의 침체”가 있다고 평가한다.

대만 경제의 어려움을 낳은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서도 두 사설의 입장은 비슷하다. 8년 전 대만 대선에서 국민당 마잉주 후보는 “양안 모두 이익을 얻기 위한 출발점은 경제와 문화 교류의 정상화”에 있다고 호소했다. 나아가, 중국과의 전면적인 ‘통상’, ‘통항’, ‘통우’라는 ‘대삼통’ 정책을 내세워 총통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앙과 한겨레는 이러한 정책이 오히려 대만 경제에 독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중앙은 대만인들이 품고 있는 “마잉주 총통의 친중국화 정책에 대한 경계심”을 소개한다. 2008년 이후, 중국과의 교역은 50%나 늘었고 대만 무역의 중국 의존도도 30% 가까이 치솟았다. 그럼에도 대만은 극심한 경제 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중앙의 지적대로,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대만 내 산업 공동화 현상이 생겼고, 대륙으로 기회를 찾아 떠나는 인재 유출 현상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겨레 또한 대만 경제의 “대중국 종속이 구조화”되는 모습을 꼬집는다. “중국의 관광객과 투자는 늘어났지만, 국내 산업 기반은 오히려 취약해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고착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대만 분리독립주의자인 차이잉원 후보가 당선된 데에는 이러한 양안 관계의 불편한 현실이 놓여 있다.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하지만 차이잉원 후보의 당선을 바라보는 두 사설의 시선은 완전히 엇갈린다. 한겨레가 대만의 ‘민주적 정권 교체’에 강조점을 둔다면, 중앙은 국제 정세 변화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한겨레는 국민당 집권 8년 동안 무너져 내린 대만의 경제 상황을 조목조목 파고든다. “마잉주 국민당 정권은 633 공약(6%대 경제성장, 개인소득 3만달러, 3%이하 실업률)을 전혀 지키지 못했”으며, “빈부 격차가 심해졌고, 초임이 2만3000대만달러(약 80만원)인 젊은이를 이르는 ‘22K세대‘라는 말이 유행”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묘한 기시감을 준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유행하며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는 우리 현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겨레는 “지구촌에서 몇 남지 않은 분단국이라는 점에서 (대만은) 우리나라와 동질성이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게 한다.

“대만이 현재 겪는 문제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대만의 성공과 실패 모두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는 한겨레의 평가에는 4·13 총선이 서서히 다가오는 즈음에 우리 사회에 던지고 싶은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 보인다. 이 점은 “주기적으로 정권교체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만은 우리에게 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는 사설의 결론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단계 3 시각차가 나온 배경

반면, 중앙은 우리나라의 상황보다는 차이잉원 후보 당선으로 생길 수 있는 동북아 정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차이잉원은 대만 분리독립의 이론적 기반인 “양국론”과 “일국일변론”을 내세운 장본인이다. 지금으로서는 양안 정책에 있어 ‘현상 유지’ 정책을 앞세우나, 언제고 대만의 독립을 주장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중앙이 “앞으로 양안 간 긴장은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하는 이유다.

나아가, 중앙은 “중국이 차이잉원의 당선에 대해 ‘대만 독립의 분열 행동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고 경계심을 나타냈음”도 지적한다.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북핵과 더불어 동북아의 불안정 요인 하나가 추가된 셈”이라는 중앙의 평가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동서 냉전시대, 갈등의 중심에는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그러나 냉전의 산물인 지금의 양안 관계, 나아가 우리 정치의 핵심에는 ‘경제’가 있다. 두 사설은 차이잉원 후보의 당선을 우리 정치에 끼치는 영향과 동북아 정세변화라는 서로 다른 측면에서 평가 분석한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에 ‘경제’가 놓여 있다는 점에서는 두 사설의 생각이 같아 보인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추천 도서]

새로 만든 먼 나라 이웃나라 14: 중국2-현대편

이원복 지음, 김영사 펴냄, 2012년


[추천 도서]

또 다른 중화, 대만

지은주 지음, 김영사 펴냄, 2015년

‘중화민국’을 세운 국민당은 공산당을 탄압하고 몰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국민당과 공산당은 손을 맞잡는다. 이른바 ‘국공합작’이다. 일본이 물러나자, 둘은 또다시 싸움을 벌였다. 부패하고 무능했던 국민당 정부는 마침내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쫓겨 갔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마오쩌둥은 1949년,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다. <먼 나라 이웃나라 14: 중국2-현대편>은 이렇듯 양안 관계가 형성된 과정을 잘 설명해준다. 1992년, 한중수교에 따라 우리나라는 중국의 요구로 대만과 외교관계를 끊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와 대만은 정치와 경제에 있어 무척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가까운 이웃이다. <또 다른 중화, 대만>은 대만의 속살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보여준다.


[키워드로 보는 사설]

“중국과 대만의 양안 관계”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흔히 ‘양안 관계’(兩岸關係·Cross-Strait Relation)라 불린다. 그 이유는 두 나라가 상대방의 정부를 서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1949년,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패한 직후, 중국 본토에는 중국 공산당이 세운 중화민공화국이 들어서고 대만에는 국민당의 중화민국 정부가 옮겨오며 오늘날까지 대결구도를 이어오고 있다.

양안 관계 초창기, 대만은 중국과는 ‘접촉하지도 않고, 협상도 하지 않으며, 대화하지 않는다’는 삼불정책을 앞세웠다. 중국 또한, 무력에 의한 대만통일을 주창했다. 양안의 관계는 덩샤오핑이 ‘1국가 2체제’, ‘통상’, ‘통우’, ‘통항’의 3통 교류정책을 펼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후, 양안 사이의 경제교류는 크게 늘어났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중국과 대만의 무역액은 무려 6배가 늘었으며, 2000년에서 20013년 3년 사이에도 6배 증가했다. 인적 교류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2008년 3월 마잉주 총통이 당선되자, 양안 관계는 더 한층 밀접해졌다. 중국과 대만은 비공식 정상회담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대만 경제에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면서, 중국으로 공장과 인력이 대거 빠져나갔다. 지난 8년간 대만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85%에 그쳤고 실업률은 4.47%로 치솟았다.

이에 따른 반발로 2016년 대선에서는 대만 분리독립을 주창해온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이 총통으로 선출되었다. 차이잉원 총통은 아직까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명칭과 해석은 각자 맡기로 한 ‘92년 공식’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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