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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31 16:12 수정 : 2006.09.01 14:30

청계천로 주변에 있는 이 건물이 렌즈 안에 들어왔다.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건물의 치장인데 꼭 설치미술 작품 같다. 아직 어떤 건물인지 모른다.

퇴근길은 멀리 돌아가는 잠실대교 길로 풍경도 좋지만 역사가 경이롭다
강북에 붙은 ‘반도’ 잠실이 조선시대 홍수로 허리 뚝 한강 4대 섬으로 남았다가 70년대 물막이
잠실은 강남으로 이사가고 갇힌물은 석촌호수로


홍은택의 서울 자전거여행 ⑧

아무래도 출근길은 마음에 여유가 없다. 시간이 부족해 항상 질러가는 길을 찾게 된다. 1시간 20분 걸리는 잠수교 노선에서 50분대의 동호대교 노선으로 변경한 뒤에는 한 동안 동호대교 노선에만 매달렸다.

스타일을 중시하는 라이더들을 보면 아침에 언제 그걸 다 챙기는지 존경스럽다. 헬멧에다 고글을 쓰고 선크림을 바르고 얼굴이나 머리를 버프라고 하는 얇은 두건으로 감싸고 장갑을 끼고 종종 이어폰도 꽂고 간다. 몸에 딱 달라붙는 사이클복을 입는 것은 기본이고 헬멧 속에 모자도 쓴다. 약간의 변형도 있어서 버프 대신 마스크 그것도 공사판에서 쓰는 방진 마스크에다 자외선 차단 마스크까지 두 겹으로 쓰고 가는 사람도 봤다. 기록 측정용 전자시계도 찬다. 거기에다 갈아입을 옷, 속옷이나 양말도 챙겼을 테고. 펑크가 날 때를 대비해서 손 공기펌프와 여분의 튜브, 육각 렌치와 같은 기본적인 도구도 있을 테고. 물통에 물이나 영양 음료도 담는다.

나는 아침에 보통 생각한 시간보다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경황이 없어 그 많은 것들을 챙길 자신이 없다. 그래서 처음엔 고글을 쓰고 다니다가 안 쓰게 되고 장갑도 끼다가 안 끼는데 이건 정말 나쁜 버릇이다. 장갑은 꼭 끼어야 한다. 왜냐면 사고가 나 자전거가 넘어질 때 맨손으로 땅바닥을 짚으면 아플까 봐 머리나 어깨로 땅바닥을 박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래 내가 그렇다. 나는 단추가 있는 옷조차 싫어하는 편이다. 단추 꿰는 시간이 아깝다. 겨울에 목까지 올라오는 스웨터, 여름에는 티셔츠를 주로 입는 것도 단추 꿰기가 귀찮아서다. 끈 달린 신발이나 구두도 질색이어서 여름엔 주로 샌들을 신고 다닌다. 끈 안 달린 게 없어서 할 수 없이 신을 때는 끈을 건드리는 법이 없다.

처음엔 꼬박꼬박 쓰던 마스크도 벗어버리고 헬멧과 모자만 쓰고 간다. 내 머리로는 사소한 것들을 챙기다 보면 중요한 것을 빠뜨릴 수가 있으니까 복장과 장비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어떨 때는 팬티를 안 가져가서 청바지의 지퍼에 털이 걸리지 않도록 내내 신경이 쓰인 적도 있었다. 한번은 집 밖을 나서는데 뒷바퀴의 타이어가 주저앉았다. 튜브에 펑크가 난 것이다. 다행히 멀리 가지 않았다. 손 펌프도, 여분의 튜브도 안 갖고 다니기 때문에 중간에 고장이 났으면 아침 여행이 어려웠을 것이다. 귀국 이후 처음 겪는 일이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펑크를 때우던 미국 여행의 순간들이 상기되면서 일순 여행자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축적된 노하우로 펑크 때우는 것쯤은 여유 있게 할 수 있다.

더 다행스런 것은 집으로 돌아와 튜브를 갈고 다시 나가다가 책상에 그 날 입을 옷을 그대로 놓고 온 것을 깨달았다. 하마터면 패드를 달아서 사타구니 부분이 툭 튀어나온 팬츠와 요란한 사이클 저지를 입고 하루 종일 근무할 뻔했다. 그 복장은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왜 저렇고 있대. 맨날 자전거를 타고 다니더니 완전 맛이 갔구나.' 동료들의 빈정거림이 들리는 듯했다. 그날은 외국 TV 방송국에서 인터뷰하러 오는 날이어서 희한한 쇼를 국내외로 보여줄 뻔했다. 나의 애기인 자전거는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튜브에 구멍을 내는 자해를 감행함으로써 주군의 망신을 예방한 셈이다.


항상 허겁지겁 집에서 뛰쳐나오는 것은 출근시간이라는 압박 때문이다. 출근시간은 직업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은 출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출근 전 사람들이 읽거나 마실 아침 신문이나 우유를 배달하는 분들,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깨끗한 거리와 사무실을 선사하는 청소원들, 출근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버스나 택시, 지하철을 운전하시는 분들. 그 다음으로 빠른 사람들은 미래에 출근할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다. 등교시간이 보통 아침 8시 이전이기 때문에 그 때까지는 학교에 도착해야 한다. 반면 대학교수들이 좋은 것은 출퇴근 시간의 압박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팬티 두고 온 날 ‘노팬티 고역’

잠실운동장이 마치 서울에 사뿐히 내린 우주선처럼 잠실에 자리잡고 있다. 이 잠실이 강 건너 자양동에 붙은 반도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공무원의 힘이 클 때는 관공서의 출근 시간이 사회적 출근 시간의 기준이었다. 90년대 중반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내세우면서 아침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을 그룹의 출퇴근 시간으로 선포했을 때 기존 질서에 대해 반기라고 생각했다. 그 때의 내 생활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기 때문에 불온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나는 하루 16시간씩 일했다. 아침 6시에 집에서 나와 민자당 원내총무 시절의 이한동씨 서초구 염곡동 댁으로 출근했다. 밤에는 다시 염곡동이나 민자당 사무총장이던 문정수씨의 잠실 댁을 들렀다가 퇴근했다. 자정 이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었다. 그 때 정치부 기자들은 집에서는 아침을 못 얻어먹는 처지인 것처럼 정치인의 집들을 가가호호 돌아다녔다. 동교동의 김대중, 상도동의 김영삼뿐 아니라 서초동의 김윤환, 성산동의 최형우, 세검정의 권노갑씨와 같은 실력자들의 댁을 순례하곤 아침 메뉴를 비교하곤 했다.

사실은 삼성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이제 그들은 그 길고 긴, 마치 퇴근 후 새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은 오후 시간을 마음껏 향유하게 될 것이다. 이 회장에게는 실제로 세상을 바꾸려는 야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삼성처럼 큰 기업이 출퇴근시간을 바꾸면 많은 하청기업도 그에 맞춰야 한다. 출퇴근시간이 바뀌는 것은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이고 결국 사람이 바뀔 수 있는 변화의 시작이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부러워할 일은 아니었나 보다. 당시 삼성에 다니던 젊은 직원들은 널널한 오후 시간보다는 꼭두 새벽 출근의 어려움을 토로하곤 했다. 한국의 직장문화에서는 출근시간은 있어도 퇴근시간은 없었다. 회사에서는 오후 4시에 퇴근하라고 요구하는데 일이 그 때 마무리되지 않으니 사무실에서 또는 집에서 숨어서 일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그 뒤 삼성은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으로 한발 물러섰다. 지금은 태평로 삼성 본관 같은 곳을 밤늦게 지나가다 보면 불이 다 꺼져 있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자동 소등하고 주차장의 출입구도 폐쇄한다고 한다. 일종의 야근 단속이다.

반대로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의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다. 이것은 삼성과는 반대 방향에서의 반역이다. 지각하기 매우 어렵게 출근시간을 정해놓은 것이다. 사람들을 틀에 맞추려 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습관에 출근시간을 맞춘 것이다. 어떤 게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인 노동생산성 향상에 기여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을 다변화하려는 노력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러시 아워의 교통을 분산시키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출퇴근 시간도 선택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전체에 맞춰 살길 요구받는 우리에게는 삶에서 선택의 가짓수가 늘어날 필요가 있다.

출근시간 엄수가 출근의 이유인듯

그래도 아직은 아침 9시가 기준 출근시간이라는 것은 가끔 지각해서 9시를 넘어서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가다 보면 안다. 출근 전쟁의 팽팽한 긴장이 갑자기 풀어진 느낌. 사람들은 나른한 표정까지 짓는다. 운전자들도 한결 여유 있다. 어쩌면 시간 맞춰 출근한다는 게 출근하는 이유의 전부인 듯한 착각까지 든다. 오전 9시 20분쯤 시내 고층 빌딩 1층에는 일단 상사에게 눈도장을 찍고 나서 우르르 자판기 커피 한잔에 담배 한대 피러 나온 사람들이 모여 있다. '오늘도 임무 완수'를 자축하고 있는 듯하다.

반면 퇴근시간은 여유롭다. 내게는 동호대교 노선을 벗어날 기회다. 선택이 풍부해진다. 내가 정한 노선들 중에서 많이 돌아가지만 자전거 타기에는 좋은 노선은 잠실대교 노선이다. 이 노선으로는 서울의 도심 부근에서 수서까지 자전거 도로만 타고 다닐 수 있다. 만약 청계천 보행자 전용로에 자전거 주행을 허용했다면 광화문에서 수서까지 자동차를 신경 쓰지 않고 강변과 천변만 따라서 오갈 수 있다.

이 노선은 광화문에서 청계천로를 따라 동진하다가 마장동 우시장 있는 데서 청계천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자전거도로는 중랑천을 따라 가다 살곶이 다리를 지나서 입석포라는 곳에서 두 갈래 길이 된다. 직진하면 동호대교로 가고 다리로 좌회전 하면 잠실대교로 향하게 된다. 잠실대교는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설치돼 있다. 잠실대교를 건넌 뒤에는 방향을 바꿔 서진, 잠실종합운동장을 끼고 탄천을 건너자 마자 좌회전해서 탄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양재천을 만나 집으로 돌아간다. 대략 2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치고는 대장정이다.

이 구간은 경치도 좋지만 경이로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원래 잠실이 강북의 자양동에 붙은 반도였다는 사실. 5백만 평이나 되는 큰 대지를 뚝 떼어서 강남으로 붙였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만약 잠실이 강북에 그대로 있었다면 오늘날의 강남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70년대 강남개발은 서쪽에서는 구반포, 동쪽에서는 잠실이 이끌었다.

홍은택/〈아메리카 자전거 여행〉〈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잠실의 강남 이전은 홍수와 근대화의 합작이었다. 일단 첫 삽은 물이 떴다. 조선 시대 큰 물난리가 나서 잠실 반도의 허리를 뚝 끊어버렸다. 한번 덮친 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 신천강이 됐다. 이것을 지질학에서는 하천 도둑질이라고 한다. 새로운 지류가 생겨 본류의 물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강북에서 분리된 잠실은 다행히 강물에 떠내려가지 않고 남아서 여의도 난지도 저자도와 함께 4대 섬이 됐다. 물줄기를 강도당한 본류는 그래도 원한강 또는 송파강이라고 불리면서 목숨을 부지했는데 70년대 초반 택지개발이라는 날벼락을 맞아 숨을 다했다. 잠실 땅을 눈독 들이던 서울시는 잠실의 북동쪽에 제방을 쌓고 원한강 쪽을 메워버렸다. 갈 곳 없는 물은 석촌 호수로 남았고 잠실의 강남 이사가 마무리된 것이다.

이를 건널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이렇게 자연의 협조가 있다면 몇 백 년 뒤에는 강북에 신세를 갚기 위해 구반포나 압구정동을 강북으로 떼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강남북 경제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황당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서울에서 오래 살다 보면 서울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아니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대담한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강은 살아 있다.

홍은택/〈아메리카 자전거 여행〉〈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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