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회원 여러분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건우, 김대근, 김환철, 박건영, 배동한, 비열한(별명), 이재훈, 이홍섭, 정석명, 정연희, 최종규씨. 이분들이 해주신 얘기들을 연재기에 녹여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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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익명성과 자유를 사랑하면서 자동차 위주의 무질서 속에서 자신의 질서 찾아가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카페에 가입 가상의 공간에 인연의 덫을 놓았다
홍은택의 서울 자전거여행 ⑪ 출퇴근 길의 서울 여행은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도중에 밥도 먹어야 하고 물도 마셔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말을 틀 기회가 있다. 서울에서는 출퇴근 길이 아니더라도 말 건네기가 어려운 분위기다. 우리는 말문이 열리는데 시간이 걸리는 문화다. 더구나 출퇴근 길에 휙휙 지나치는 사람들을 붙잡아 세워놓고 자전거와 인생을 논하자고 하기는 더 어렵다. 한강 고수부지 구간에서는 이제 마주치는 사람들의 낯이 익지만 말을 건넨 적은 없다. 딱 한번 사진을 찍기 위해 어느 날 아침 지나가는 라이더들을 손짓해서 세운 적이 있었는데 라이더들은 착한 것 같다. 고맙게도 열이면 열 모두 자전거를 세우고 촬영에 응해줬다. 미안해서 더 말을 잇지는 않았다. 나만 그런 아쉬움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줄여서 ‘자출사’>의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면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하는 글들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오늘 아침 오목교 부근에서 노란 자출사 저지를 입고 가신 분을 봤는데요. 미처 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반갑습니다.” 이 카페 회원들은 자출사의 로고가 적힌 노란 저지를 입고 다닌다. 가끔 나를 알아보고 확인하려는 글도 있다. “혹시 오늘 청담대교 밑에서 가볍게 목례하고 지나간 분이 혹시 홍은택씨 아니었나요?” “(알아봐 주셔서 눈물겹게 고마워요) 예, 저 맞아요.” 이게 인터넷 시대의 교유법인지도 모른다. 물리적 공간에서의 스침을 가상적 공간에서 인연으로 발전시킨다. 처음엔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은 참으면서 같은 관심사에만 화제를 집중시킨다. 그러다가 번개 모임을 통해서 아날로그적 접촉으로 이어지고 술 한 잔 같이 하면서 끈끈한 친분으로 선순환한다. 어쨌든 그 단계에 가기 전까지는 서로의 익명성과 자유를 존중한다. 건축가 김진애씨는 ‘진짜 도시인’의 조건을 네 가지로 표현했다. 첫째 도시의 익명성을 사랑하는 사람 둘째 도시의 자유를 즐기는 사람 셋째 도시의 무질서를 견딜 줄 아는 사람 넷째 도시의 무질서 속에서도 자신의 질서를 찾을 줄 아는 사람. 나는 라이더들이 이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익명성과 자유를 사랑하면서 자동차 위주의 무질서 속에서도 자신의 질서를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내게는 익명성 뒤에 숨은 그들의 얼굴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대기오염으로 뿌옇고 경적으로 소란스러운 서울을, 그것도 가장 바쁜 출퇴근 시간에, 유유히 페달로 누비고 다니는 이들은 누구인가. 나도 인터넷 방식의 해법을 찾았다. <자출사> 카페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가입한지는 꽤 됐지만 수줍어하는 편이어서 인사가 늦었습니다. 서울 도심 주행을 위해 80일간의 미국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홍동지, 정식으로 인사 드립니다. 혹시 혁명동지라는 호칭에 거부감을 느끼신다면 제가 말하는 혁명이 자전거와 자동차 그리고 보행자들이 나란히 통행할 수 있는 평등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라는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단순한 교통혁명 이상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만.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서울에서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했습니다. 동지 여러분께서 닦아놓은 길로 매일 아침 여행하면서 여러분들의 선도적 투쟁이 없었으면 과연 제가 매일 이 길을 무사히 다닐 수 있을까, 감사한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뒤 한국에서도 자전거를 자동차의 도로 동반자로 만들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시다시피 자전거는 19세기의 유물이 아니라 환경친화적이고 인본주의적인 21세기의 첨단 교통 수단입니다. 인간의 삶을 편하게 하는 교통수단이 때로는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는 흉기로 돌변한다는 모순, 더구나 전혀 살의도 없이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순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자전거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자전거가 운동의 수단만 아니라 주요한 교통 수단으로 확립될 때 도시인의 삶뿐 아니라 도시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믿고 저 역시 그런 노력에 동참할 것을 다짐합니다. 가입인사를 겸해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경험하시다시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고 말하면 주위 직장 동료들이나 친지들로부터 경외의 대상이 되거나 보통은 무모한 '또라이'로 취급 받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딱 달라붙는 팬츠나 울긋불긋한 셔츠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희한하다'는 눈길을 받을 만도 합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존경받을 만한 위인도 아니고 또 모험을 일삼는 또라이도 아닙니다. 어쨌든 주위사람들의 이 같은 반응에서 사람들이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하기 어려운 심리적 장벽이 있다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자전거-보행자 평등의 꿈 저는 그래서 우리 동지들이 단지 몸을 쓰는 것을 좋아할 뿐이지, 얼마나 정상적인 사람인가를, 그리고 자출이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으면서 생활에 윤기와 원기를 더해주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저는 신문에 자전거 출퇴근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기에 여러분들의 모습을 소개함으로써 자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한번 만나뵙고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미국 전지훈련에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처음 횡단한 한국인으로 간주된다는 점 때문에 이 트레일을 창시한 그레그 시플의 국립 자전거 초상 컬렉션에 들어가는 과분한 영예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미국 횡단보다 사실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은 한적한 시골길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회적인 경험입니다. 서울에서 짜증섞인 자동차들의 틈바구니에서 매일 자전거를 달리는 것은 기술과 안전 그리고 의지의 측면에서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을 오래 해오신 고참 혁명 동지께 경의를 바치면서 앞으로 자출사 초상 컬렉션을 만드는 게 어떨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훗날 자전거 혁명에 성공할 때 혁명전사의 모습은 명예의 전당에 길이 보관되리라 믿습니다만 우선 제가 신문에 쓰는 서울 자전거 여행 연재기에 소개함으로써 그 단초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저는 6월24일 오후 2시부터 광화문 발바리 공원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특별히 자격 제한은 없지만 1년 이상 자출 해오신 분들을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뒤 같이 떼 잔차질에 참여해 종착지인 여의도에서 가능하면 시원한 음료수 한 잔 같이 하면 좋겠지요. 혹시 이 때 시간이 안 되는 분들을 뵙기 위해 다음날 오전 10시에 다시 같은 장소에서 두 시간 동안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한 바퀴 한 바퀴 돌릴 때마다 세상이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공유하며, 홍동지 올림” 약간의 용어 해설이 필요한데 먼저 광화문 발바리 공원은 미대사관 옆 공원을 뜻하고 발바리는 두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의 준말이라고 한다. 떼잔차질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집단주행을 뜻한다. 발바리는 그런 떼잔차질을 기획한 자전거타기 모임의 이름이기도 하다. 발바리는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 4시 전국 도심 한복판에서 떼잔차질을 주동하는데 서울의 출발지가 바로 미대사관 옆 공원이어서 이 공원을 발바리공원이라고 부른다. 김기태라는 분이 99년에 발바리라는 모임을 첫 제안했다고 하니까 역사가 꽤 됐다. 별명으로 통성명 묘한 해방감 글을 모임 닷새 전에 띄웠는데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댓글이 8개밖에 달리지 않았다. 워낙 회원들의 활동이 활발해서 내 글은 금방 초기화면에서 밀려났다. 할 수 없이 사흘 앞두고 같은 내용을 다시 띄우자 반응이 달랐다. 제목을 '홍동지 인사드립니다'에서 '존경하는 혁명동지께'로 바꾼 게 주효했다. 순식간에 댓글이 50개 달렸다. 그 중의 한 편을 소개하면 “혁명동지” 가슴 뭉클함을 느낍니다. 자전차가 중심이동수단이 되는 나라 자전거 길이 나라에서 제일 긴 나라 어린이 자전차와 할머니, 청년 자전차가 함께 가는 나라 자전차운전자와 자동차운전자가 웃으며 인사하고 지나갈 수 있는 나라 우리나라가 자전차 강국이 되는 나라 동지가 혁명을 말할 때 혁명은 시작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자출사의 뜨거운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알고보니 내가 제안한 날짜는 넷째 주 토요일이었다. 떼잔차질은 벌써 일주일 전에 끝났다. 순전히 나를 만나러 오시라고 한 격이 됐다. 나는 이렇게 세부적인 데 약한 게 흠이다. 과연 몇 분이 오실까 걱정하면서 발바리 공원으로 가는데 설상가상 자전거 안장이 뚝 부러져나갔다. 자전거포에 들려 수리해서 공원으로 갔더니 이미 한 20분 늦었다. “스펜서입니다” “어라이언입니다” “자전거다입니다” “아기돼지입니다” “고무신입니다”… 당황스러웠다. 공원에 열 분 남짓 모여 있는데 모두 별명으로 자기를 소개했다. 엉겁결에 나도 "홍동지입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수습기자 시절 실컷 취재하고 취재원의 이름을 안 적어온 악몽이 생각났다. 이 분들은 혹시 신원을 밝히길 꺼리는 게 아닐까.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선선히 본명을 말해준다. 단지 가상 공간에서 별명을 써왔기 때문에 별명으로 먼저 얘기해야 통할 수 있을 뿐이었다. 별명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즐거운 일이다. 인생을 이중주로 연주하는 듯한 기분이다. 우리 이름에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하지만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하는 유교주의적 관계가 스며있기 때문에 약간의 해방감도 느껴진다. 실제 만나면 별명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환상이 깨질 때도 있고 오히려 호기심이 더 생길 때도 있으니 반전의 묘미도 있다.
홍은택/〈아메리카 자전거 여행〉〈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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