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광화문에서 출발, 동대문을 찍고 종로 서대문 마포를 거쳐 종착지인 여의도로 향해 마포대교를 달리는 라이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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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들도 도로의 이용자라는 존재감 드러내기
‘크리티컬 매스 운동’은 전세계 200개 도시로 확산
길가에서 눈칫밥 먹다 그날만은 가슴을 편다
떼잔차질은 본의아니게 정치적 행위가 되고 만다
홍은택의 ‘서울 자전거 여행’ ⑫/b>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 회원들 열 몇 분과 함께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주행하면서 새삼 떼거리 자전차질에 내재된 혁명성을 알게 됐다. 혼자 시내를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주행할 때는 느껴지지 않던 불온한 시선을 받게 된다. 운전자들의 반응이 더욱 예민해진다.
<자전거다> 김환철님이 앞장섰는데 그는 오른쪽 버스 전용차선의 왼쪽 파란선을 잡고 갔다. 그러니 버스와 승용차의 거센 흐름 사이에 끼여서 양 옆구리가 여간 간질간질한 게 아니다. 내 주행습관은 도로의 오른쪽 가장자리로 가면서 정차된 차나 버스가 있으면 피해서 가끔 도로 안으로 들어가는 것. 아마 이렇게 가면 자전거의 행렬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인 듯하다.
가장 위험한 구간인 아현 삼거리와 마포대교 진입로를 지날 때는 파란선 줄타기가 더욱 아슬아슬해졌다. 이화여대 쪽과 일산방면으로 갈라지는 우회전 자동차들과 차례로 흐름이 X자로 엉켰다. 신경질적으로 빵빵대는 연쇄적 경적에 나도 김기태님이 쓴 대로 곧 히스테리 환자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떼잔차질’을 주동한 터여서 사고날까 조마조마했다. 보행자들이나 버스의 승객은 볼거리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운전자들의 일부는 우리를 길의 틈입자로 대했다. (내가 운전자들의 반응을 아는 것은 그 때 한국의 떼잔차질족인 발바리들보다 크리티컬 매서들은 전투적이다. 토요일 오후 4시 출발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주로 금요일 오후 퇴근시간에 떼잔차질을 시작한다. 가장 교통량이 많은 시간을 일부러 골라 몇 개 차선을 장악하며 도도하게 주행한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했을 때 라이더들이 느낀 해방감은 8.15 광복에 못지 않았을 것이다. 길가에서 눈칫밥을 먹던 라이더들은 그 날 하루만큼은 도로 복판에서 가슴을 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참석자의 자전거에 펑크가 난 게 경찰의 주의를 끈 발단이었다. 동지애를 발휘하기 위해 모두 멈춰서 펑크를 때울 때까지 기다려줬다. 일순 교통이 마비됐고 경찰들이 덮쳤다. 교통질서 방해라는 이유로 범칙금이 부과되고 자전거를 압수당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월례 주행이 있을 때마다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며 라이더들을 감시했다.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는 듯한 기미만 보이면 차도로 들어가 라이더들을 심지어 구타하고 체포했다. 한 여성이 두 손을 등 뒤로 꺾인 채 아스팔트에 얼굴을 갈며 누워 있고 육중한 체격의 남성 경찰관이 그 여성의 등을 무릎으로 찍어 누르며 수갑을 채우는 야수적 광경도 촬영됐다. “자전거 거부감 키운다” 반대도 크리티컬 매서들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운전자들에게 꽃을 나눠주는 화전 양면으로 월례 집단주행을 계속했다. 소송에서도 대부분 이겼고 지금은 자동차들이 이들의 주행코스를 피해나가는 상황으로 역전됐다. 이 운동은 로스앤젤레스, 뉴욕, 시카고, 텍사스주 오스틴, 오리건 주 유진 등 미국 내 30여개의 도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14개국 200개 도시로 뻗어나갔다. 한국 발바리도 크리티컬 매스와 조직적 연계는 없지만 그 연장선 상에 있다. 그러나 크리티컬 매스는 도시 자전거계의 한 분파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자동차에 대한 전투적인 태도가 자전거에 대한 거부감을 키운다며 떼잔차질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크다. 떼잔차질을 놓고 노선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세가지 노선이 있다. 첫째 차도에서 자동차를 몰아내자, 둘째 차도에서 자동차와 똑같이 행동하자, 셋째 차도만으로는 안되고 자전거 전용도로도 많이 만들어 편하게 타자. 편의상 제 1 노선은 주로 환경주의자들이 제창하는 것으로 공해를 유발하고 인명을 살상하며 유한한 화석연료를 고갈시키는 자동차들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제 2 노선은 더도 덜도 말고 자전거가 자동차와 똑 같은 대접을 받는 세상을 꿈꾼다. 제 3노선은 자전거가 차도의 정당한 동반자인 것은 물론 약자로 인정받고자 한다. 제 1노선은 현실성이 약하고 내가 제2, 제3 노선으로 분류한 라이더들 간에 러시아 혁명 당시 맨셰비키와 볼셰비키의 대립을 연상케 하는 논쟁을 벌이고 있다. 만약 운전자들을 부르주아지, 라이더들을 프롤레타리아로 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제2 노선은 부르주아지와의 타협을 꾀한다는 점에서 맨셰비키, 3노선은 1노선만큼은 아니지만 볼셰비키를 닮았다. 제2 노선은 도시주행 이론의 창시자로 꼽히고 있는 존 포레스터가 ‘효과적인 사이클링’에서 제창한 것으로 그의 추종자들은 ‘차량주의자(vehicularist)’라고 불린다. 이 노선의 전제는 자전거는 자전차라는 것이다. 차니까 자동차와 똑같이 대우 받아야 하고 행동도 똑같이 해야 한다가 그 행동강령 1조다. 그러니 떼잔차질을 벌여 자동차들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탈된 행동으로 규정된다. 이들은 자전거 전용도로의 개설에도 반대한다. 자전거용 전용도로를 만드는 순간 운전자들로부터 “왜 자전거도로로 가지, 차도로 오느냐”는 말이 나오게 돼 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차도 안에서 버텨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3 노선의 비차량주의는 자전거가 자동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도가 자동차만의 것은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자전거용 도로를 많이 만들 것을 주창하는 한편 차도로 갈 수 있는 자전거의 권리를 지키려고 한다. 그 권리를 선전하는 방법이 떼잔차질이다. 그들은 떼잔차질이 교통의 흐름을 막는 게 아니라 그 역시 교통의 흐름으로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투쟁이라고 간주한다. 두 노선 모두 자전거를 대중적 교통수단으로 확립하려는 목적에서 같다. 방법론에서 갈라지는데 차량주의자들은 자전거가 차도로 다닐 때만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고, 비차량주의자들은 자전거를 타는 게 안전한 행위라고 설득할 수 있을 때만이 대중이 자전거를 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어쩜 방법론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세계관의 충돌일지도 모른다. 내 눈에 차량주의자들은 유심론자, 비차량주의자는 유물론자로 보인다. 아직 누가 옳은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아직도 크리티컬 매스에 도달하지 못했다. 자전거시대가 개화하기 전 자동차시대로 직행한 미국 역사의 그늘이 깊다. 차량주의-비차량주의 노선 투쟁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몸을 쓰는 것을 좋아할 뿐이지, 정치적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주행하는 것은 아니다. 소란스런 정치를 잊기 위해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자전거 타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일이 되고 있음을 알고는 놀랄지도 모른다. 사실 떼잔차질이 그렇다. 그것은 사회 자체를 바꾸려는 '불온한' 생각과 연관돼 있다. 그들이 꿈꾸는 대로 떼잔차질에 수십만 명이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세상은 자동차의 체증을 앓고 있는 지금의 현실과 확연히 다를 것이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것이다. 한국 경제의 견인차가 되고 있는 자동차회사나 관련 부품 업체들, 자동차보험회사, 정유회사는 물론 갈수록 좋아지는 시민들의 건강에 울상 짓는 병의원들이 떼잔차질에 맞서 총궐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현실성 있는 예상이 아니다. 사실 한국은 자전거 후진국 미국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현실이다. 인구 천만 명의 서울에서 매달 한번 열리는 발바리 떼잔차질에 참여하는 수는 200명 안팎이다. 혁명역량을 과시하는 시가행진이라기보다는 한 달 동안 죽지 않고 살아있는 라이더들의 점호에 불과하다. 10월21일 처음으로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떼잔차질에 참여했다. 한이아빠가 출발 신호를 보내고 깸용이 선두를 달렸고 많은 분들이 참가자들을 보살폈다. 내가 주동해서 열댓 명과 함께 주행할 때와는 비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한 차선 가득히 채우며 2시간 가까이 도심을 누볐다. 문제의 아현삼거리와 마포대교 진입로도 전혀 위태롭지 않았다. 200명만 참가해도 이 정도인데 만약 1천명이 참가한다면 라이더들에게는 큰 물결과 같은 연대의식과 든든한 안정감, 운전자들에게는 이 운동의 폭발적 잠재력을 깨우치는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럼 나는 비차량주의자인가. 잘 모르겠다. 그건 내가 유심론자인가 유물론자인가 묻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직 노선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이르지 못했다. 그 때까지는 어느 노선인지를 따지는 것은 관념적 유희일 뿐인 것 같다. 어느 쪽이든 자전거가 내 생활에 주고 있는 가치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홍은택/〈아메리카 자전거 여행〉〈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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