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택/〈아메리카 자전거 여행〉〈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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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줄행랑치는 날 쫓아와 따귀를 갈겼다
두번째 사고는 고2때 내리막길서 행인 ‘쿵’
다행히 사이다 반병 값에 합의를 봤다 내가 낸 첫 교통사고는 1976년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 서울의 외곽도로였던 남부순환도로는 한산했다. 낙성대에서 신림동쪽으로 가려던 나는 봉천 사거리에서 빨간 신호등에 걸리자 좌우를 살폈다. 교차방향(봉천동-서울대)에서 오가는 차가 없는 걸 확인한 뒤 페달을 세차게 밟았다. 10m도 채 못 가 왼쪽에서 갑자기 택시가 오른 쪽으로 틀었다. 그대로 들이박았다. 택시의 후사경이 깨졌고 나는 아스팔트에 나뒹굴었다. 이것은 위의 그림에서 표시된 충돌 유형 4번에 가까운 사고다.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자동차와 도로 가장자리에서 직진하는 자전거의 충돌. 물론 사고는 어느 한쪽 또는 둘 다 교통법규를 위반해야 일어난다. 교통법규를 양쪽에서 잘 지키는데 사고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 사고의 경우엔 돌이켜보면 둘 다 위반이었던 것 같다. 택시는 2차선에서 우회전을 시도해 차선을, 나는 신호를 위반했다. 그때는 잘잘못을 가리고 합당한 책임을 따질 만한 나이가 아니었다. 내가 몸을 추스려 일어나는, 택시 아저씨가 차를 세우고 나오는 사이 “야, 너 잡히면 큰일나. 빨리 튀어” 라는 소리가 들렸다. 혼날까봐 떨고 있던 터라 행인이 툭 던진 그 한 마디가 돌격 명령이 됐다. 자전거를 급히 일으켜 세워 올라탔다. 택시운전 아저씨가 “아니 저 XX” 하면서 화급히 택시로 돌아가는 게 곁눈질로 보였다. 승객도 있어 보였다. 택시가 신호등에 걸려 있는 틈을 벌 줄 알았는데 왠걸 아저씨가 녹록하지 않았다. 신호를 무시하고 따라 붙었다. 필사의 탈출이 시작됐다. 나는 대로로 가면 잡힐 것 같아 중간에 좁은 골목길이 있는 주택가로 샜다. 신림천이 나오자 좌회전해서 천변을 달렸다. 주변은 초점거리가 맞지 않는 비디오로 촬영한 것처럼 온통 뿌옇게 바뀌고 심장이 터지도록 페달을 돌렸다. 달리다 뒤를 흘끗 쳐다보니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천변길은 울퉁불퉁한 흙길이어서 택시가 달리기에는 적합치 않다. 그러나 자전거도 잘못 주행하면 오른쪽의 하천으로 곤두박질 칠 수 있다.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는데 저 멀리서 자동차 한대가 뿌연 흙먼지를 뿜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차가 이 좁은 길에서 질풍노도처럼 달릴까 하는 생각이 ‘아이구 딱 걸렸네’ 하는 탄성으로 바뀌는 순간, 택시와 자전거는 정면 충돌 직전에 멈춰 섰다. 택시 기사는 내가 골목길로 빠져들어갈 때 몇 골목 더 앞쪽에서 우회전, 천변 길을 만나 우회전한 뒤 훑어내려 왔던 것. 겁에 질린 사슴처럼 더 이상 도망칠 엄두를 못 내고 ‘맹수’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아저씨는 달려와서 내 뺨을 시원스럽게 갈겼다. 고개가 푹 제쳐지는데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내 무릎이 보였다. 내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참담했다. 사고 경험에서 뼈저린 교훈
그 다음 사고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방배동 언덕에 있던 용민이 집에서 밤늦게까지 놀다가 돌아가는 내리막길이었다. 평소 다니던 길이어서 치달아 내려가던 중 찻길로 걸어가던 행인을 뒤늦게 발견했다. ‘피해야 하는데’ 하는 순간 쾅 들이박았고 나는 자전거에서 튕겨져 나가 3, 4m 전방에 떨어졌다. 다행히 머리로 먼저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쳤다면 나보다 행인이 더 다쳤을 것이다. 걱정이 돼서 가보니 행인은 똑바로 누워서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의식을 잃은 건 아닐까. 몸을 흔들며 “아저씨, 괜찮으세요” 라고 물었다. 아저씨는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는 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귀를 갖다 대 들어보니 “얼마 전 자동차에 치여 머리를 다쳤는데 그 자리를 다시 다친 것 같다”는 것 아닌가. 아저씨 입에서는 술냄새가 났다. 말을 정상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큰 부상은 아닌 것 같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이전 사고에서 얻은 부상까지 다 뒤집어쓸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럼 병원으로 가시죠” 라고 말하는데 아저씨는 몸을 반쯤 일으키더니 “그러지 말고, 사이다 한 병 사주라”고 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보니 50원이 나왔다. 그 때에도 사이다 한 병에 100원은 했다. 그거라도 주고 가라고 해서 합의금 50원으로 수습했다. 내가 부끄러운 얘기를 쓰는 이유는 사고를 통해서 사고를 피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사고를 내보라고 권하는 건 아니다) 그 뒤로는 한 동안 사고를 내지도, 당하지도 않은 것 같다. 사고를 통해 뼈저린 몇 가지 교훈들을 얻었던 것이다. 자전거 교통사고 통계를 봐도 2004년 263명이 자전거를 타다가 목숨을 잃었는데 이중 15살 이하는 12명이었고 15~20살은 불과 4명, 21~30살 7명, 31~40살 5명으로 15살 이상 40살 이하의 인구 중에서 사망자가 극히 적다. 이것은 나이가 들수록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자전거를 탈수록 안전주행능력이 늘어서, 또는 사고를 내봐서 사고를 회피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일 테다. 91년 자동차 315대에 1명꼴, 2005년 2352대에 1명꼴 사망
차가 많아질수록 사고율이 낮은 것은 체증 덕분
차라리 3천만대쯤 되면 목숨 잃는 일이 줄지 않을까 그런데 다시 41살부터 급격히 사망자 수가 늘어난다는 점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41~50살 29명, 51~60살은 35명으로 급증하다가 61살 이상 연령대에서 170명이 목숨을 잃었다. 급속한 근대화 이전부터 자전거를 타던 세대들이 여전히 많이 타고 있다는 점과 같은 사고를 당해도 허약한 건강 상태를 반영하는 것일 테다. 내친 김에 통계 얘기를 이어나가면, 요즘 자전거 인구가 늘어서 사고건수도 늘어나고 있다고들 생각한다. 사실이다. 하지만 1990년 560명이 자전거를 타다 사망한 것에 비춰보면 사망자 수가 14년만에 53%나 줄었다. 전체적으로 교통 사고 사망자수가 급감하고 있는 반가운 추세다.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희생된 해는 91년이다. 무려 1만3429명이 그 해 사망했다. 그게 지난해에는 6376명으로 줄었다. 그 때는 차가 424만대였다. 자동차 315대에 1명 꼴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올해는 1500만대가 넘는다. 자동차 2352대의 한 명꼴이다. 보통 많이 쓰는 통계인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숫자로 비교하면 31.1명에서 13.2명으로 격감했다. 차량 대수가 세 배 이상 늘었는데 사망자 수가 반 이상 준 것은 운전자들의 안전의식이 높아진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차량의 평균 속도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차가 많아지니까 천천히 갈 수밖에 없고 사람을 쳐도 살살 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1970년의 사고 통계와 견주어보면 분명해진다. 그 해 3069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차량대수는 불과 12만8000대. 운전 면허증을 가진 사람은 40만명밖에 안됐다. 차 39대 당 1명의 사망자수. 그 비율로 지난해 사망사고가 났다고 하면 35만명이 희생됐을 가공할 수치다. 70년대 이후 사망자 23만명의 명복을 꾸준히 사망사고율이 내려온 탓에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30개 회원국 중 인구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수에서 부동의 1위를 달려오던 한국은 2005년에 처음으로 5위로 내려앉았다. 어차피 자동차를 없애는 방향으로 갈 수 없다면 차라리 자동차가 한 3천만대쯤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등장한 자동차 때문에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은 현저히 줄어들 테고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 사이로 막 가는 자전거의 유용성은 더욱 빛나지 않을까.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에서 펴낸 OECD 회원국들과의 비교 통계를 읽다 보니 2004년 인구 10만 명 당 교통사고 건수에서 1위가 일본(743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뒤를 미국이 676건으로 좇고 한국은 503건으로 5위. 일본의 교통사고 발생률이 높다는 것도 의외지만 치사율이 낮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교통사고 100건이 나면 일본에서는 0.9명이 사망해 회원국들 중 최하위였다. 반면 한국은 3명이 사망해 세 배 이상 높았다. 이게 무슨 민족적인 기질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일본에서는 쪼잔하게 사고를 많이 내고 한국에서는 한번 내면 화끈하게 낸다. 근원적 이유는 한국의 높은 보행자 사망률에 있다. 우리는 2004년 교통사고 사망자의 40%가 보행자였다. OECD 회원국들 중 압도적 1위다. 반면 승용차 승차 사망자의 비율은 23.8%로 가장 낮다. 보행자의 사망자 비율이 높으면 후진국형 교통사고국으로 분류된다.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마구 자동차를 몬다는 뜻이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일부 운전자들에 대해 분개하는 것도 이런 약육강식적인 태도 때문이다. 교통사고 사망률이 감소하는 가운데 2004년과 2005년을 비교해보면 유일하게 자전거 사망자수만 263명에서 303명으로 늘었다. 자전거 타는 게 더 위험해졌다기보다는 자전거 인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2004년 OECD 회원국들에서 교통사고 사망자 중 자전거 승차자의 비율이 가장 많은 나라는 자전거의 천국으로 불리는 네덜란드(18.3%)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2위는 자전거 인구가 역시 많은 일본(14%)이었다. 한국은 불과 3.5%. 한국이 안전한 게 아니라 불안해서 사고도 덜 나는 것이다. 한국에서 자전거 승차자의 교통사고 사망비율은 인구 10만명당 0.5명이다. 이것은 4.8명인 자동차 탑승자, 5.4명인 보행자보다 현저히 낮고 1.8명인 오토바이 탑승자보다 낮다. 그만큼 자전거 타는 게 안전하다는 뜻은 역시 아니다. 정확한 비교를 하려면 주행시간 당 사망자 수를 집계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93년에 조사된 행위별 위험도 비교에 따르면 1백만 시간당 사망자 수에서 1위는 스카이다이빙으로 나왔다. 128.71명. 말려야 할 이유가 있는 스포츠 같다. 다음은 항공기 조종으로 15.58명이고 오토바이가 8.80명으로 3위를 차지했다. 스쿠버 다이빙이 1.98명으로 4위이고 5위는 살면서 온갖 이유로 사망하는 사람수로 1.53명. 자동차 운전은 0.47명으로 8위를 기록, 11위인 국내선 항공기 탑승(0.15명)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전거는 1백만 시간을 주행하면 그 중 0.26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조사돼 10위였다. 자전거 타는 게 운전하는 것보다 안전하다는 얘기다. 과연 우리도 그럴까 싶지만 자동차와 자전거의 공존문화가 정착되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목표라고 본다. 70년 이후 교통사고로 사망한 23만4998명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출처: bicyclesafe.com
번역 및 요약: 철인 3종계의 거목인 계명대 교통공학과 강승규 교수님
http://kts.pe.kr/IBAS/collision_type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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