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청 앞 분수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나도 출근길에 땀을 씻어내기 위해 분수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아직 해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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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단거리 동호대교 노선으로 굳어진 어느날
이태원 남산로 우회하는 최고의 여행을 했다
탁한 숨이 터져 나오고 종아리가 팽팽해졌다 여행 기분을 내며 자전거 출퇴근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여행과 같지 않다. 출퇴근과 여행 모두 출발지와 목적지가 있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여행은 매일 목적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또 꼭 가야 할 목적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필연적 목적지가 있는 출퇴근과 다르다. 내가 굳이 자전거 출퇴근을 여행으로 비유한 것은 과정의 관점에서 봤기 때문이다. 필연적 목적지가 없다는 것은 출발지도 없다는 것이고 결국 여행은 과정이라는 말이 된다. 출퇴근도 목적지와 출발지를 오가기는 하지만 그 과정을 즐길 수만 있다면 여행과 같지 않을까. 목적지와 출발지가 매일 똑 같으면 목적지와 출발지로서의 의미도 없어질 테니까. 또 방향에서 보면 무정향적 여행과 정향적 출퇴근이 정반대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수서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여러 루트를 탐험하면서 정향성을 탈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 여행의 무정향성을 추구하면서 출퇴근의 정향성도 확보할 수 있는 양수겸장의 묘수라고 믿었다. 더구나 매일 여행을 마치면 따뜻한 샤워도 할 수 있고 푸근한 침대에 몸을 누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여행’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아침 목적지인 직장이 끌어당기는 힘은 셌다. 어느 날부터인가 최단거리인 동호대교 노선으로 굳어졌다. 아침 시간에 20분만 더 일찍 출발해도 다양한 노선들을 섭렵할 수 있을 텐데 동호대교 노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설령 부지런을 떨어서 20분 먼저 출발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항상 일찍 직장에 가서 할 일이 있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니 점점 여행이 아니라 출퇴근, 무정향성이 아니라 정향성, 자유자재가 아니라 직진의 삶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천혜의 입지에 자리한 삼성가 한 여름의 어느 날 나는 동호대교를 지나쳤다. 보이지 않는 삶의 장막을 뚫고 나가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한남대교를 타 봐야지. 시간의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마 지난해 미국 횡단할 때 입었던 노란 색 챔피언 저지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왠지 노란 저지를 입으면 모험심이 발동한다. 레이서들은 노란 색 저지를 잘 입지 않는다. 투르 드 프랑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저지의 색깔이 노란색이어서 노란색은 우승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레이서가 아니라 라이더여서 속도를 다투지 않기 때문에 단지 챔피언의 도전정신을 배우기 위해 노란 저지를 입는다. 노란 저지를 입으면 왠지 속도도 더 붙는 것 같다. 옷이 날개다. 아니면 아침에 몸의 상태가 괜찮았기 때문에 노란 저지에 손에 갔는지도 모른다. 물론 고정된 틀에서 탈피하고 싶은 욕구가 결정의 근저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오랜만에 여행다운 여행, 아니 최고의 여행을 시작했다. 한남대교는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진입할 수 있도록 와선형 통로가 있다. 다리를 건너서 순천향 병원, 주한 타이 대사관을 지나 이태원으로 올라섰다. 만만치 않은 고갯길이다. 해밀턴 호텔의 오른편 골목길을 타고 하얏트 호텔까지 가는 새봄길은 더 가파르다. 동호대교 노선이 밋밋해서 자극이 필요했던 내 몸은 새 도전에 후끈 달아오른다. 폐 깊숙이 고여있던 탁한 숨이 나오고 허벅지와 종아리의 힘줄이 팽팽하게 긴장한다. 마지막에는 안장에서 일어나 묵중하게 올라오는 페달을 버겁게 밟았다. 그렇게 오른 남산순환도로를 휘돌아 내려갈 때의 상쾌함이야말로 이 노선의 절정이다. 오른쪽은 남산의 숲, 왼쪽은 산 아래의 서울 전경이 펼쳐진다. 소월길이라고 불리는 남산순환도로는 70년 전에 생겼다. 염복규씨가 지은 <서울은 어떻게 계획되었는가>(살림, 2005)에 따르면 일제는 1936년 남산의 남쪽 기슭에 전원도시를 계획하고 삼각지에서 신당동에 이르는 4.9 km의 길을 남산주회도로라는 이름으로 부설했다. 전원도시는 20세기초 에베네저 하워드가 주창한 것으로 런던의 근교에 세워진 레치워스가 효시다. 일제는 당시에 꽤 유행하던 이 신도시의 개념을 부분적으로 도입했는데 그 입지가 장충동과 약수동, 이태원 일대였고 일본인이 밀집 거주하던 용산과 연결한 도로가 바로 남산주회도로였던 것. 도심과 자연적으로 격리돼 있으면서도 교통이 좋은 지역이었다. 지금도 부촌인 이태원은 서울의 도심을 등지고 한강을 바라보는 천혜의 입지를 자랑하고 그 중에서도 삼성가에서 지은 리움 미술관은 뛰어난 경관을 선사한다. 1936년은 서울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한 해였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해방을 기점으로 서울의 역사가 새로 시작된 게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는데 염복규씨의 글은 불연속성의 연속성으로 서울의 역사를 조명했다. 그에 따르면 1936년 경성 시가지계획으로 ‘거대도시’ 서울이 탄생하게 된다. 원래 태조가 서울을 수도로 정할 때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연결하여 약 18㎞의 도성을 쌓게 하고, 성에서부터 바깥쪽으로 10리까지를 한성부의 관할로 삼았다. 그런데 일제 총독부가 1914년 전국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서울(경성)의 행정구역을 4대문 안과 일본인 거류지였던 용산으로 축소했다. 갑자기는 서울의 땅콩 모양이 됐다. 그러나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인구가 폭발하고 땅값이 뛰자 총독부는 1936년 인접 1읍 8면 71개리 전부 및 5개리 일부를 경성에 통합하는 경성부 행정구역 확장안을 발표했다.
남대문을 지키기 위해 출근하는 병사들을 횡단보도에서 마주쳤다. 처음엔 아직도 조선 시대인줄 착각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이 병사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시는 분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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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도 훈련이 될 뿐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을 심어준다
숨은 매력은 약수터 호젓한 숲속 명상도 선물 영등포 유지들 서울로의 합병 반대 이 안에 따라 경성부의 면적은 3.5배 증가해 강남을 제외한 오늘날 서울과 유사한 모습을 띠게 된다. 염복규씨에 따르면 당시 공장들이 몰려 있던 영등포읍의 읍회는 서울로의 합병에 반대해 의원들이 전원 농성에 돌입하는 등의 심한 반발을 보였다고 한다. 독립운동은 아니었고, 읍의 부가 서울로 유출되는 것을 싫어한 영등포 유지 집단의 반발이었다고 한다. 식민지 시대에서도 계급의 이해는 작동하고 있었다. 역사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남산순환도로가 라이더에게 주는 숨은 매력은 석간정이라는 약수터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1936년에도 흘렀을 이 약수는 높은 숲으로 그늘져 더욱 차고 시원하다. 출근길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잠시 숲 속에서 땀을 식히며 호젓한 명상의 시간까지 누릴 수 있다. 석간정 이후부터는 주욱 내리막길이어서 한결 산뜻하다. 힐튼 호텔을 마주보고 우회전하면 남대문까지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는 내려갈 수 없는 경사길. 어느 날인가는 BMW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는 김성규를 마주쳤는데 오토바이를 좇아가보겠다고 가속을 하니 최소 시속 50 킬로미터까지는 족히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의 국보 1호 숭례문. 610년 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오면서 민족의 영욕을 함께 해온 조선 시대 최고의 목조 건물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재수가 좋은 날이면 남대문을 지키기 위해 출근하는 병사들도 볼 수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들을 스쳐가면서 아직도 조선시대인줄 아는 무리들이 있구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복장이 감쪽같다. 혹은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아니면 서울시청에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일까 신분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쨌든 제법 멋있다. 그리고 시청. 여름에 자출족의 가장 큰 애로는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는 것. 10월 무렵부터는 굳이 목욕을 하지 않고 물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도 되지만 한 여름에는 수건질으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수건질하는 것도 냄새 때문에 과히 유쾌하지 않다. 회사 근처 헬스 클럽에 등록해서 샤워하고 다녔지만 샤워만을 위해 비싼 등록비를 무는 것도 마뜩잖다. 그럴 때 시청 앞 분수는 '뭘 고민하니 내게로 와' 하고 손짓한다. 분수의 시원한 물줄기로 일차 샤워를 하고 사무실에 가서 수건으로 닦아내기만 하면 된다. 마침 시청 앞 분수는 수원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다.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 기증했다고 써 있는 동판까지는 접근했다. 분수는 물줄기의 밭이다. 아이들은 물줄기들을 가르며 시시덕거린다. 나도 한발만 더 들여놓으면 되는데 한 발이 천근 만근이다. 결국 돌아서고 만다. 아이들은 스스럼 없이 들어가는데 나는 왜 못 들어갈까. 체면 때문일까. 나는 가정을 하고 있다. 내가 선례가 돼서 많은 사람들이 내 뒤를 따르면 시청앞 광장이 대중 목욕탕으로 바뀌게 되지 않을까. 땟국물이 시내 한복판에서 넘쳐 흐르면 나도 좋을 게 없다. 어떤 행위를 할까 말까 결정할 때 항상 떠오르는 원칙이다.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도록 행위하라. 때로는 칸트식 겉옷을 벗고 물줄기 속으로 다이빙하고 싶다. 시청앞 분수에 뛰어들고 싶어라 시청앞 광장은 서울 도심에서는 드문 바퀴살 도로망의 중심이다. 본래 한양은 길쭉한 사각형이고 길은 석쇠형으로 배치됐다. 그리고 한양대 이주형 교수에 따르면 왕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종묘,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세웠는데 이 모두 중국의 전형적인 도시계획인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원칙을 따른 것이다. 중국 도시계획의 원조는 음양오행론에 근거한 <주례(周禮)>의 <고공기(考工記)>. 건축이나 돈의 논리가 아니라 철학 또는 이데올로기로 도시를 설계한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신기하다. 서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모두 이상도시론을 설파했으니 꼭 동양만의 얘기는 아닌 듯하다.
홍은택/〈아메리카 자전거 여행〉〈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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