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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29 08:40 수정 : 2019.04.29 10:12

가뭄으로 갈라진 땅. 픽사베이

가난한 나라 생산 17~31% 줄이고
부자 나라 생산은 10% 더 늘려줘

가뭄으로 갈라진 땅. 픽사베이
불평등 문제가 물 위로 떠오른 건 20세기 후반을 관통했던 세계적인 경제 번영이 멈추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경제가 고착화하면서 불평등 문제는 지구촌 각국의 최우선 현안이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불평등이 자가증식을 한다는 점이다. 소득불평등에서 시작된 불평등은 자산불평등, 주택불평등으로 이어지고 교육 불평등, 상속증여를 거쳐 불평등의 대물림으로 고리를 이어간다.

그 근저에는 화석연료 문명에서 기원하는 거대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증가가 유발한 기후변화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극심해진 가뭄, 폭염, 홍수, 태풍 등 이상기후와 해수면 상승이 인명과 재산, 자연과 경제 기반시설 등에 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전 세계 차원에서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가 나왔다.

미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최근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한 논문을 보면, 기후변화는 부국과 빈국 간의 경제 격차가 줄어드는 흐름을 방해했다. 연구진이 1961~2010년 기간 중 165개국 GDP와 연평균 기온 데이터를 토대로 20개 기후모델을 대입해 비교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이 기간 중 지구 온난화는 세계 최빈국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를 17~31% 떨어뜨린 반면, 선진국의 국내총생산은 10% 더 늘려줬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와 비교할 때, 세계 최빈국과 최부국의 1인당 지디피 격차는 25% 더 벌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반세기 동안 지구 평균기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지구 기온은 산업혁명 이후 섭씨 1도가 올랐다. 연구진은 "최근 몇십년 동안 국가간 경제 격차는 줄어들었지만 지구온난화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 격차는 더 빨리 좁혀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열대지역 가장 큰 피해...기후변화의 불평등 영향 첫 계량화

특히 현재 인구로 나눈 1인당 배출량이 300톤을 초과하는 19개 부국 중에서 14개국이 경제에서 지구온난화의 덕을 봤다. 1인당 지디피에서 평균 13%가 더 늘어나는 효과를 누린 것으로 분석됐다. 개도국 입장에서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80%는 한국 등 주요 20개국(G20)에서 나오는데,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자신들에게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번 연구가 아니라도 그동안 기후과학자들은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나라들이 오히려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해 왔다. 이번 연구는 이를 처음으로 수치화해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국가는 적도 부근의 열대지역 국가들이다. 10억명이 살고 있는 이 지역 국가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체의 3%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온대국가들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고위도에 있는 한대국가들은 덕을 봤다. 앞서 연구진은 지난 2015년 연평균 기온과 국내총생산의 관계를 규명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연평균 기온이 12.8도(화씨 55도)일 때 경제 성과가 가장 좋았으며, 기온이 20도(화씨 68도)를 넘어서면 손실이 컸다.

노르웨이, 석유 팔아 돈 벌고 기온 올라 생산 늘어

지리적 요인이 지구 온난화의 피해를 증폭시킨 점도 있다. 이런 곳에선 기온이 조금만 상승해도 노동생산성과 작물 수확량이 크게 변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더운 기후 지대에 있는 인도는 온난화가 없었을 경우보다 1인당 지디피가 31% 떨어졌다. 연구진은 미국의 대공황 시절과 같은 정도의 충격이라고 평가했다. 아프리카의 인구 대국 나이지리아도 29% 손해를 봤다. 중남미의 커피 생산국 코스타리카는 기후변화로 작물 질병이 확산하고 커피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지디피가 21% 줄어드는 타격을 입었다. 개도국 정부엔 이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자금이 부족해 경제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대국가에선 기온 상승이 생산성과 작물 수확을 늘려주는 역할을 했다. 예컨대 노르웨이의 기온 상승은 지구 온난화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1인당 지디피를 34% 증가시켜준 것으로 분석됐다. 아이슬란드는 무려 50%나 늘어났다. 특히 석유 수출국 세계 5위인 노르웨이는 석유를 팔아 돈도 벌고, 기온 상승으로 생산성도 좋아지는 `이중의 혜택'을 본 셈이다.

온대국가들은 큰 영향 없어...국가내 불평등에도 관여

중위도의 온대국가들이 받은 영향은 크지 않았다. 세계 3대 경제대국인 미국은 -0.2%, 중국은 -1.4%, 일본은 -1.1%의 부정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산됐다. 연구진은 온대기후 국가들에 끼친 영향력은 10%가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부국들의 이중이득과 빈국들의 이중손해 문제가 향후 기후변화협상에서 어떻게 상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연구 결과에 비춰보면 기후변화는 국가간 불평등뿐 아니라 각 나라 안의 지역간, 계층간 불평등도 악화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우리 사회만 보더라도 이상기후에 취약한 곳은 주로 저소득층 거주지역인 경우가 많다. UC버클리대 솔로몬 시앙(Solomon Hsiang) 교수는 2017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온실가스 배출을 방치할 경우, 미 남부 지역의 경제 피해가 심해지면서 자산이 북부와 서부쪽으로 대거 이동해 지역간 경제 격차가 커질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기후변화의 국내 불평등에 대한 계량적 분석은 추후 연구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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