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개 스포츠 학습해 만든 ‘스피드게이트’
럭비·축구·크로케 섞은 6인제 구기종목
‘쉽고 재밌고 운동량 많은 팀 경기’ 지향
일회성 이벤트 넘어 지역내 리그전 추진
인공지능이 개발한 최초의 스포츠 `스피드게이트'. 아카 제공
요즘 배구, 축구, 야구 등 스포츠 경기에서 정밀한 영상 기술을 활용한 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잇따라 도입되고 있다. 심판의 오심 방지를 위한 보조 기술 도구다. 그런데 이런 보조적 차원을 넘어 아예 컴퓨터로 새로 설계한 스포츠 게임이 등장했다. 인공지능의 창작 영역이 시, 소설, 영화, 그림 같은 예술에 이어 스포츠까지 확대된 셈이다.
디지털 서비스·제품 기획업체 아카(AKQA)는 최근 미 오레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디자인주간 행사를 기념해, 인공지능이 개발한 스피드게이트(Speedgate)란 이름의 새로운 스포츠 게임을 발표했다. 인공지능이 개발한 최초의 스포츠로 추정된다. 인공지능에 주어진 개발 목표는 배우기 쉽고, 재미있고, 운동량이 많은 팀 스포츠였다.
몸을 밀치는 등의 신체 접촉은 금지된다.
아카는 전 세계 400여개 스포츠와 7300여개의 경기 규칙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학습시켜 새 스포츠의 기본 규칙과 경기 방식을 만들어냈다. 텍스트를 생성하는 아르엔엔(RNN, 재귀신경망)과 이미지를 생성하는 디시갠(DCGAN, 심층 나선형 생성적 적대신경망)을 이용해 컴퓨터가 1차로 제시한 스포츠 게임은 1천가지가 넘었다. 그 중에는 사람이 비현실적인 것도 많았다고 한다. 아카의 연구진은 규칙은 이해하기 쉬운지, 많은 사람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지 등을 기준으로 우선 10가지를 선별한 뒤, 이 가운데 다시 3가지를 골라 직접 시범경기를 치르며 개발 목표에 가장 근접한 것을 뽑아냈다.
이렇게 3단계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 스피드게이트다. 스피드게이트에는 크로케와 럭비, 축구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크로케는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나무망치로 공을 쳐서 골대를 통과시키는 유럽의 전통 스포츠로 게이트볼과 비슷하다.
경기는 6명이 한 팀을 이뤄 상대편 골대 안에 공을 차 넣어 득점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3명은 공격수, 3명은 수비수로 구성한다. 경기장 크기는 폭 18m, 길이 58m다. 골대는 높이가 1.8m로 경기장 양쪽 끝과 가운데에 하나씩 모두 세 개가 있다. 공은 럭비공을 쓴다.
스피드게이트 경기장 조감도.
경기 순서는 이렇다. 우선 동전을 던져 먼저 공격할 팀을 정한다. 공격팀은 중앙 골대에 공을 통과시켜 동료에게 패스하는 것에서부터 공격을 시작한다. 중앙 골대를 둘러싸고 있는 원 안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이를 어기면 공격권을 내줘야 한다. 패스할 땐 손과 발을 다 사용할 수 있지만, 손을 쓸 땐 가슴선 아래에서 패스해야 한다. 럭비에서처럼 선수들끼리 몸을 밀치는 행위는 금지된다. 공을 잡고 이동할 수도 없다. 3초 이내에 다른 동료에게 패스해야 한다.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인공지능이 만든 스피드게이트 로고.
1만개 스포츠 브랜드 학습해 로고도 만들어
슛은 골대 앞뒤 아무데서나 할 수 있다. 골대 안으로 공을 넣으면 2점을 얻는다. 골 넣은 공을 맞은편에 있던 같은 팀 선수가 받아 다시 골대에 밀어넣으면 3점이 주어진다. 골문을 지키는 수비수는 1명만 허용된다. 경기 시간은 한 피어리어드당 7분이며, 모두 3피어리어드로 진행된다. 2피어리어드는 1피어리어드 선수비팀이 선공을 하며, 3피어리어드에선 점수가 낮은 팀이 선공을 한다.
인공지능은 게임 규칙 말고도 1만400개의 스포츠 브랜드 로고를 학습해 스피드게이트의 공식 로고도 만들었다.
스피드게이트는 원래 디자인주간의 이벤트용으로 만들었지만 아카쪽은 이 스포츠를 사람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오레건주 당국과 협의하고 있다. 가능하면 올 여름 지역 리그전을 개최한다는 게 목표다. 인공지능이 만든 첫 스포츠 `스피드게이트'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발전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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