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04 14:01
수정 : 2006.05.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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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동 소아암 병실에서 지난해 12월부터 급성림프성 백혈병으로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김선중(6) 어린이가 어머니 최경숙(46)씨와 함께 동화책을 읽고 있다. 선중이는 다음달 골수이식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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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이들 사회가 키우자] 난치병 치료비 ‘신음’ 희망 잃어버린 11만
가정 풍비박산 극단행동 택해, 대만선 10년전부터 국가책임
“어린이는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고 사랑받으며 살아갈 권리, 위해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 교육·놀이 등을 통해 발달할 권리, 어린이에 관한 일을 결정할 때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한 부분이다. 어린이를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닌 존엄성과 권리를 지닌 주체로 보는 이 협약에는 우리나라도 1991년 가입했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많은 어린이들이 아파서 고통받고, 가난해서 냉대받으며,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범죄와 폭력의 제물이 되고 있다. 가정과 어린이의 달인 5월을 맞아 <한겨레>는 지난해에 이은 기획 ‘우리 아이들 사회가 돌보자’ 제2부를 여섯차례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 가정집에서 ㅇ아무개(71·경비원)씨는 네살배기 손자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선천성 뇌기형인 뇌피질이형성증이라는 난치병에 안구근육암까지 앓는 손자였다. ㅇ씨의 뇌리엔, 한 차례 병원 치료비가 부모의 한 달 수입보다 더 들어가는 손자 때문에 고통받는 아들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정한 할아버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버둥거리는 어린 손자의 입과 코를 틀어막아 숨지게 했다. ‘빗나간 내리사랑’이었다.
지난달 26일엔 한 여성(37)이, 1년6개월여 전 한 어린 아들을 죽음으로 몬 혐의로 서울 강동경찰서에 뒤늦게 붙잡혔다. 이에 앞서 2004년 10월11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 차가운 지하 셋방에서는 장아무개(당시 9살)군이 주검으로 발견됐다. 숨지던 당시 몸무게는 4~5살 어린이와 비슷한 20㎏에 불과했다. 장군은 고관절염으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치료는커녕 간호도 못 받아 탈수와 영양실조로 가엾은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사실은 주검이 발견된 뒤 부검결과로 드러났다. 아들을 버린 채 자취를 감췄던 어머니는 경찰에서 “이혼 뒤 운동화 세탁소에서 일하며 월급 70여만원으로 생계를 꾸렸으나 더는 견딜 수 없어 아이를 버렸다”고 말했다.
이런 참담한 ‘비극’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린이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가정의 몫으로 떠넘기는 우리 현실이 낳는 필연적 귀결이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희귀·난치병을 앓는 어린이를 11만명 정도로 추산한다. 연합회에 가입한 50여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조사해 나온 추정치여서 빈곤층 등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어린이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연합회 쪽의 설명이다. 정정애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사무국장도 “몸이 아파 고통받는 아이를 둔 가정은 거의 대부분 극도의 경제적 고통까지 겪는다”며 “어린이에 대한 무상의료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간호사 김민경(28·세브란스병원 어린이 병동)씨는 “소아암을 앓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수천만원씩 드는 치료비를 마련하러 별의별 일을 다한다”며 “절망과 경제적 고통에 맞서는 부모들이 너무도 안쓰럽다”고 말했다.
이런 실정은 선진국은 물론, 우리와 소득수준이 엇비슷한 대만 등 다른 나라들과도 크게 대비된다. 대만은 10여년 전부터 어린이들에게 무상의료 제도를 도입했고,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뒤떨어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들도 여섯살까지는 사회가 전적으로 의료책임을 진다.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나라도 어린이 질병 치료에는 가장 사회주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어린이들을 질병에서 구하지 못하는 정부는 ‘돈 없으면 나가 죽으라’는 식으로 국민을 내팽개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는 어린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이는 의료적인 보호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기성 박용현 조혜정 유신재 기자
rpqkf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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