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은 3개월 만에 종료되었지만, 그것이 남기는 의미와 파장은 적지 않다.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참여단은 과연 합리적인 결정에 이른 것일까? 이번과 같은 공론조사 모델은 이후에도 유효한 문제해결 방식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에 접근할 단서를 찾기 위해 지난달 25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지형 전 대법관을 만났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김지형 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
|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은 3개월 만에 종료되었지만, 그것이 남기는 의미와 파장은 적지 않다.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참여단은 과연 합리적인 결정에 이른 것일까? 이번과 같은 공론조사 모델은 이후에도 유효한 문제해결 방식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에 접근할 단서를 찾기 위해 지난달 25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지형 전 대법관을 만났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시민의 집단적 의사결정이 지혜로울 수 있을까?’ 의심하는 사람들은, 중우정치의 폐해를 말한다. 사람들은 쉽게 흥분하고, 패거리 문화에 휩쓸리며, 말초적인 자극에 휘둘리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 사상적으로 빈곤하고 열등한 사회라고 가정하는 이들은 중우정치의 위험에 대한 우려가 크다. ‘시민의식이 부족해서’ ‘토론문화가 척박해서’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아서’ ‘교육이 잘못되어서’ ‘냄비근성이라서’ 민주주의의 토대가 약하다는 것이고, 이런 비관론은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로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카리스마 있고 냉철하며 이성적인 엘리트가 우매한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사고는 일종의 ‘지적 우생학’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은 3개월 만에 종료되었지만, 그것이 남기는 의미와 파장은 적지 않다.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참여단은 과연 합리적인 결정에 이른 것일까? 부족한 점이 있다면, 중차대한 국가적 의제를 전문성 없는 시민들에게 맡긴 잘못일까, 집단적 숙의의 과정을 뒷받침할 만한 전문가 역량이 미흡했던 탓일까? 공론화위원회는 충분히 공정하고 중립적이었을까? 이번과 같은 공론조사 모델은 이후에도 유효한 문제해결 방식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에 접근하는 단서를 찾기 위해 지난달 25일 공론화위원장을 맡았던 김지형(59) 변호사를 찾아갔다. 인터뷰는 그가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인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잠 못 이룬 지난 3개월
―7월24일 출범한 공론화위원회가 지난 10월20일을 끝으로 3개월가량의 일정을 종료했습니다. 심경이 어떠세요?
“훨씬 홀가분해졌어요.(웃음) 그 전에는 공론화위원회 때문에 자다가도 문득 깨서 생각을 하고, 꿈을 꿔도 계속 이 일에 대한 꿈을 꾸고,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게 계속 시달렸거든요.”
―‘오차범위 이내로 결과가 나오면 어쩌나?’ 노심초사하셨을 것 같아요.
“그게 저희가 줄곧 고민했던 문제죠. 저희 위원들끼리 워크숍을 하면서 결과가 오차범위 이내로 나오면 어떻게 할지를 놓고 밤새 토론을 했어요. 근데 얘길 하면 할수록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웃음) 세가지 옵션이 있었는데, 그게 다 달라서….”
―세가지 옵션이 뭐죠?
“첫째는 ‘어느 쪽이든 한 표라도 더 나오는 쪽을 채택하자’는 종다수(從多數) 원칙. 시민참여단 한 사람 한 사람이 국민의 대표라고 간주하면, ‘한 표가 많더라도 그걸 따르는 게 맞다’는 의견이었죠. 둘째는 반반으로 갈릴 경우 ‘원안’대로 가자는 의견이었죠.”
―원안이 뭔데요? 공사 재개? 중단?
“거기서 다시 둘로 갈려요. 원래 원전 건설하던 걸 멈춘 거니까 양쪽 의견이 팽팽하면 원래대로 공사를 ‘재개하는 게 원안’이라는 입장과, 반대로 탈원전 정책이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으니 ‘중단하는 게 원안’이라는 입장.”
―완전히 상반된 결론이네요. 세가지 옵션 사이에 아무 공통점이 없어요.
“그렇죠. 근데 세개 옵션 모두 일리가 있잖아요. 그래서 법률분과 자문위원들한테 자문을 구하기도 했는데, 그 의견도 다 달랐어요.”
―잠 못 들 만하네요.(웃음) 그런데 8월말 9월초에 이뤄진 1차 조사 결과를 보면 건설 재개와 중단이 각기 36.6%와 27.6%로 이미 오차범위를 넘었던데요?
“그걸 일체 비밀로 했었거든요. 최종 4차 조사까지 다 한 뒤에야 그간의 조사 결과를 한꺼번에 봤어요. 조사 결과를 외부에 공개 안 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도 모르는 채 비공개로 해두기로 했었죠. 그래야 철저하게 중립적인 관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봤으니까요.”
―그럼 위원장님도 전혀 모르셨어요?
“정말 몰랐어요. 조사용역기관에 제가 먼저 그렇게 부탁했어요. ‘나한테 절대 미리 알려주면 안 된다’고요. 내가 알고 있으면, 공개적이든 사적이든 사람들이 나한테 물어볼 텐데, 포커페이스도 아니고 얼굴에 다 드러날 텐데….(웃음)”
―1차 조사 때부터 응답 결과를 알았다면 마음고생은 좀 덜 수도 있었을 텐데요.
“모르고 있었던 게 결과적으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저희가 힘들고 고통스럽긴 했지만 미리 알았다면 세가지 옵션까지 내가면서 내부적으로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었을까요?”
|
지난달 25일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이진순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간간이 외부 리서치기관에서 발표하는 여론조사에서도 원전에 대한 찬반양론이 백중세로 나타났다. 공론화위원회는 줄타기하는 심정이었다. 한 발만 삐끗해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단 생각에 공정한 절차와 합의의 조건을 설계하는 데 고삐를 바짝 쥐었다.
공론화위원회 무용론?
―어쨌든 19%포인트 차이로 공사 재개 쪽으로 결정되고 나니, 원래 공사하던 대로 두면 되었을 걸 공연히 공론화위원회 만들어 돈만 쓴 것 아니냐며, 비용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3개월간 위원회 운영에 46억원, 공사 중단으로 1000억원의 손실이 났다고요.
“현실적으로 투입된 비용이 그 정도인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상대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갈등 상태가 지속되었을 때 우리가 유형, 무형으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을 염두에 두어야죠. 이런 시민참여형 조사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그 비용을 투입해서라도 다른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는지를 보는 게 올바른 접근법이 아닐까요?”
―어제(10월24일)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공론화위원회 활동 성과에 대해서 격론이 있었습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공론화위원회가 원전 건설을 중단하느냐 재개하느냐만 조사하면 되지, 무슨 자격으로 원전 비중을 축소할지 확대할지에 대해서까지 의견을 물은 것이냐고 ‘법적인 근거 없이 월권을 했다’고 맹비난했어요. ‘공사 재개는 하되 원전 축소’라는 방향으로 합의된 것에 대한 불만이겠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주장도 나름 근거가 있고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견해라고는 생각하는데….”
석달 공론화위 활동 끝내 ‘홀가분'
공사 둘러싼 시민참여단 의견
오차범위 이내 결론 날 경우 대비
가지 안 놓고 내부 밤샘토론
“이야기할수록 답 안 나오더라”
일각선 공사중단에 따른 손실 지적
“갈등 지속 사회적 비용 염두에 둬야”
축소-확대 의견 물은 까닭은
“건설공사 재개 지지하지만
원전 축소 원할 수도 있기 때문”
국내선 보기 드문 노동법 전문가
21살 사시 합격해 27년 법관 생활
40대였던 2005년 대법관에 임명
소수의견 많이 낸 ‘독수리 5형제'
삼성 반도체 피해 조정위원장 거쳐
시민대표 500명 중 471명 합숙
야유·냉소 없이 양쪽 의견 경청
휴식시간에도 계속 토론하더라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한다면
선택 절차 바르게 진행돼야 승복”
김지형 변호사는 전직 대법관다웠다. 이견을 얘기할 때도 전면적인 부정이나 확신에 찬 단언을 하지 않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밴 듯했다. 그가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며 양쪽 입장을 조정해야 하는 공론화위원장을 맡은 이유를 알 만했다.
“저희 판단은 이랬습니다. 기본적으로 원자력 발전 정책하고 신고리 5·6호기 문제가 분리될 수는 없다고 봤습니다. 이 문제가 제기된 배경은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는 원전 축소 정책에서 시작된 것이니까요. 그런데 ‘원전 축소=건설 중단’이고, ‘원전 확대=공사 재개’, 이런 식의 등식이 100% 성립하지 않는 측면이 있는 거죠. 건설 재개를 지지하면서도 원전 축소를 주장할 수 있고, 그 역도 가능하니까요.”
―결과가 ‘원전 축소’로 나오니까 자유한국당에서 이렇게 얘길 하는 것 같은데, 사실 탈원전을 주장하시는 분들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의견을 설문에 넣을까 물어봤다면 굉장히 망설였을 것 같아요. ‘이미 대통령 공약 사항에 포함돼 있는 것이고, 대통령이 선출이 된 이상, 탈핵에 대한 국민적 동의는 끝난 거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제가 이해하기론, 정부의 입장은 ‘원전 축소 정책으로 가는 것은 변동이 없다. 다만 축소 정책으로 가더라도 이미 짓고 있는 5·6호기까지 중단하는 것이 타당하고 적절한지에 대한 판단을 구하고 싶다’는 것이었거든요. 정부 입장에서도 원전 정책 자체는 공론화위원회에서 다루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원전 유지나 확대 의견이 더 많이 나오면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원전 축소 정책에 타격을 받을 게 뻔하잖아요. 일부에서 오해했던 대로 정부가 요식행위로 들러리 역할을 위해서 공론화위원회를 만든 거라면, 저희더러 이런 주제는 빼라고 영향력을 행사했겠죠. 근데 저희는 이걸 담았거든요.”
―그 말씀은 공론화위원회가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기관으로 운영되었단 뜻인가요?
“저희는 그런 전제에서 출발을 했고 그렇게 독립적으로 모든 과정을 설계했습니다.”
―원전 축소가 아니라, 원전 유지나 확대 의견이 더 많이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지금 정부가 저를 굉장히 원망했을지도 모르죠.(웃음)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게 정부 입장에선 더 편할 수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법률가적 양심으로 의제 성격상 그럴 순 없겠다 싶어서 포함시킨 거고요. 전체 설문 문항을 1차 조사 때부터 공개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어느 쪽에서도 문제 제기하는 얘길 들은 적은 없습니다.”
실패의 기록을 남기는 용기
―이번에 공론화위원회 보고서를 발표하실 때, “개인적으로 제 생애 가장 엄중한 마음가짐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하셨어요. 27년간 법관 생활을 하시고 대법관을 6년이나 하셨는데 이번 공론화위원장직에 대해서 그렇게 부담감을 가진 이유가 뭡니까?
“사실은 공론화위원장을 맡아서 하면서 쭉 후회를 했죠.(웃음) 왜 처음 제안이 왔을 때 좀더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했을까? 제가 우리 집사람한테 매일 혼나는 게 ‘마음이 약하다’는 건데, 왜 끝까지 이 직을 거절 못 했는지 후회를 거듭했어요. 이게 경기의 심판 같아서 심판은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고, 잘못하면 양쪽 모두에서 욕 얻어먹는 자리 아닙니까.”
―갈등해결이나 조정 분야에서 그간 많은 일을 해오셨잖습니까?
“대법관 퇴임 후에 ‘노동법연구소 해밀’을 만든 것도 우리 사회에서 갈등적인 요소를 완충하는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죠. 노동 활동의 조정자 역할을 하는 데 조금이나마 초석 역할을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삼성 백혈병 문제 조정을 맡기로 할 때도 주변에선 여럿이 말렸어요. 그거 맡지 말라고, 제대로 결론도 못 내고 상처만 입을 거라고.”
그는 2014년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 관련 조정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서 노사 양쪽을 중재하고 합의안을 도출하고자 했다. 그러나 어렵사리 마련한 권고안은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고 조정안은 효력을 잃었다.
―삼성 조정위원회의 경우처럼, 갈등해결과 조정을 위해 애쓴 노고가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적잖을 텐데요.
“그때도 주변에선 그런 실패가 상처로 남을 것을 우려했어요. 근데 설사 실패하더라도 이런 실패의 경험들이 쌓여야 하지 않을까요?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안 하면 안 되잖아요. 이번에 공론화위원장을 맡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죠. 그래도 막상 시작하고 나선, ‘아이고, 하지 말걸’ 하는 후회를 수없이 했습니다만.(웃음)”
그는 전직 대법관으로서는 다소 이례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다. 1958년 전북 부안생. 5형제의 장남으로 체신부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광주에서 중학교를,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대 법대에 응시해 연거푸 두번 낙방한 뒤, 76년 원광대 법대에 입학해서 대학 4학년 올라가던 만 21살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국내 보기 드문 노동법 전문가로, 법원 내부에 ‘노동법 실무연구회’를 만들고 2010년 8월 국내 최초의 노동법 주석서인 <근로기준법 주해>를 대표 집필했다. 2005년 40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선 파격적으로 대법관에 임명된 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판결로 김영란, 박시환,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과 함께 일명 ‘독수리 5형제’로 불린다.
―노동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노동법에 대해선 아무 관심도 없었어요. 격동의 시기에 대학을 다녔지만, 재수까지 해서 가려던 대학에 못 갔다는 게 제겐 큰 트라우마였던 것 같아요.(웃음) 그걸 만회해야 한단 생각에 사법시험 준비에만 매달렸죠. 그러다가 판사 5년차 되던 89년에 독일에 연수를 가게 되었는데 그때까지 제 목표는 ‘유능한 법관’이 되는 거였어요. 판결문 잘 쓰고 기록 열심히 읽고 주변으로부터 인정받는 판사가 되는 것. 연수를 갈 때까지만 해도, 이후 변호사를 할 때 상품성 있는 걸 해야겠다 싶어서 ‘보험법’ ‘약관법’ 같은 경제법을 공부하려고 했죠.”
―근데 왜 노동법으로 바꾸셨죠?
“제가 간 독일 괴팅겐대학에 노동법 과목이 굉장히 많다는 걸 발견하곤 깜짝 놀랐어요. 제가 연수 가기 전에 꽤 까다로운 노동사건 판결을 하나 쓴 적이 있는데,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어서 되게 고생했거든요. 노동 사건이 87년 6월항쟁 이후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했는데 그 전까지 국내엔 노동법 연구가 제대로 된 적이 없었던 거죠. 공부를 한다면 다른 판사나 실무가들한테 도움이 되는 걸 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노동법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상품성’ 있는 전공을 찾겠다는 꿈은 어떻게 하고요?(웃음)
“‘상품성’하곤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래도 헌법재판소 연구관이 돼서 책도 내고 사법연수원 교수로 노동법 가르치고 노동법학회도 하고… 평탄하게 잘 살았죠.(웃음)”
|
지난달 25일 <한겨레>와 만난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은 공론화위 활동에 대해 설명하면서 “참가자들의 집중도나 질문 수준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2011년 대법관직에서 퇴임할 때 그는 “‘유능한’ 법관보다는 올곧게 가치를 지키는 ‘좋은’ 법관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어록을 남겼다. 유혹이나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아름다운 가치를 지켜내려는 올곧음. 그가 ‘잘해봤자 본전’인 공론화위원회를 맡게 된 것도,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면서 원만한 합의와 상생에 이를 수 있을 거란 믿음, 그걸 위해 공정하고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조건을 만드는 데 법관으로서 기여할 게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이 구성되고 난 뒤, 그가 실제로 체험한 바는 애초의 기대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시민참여단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성과와 한계를 찬찬히 돌아보는 것이 앞으로 이런 방식의 재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 될 겁니다. 공론화위원회 활동과 관련해서 크게 두가지를 여쭙고 싶은데요. 하나는, ‘471명의 시민참여단이 전체 국민을 대표하기에 적합한가?’ 하는 샘플링의 문제, 둘째는 과학적 전문성이 없는 시민들이 이런 중요한 국책과제의 방향을 정하는 게 온당한가의 문제. 우선 첫번째 문제부터 여쭤볼게요. 처음에 1차 조사를 할 때 2만명에서 시작을 했어요. 일반적인 여론조사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큰 규모인데, 이렇게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한 이유가 있나요?
“휴대전화로 90%, 집전화로 10% 비율로 2만6명의 1차 응답자를 확보했습니다.”
―6명이 많아진 건 전화응답을 동시적으로 받는 과정에서 늘어난 거죠?
“예. 그렇죠.”
―2만명의 전화번호는 무작위로 뽑은 건가요?
“아니요. 대한민국 국적의 만 19살 이상 국민을 16개 지역별, 성별, 5개 세대별로 구분해서 전체 160개의 셀(Cell)을 만드는 방식으로 층화한 다음 2만명을 각 층별로 인구비례로 배분하고 그 숫자만큼씩 무작위 추출해서 2만6명의 응답을 받은 거죠.”
―휴대전화가 90%라면서 어떻게 지역별, 연령별, 성별 구분을 합니까?
“그게 결정적인 대목인데요. 통신사가 가지고 있는 가상번호가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전화번호와는 다른 건데, 가상번호에는 가입자의 신원정보가 노출이 되기 때문에 평소에는 우리가 활용할 수 없지만, 이번같이 특별한 사안일 경우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예외적으로 가상번호를 제공받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가상번호를 받은 회선은 7만개가 넘어요. 그중에 2만6명을 160개 셀의 비율에 맞게 안배해서 통화한 거죠.”
―아 그렇군요. 제가 아는 한 새로운 방식입니다.
“그럴 겁니다. 저희 공론화위원 중에 조사통계전문가 두 분이 계셨어요. 그분들 말씀으론 이런 방식, 이런 규모로 진행한 공론조사가 세계적으로도 아마 유례가 없을 거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공론조사를 한 적 있는데, 집전화 방식의 방문조사였으니까요.”
―그렇게 통화한 2만명에게 건설 재개와 중단, 원전 확대와 유지, 축소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요.
“예. 그때 나온 의견이 재개 36.6%, 중단 27.6%, 판단 유보 35.8%였는데 그 가운데 시민참여단으로 활동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5981명이었고요. 이들을 다시 건설 재개·중단·유보의 의견별, 성별, 연령대별로 나눠서 30개 셀로 분류한 뒤 비례 배분해서 500명을 뽑은 겁니다.”
―그렇게 해서 9월16일 1차 오리엔테이션에 500명 중 478명이 참석했고, 10월13일부터 15일까지의 2박3일 합숙에 471명이 참석했죠. 이런 높은 참석률을 예상하셨나요?
“일반적으로 공론조사에서 노쇼(No Show: 오기로 하고 안 오는 사람)가 30%가 된다는데, 95% 이상 참석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죠. 엄청난 일입니다.”
―참여자들한테 금전적 보상이 주어졌습니까?
“일인당 85만원인데요. 정부 지급 기준으로, 공적인 일로 하루 2시간 이상 소비하면 1일 15만원을 지급하게 되어 있어요. 그거하고, 우리가 제공하는 학습 자료를 온라인으로 집에서 보는 데 따로 시간을 책정해서 계산한 겁니다.”
―이런 물질적 보상이 시민참여단의 참여율을 높이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보세요?
“동기 유발에 영향을 미쳤을 순 있지만 이게 결정적이었다고 보진 않아요. 이런 사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하겠다는 내적 동기가 훨씬 컸을 거라고 봅니다.”
―시민참여단이 매수된다든가 이해집단에 따로 접촉당할 가능성을 차단할 방법은 있었나요?
“그런 공정성의 문제 때문에 저희가 시민참여단의 명단을 끝날 때까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오리엔테이션 영상에도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화면 처리된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471명의 현자들
물론 모든 게 완벽했던 건 아니다. 객관적인 팩트 체크의 미흡함, 필요한 공공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해 가지는 양쪽의 정보 불균형, 너무 짧은 일정과 국민적 소통의 부족 등 앞으로 보완해야 할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은 종료되었지만, 학계 인사들로 이루어진 공론화 검증위원회가 공론화위원회 활동의 전 과정을 낱낱이 복기하고 재평가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 보고서를 토대로 정부는 공론조사 표준 매뉴얼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자, 그럼 두번째 쟁점요. 일반 시민들이, 그것도 나이도 지역도 다양한 일반인들이 어떻게 에너지수급정책이나 핵발전소에 대한 과학기술적 이해를 할 수 있겠느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칼자루를 쥐여주는 포퓰리즘 아니냐 하는 우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번 공론화위원회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그간 전문가의 영역에 있던 에너지 문제를 시민의 논의 영역으로 확대시켰다는 거죠. 에너지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전문가가 독점하던 폐쇄적 논의에서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바꾼 것인데, 전 이것 자체가 굉장히 발전적인 형태라고 봅니다.”
―2박3일 합숙기간 중에 온종일 전문적인 논쟁이나 정책적인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지루해서 존다거나 딴전을 부리고 이탈하는 참여자는 없었어요?
“(눈을 크게 뜨며) 저는 그게 굉장히 놀라운 점이었어요. 매일 오전 오후 두 세션씩, 한 세션당 210분에서 230분을 하거든요. 전문가 발표, 분임토의, 질문응답….”
―어휴, 3시간 반에서 4시간씩….
“근데 참가자들의 집중도나 질문의 수준이 아주 놀라워요. 참관하는 우리보다 더 열심히 메모하고(웃음) 정말 몰입해서 참여하세요. 눈빛 하나, 자세 한번 흐트러지지 않고. 19살부터 80대 노인까지.”
―국회의원들도 그렇게 못 하는데.(웃음)
“그러니까요. 저게 어디서 나오는 힘일까, 제가 보기에 이분들이 국가적 명운이 걸린 사안에 대해서 ‘내가 정말 주인이 되었구나’라는 걸 몸으로 체험하면서 자세가 달라지시는 것 같아요.”
―우린 유럽이랑 달라서 그런 식의 토론 경험이 없고 합리적인 논쟁을 못 하는 백성이란 자기비하적 평가도 적지 않아요. 특별히 과거에 이런 자리에 참석해본 경험이 없어도 새로운 토론 방식을 금방 습득하고 적응하더란 말씀인가요?
“그래서 제가 이분들을 ‘471명의 현자’라고 부릅니다. 나름 각자의 생각들이 있으실 텐데, 양쪽 전문가들한테 질의하고 응답할 때마다 비슷한 강도의 박수 소리가 나와요. 우리가 토론회 같은 거 하다 보면 상대편에 대해서 야유나 냉소가 나오기도 하잖아요. 이분들은 똑같이 양쪽에 박수 쳐주고, 토론도 품격있게 하고, 잠깐 있는 휴식시간이나 식사시간에도 자기 조와 관계없이 여기저기서 사람 만나 계속 토론하고….”
―아, 그런 게 정말 가능했군요. 이런 모델이 더 확산될 수 있을까요? 더 많은 시민들이 471명과 같은 현자가 될 수 있을까요?
“전 ‘좋은 절차가 정의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입장과 입장은 부딪힐 수밖에 없고 각각의 입장이 서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그 가운데서 불가피하게 선택을 해야 한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가 제일 중요하죠. 그 선택의 절차가 바르게 진행되면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도 승복할 수 있게 되고요. 그 선택된 절차가 정의입니다. 제가 폐회사 할 때 그랬어요. ‘위대한 것을 선택한 게 아니라, 여러분이 선택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이번에 저도 공론화위원회를 하면서 새롭게 배우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정말 큰 감동이고 치유였죠.(웃음)”
빠른 성취와 효율을 핑계로 생략하고 건너뛰었던 절차의 정의, 우리를 현자로 만드는 기적은 바로 그런 절차의 올바름에서 나온다. 추상적 이념이나 사상보다 구체적 절차의 올바름이 더욱 절실하다.
녹취 이수빈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
※이미지를 누르시면 확대됩니다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