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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22 19:26 수정 : 2013.07.15 16:21

<푸른 거탑>(2013, 티브이엔)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푸른 거탑>(2013, 티브이엔)
<티브이엔> 본방 수요일 밤 11시, 재방 23일(토) 오후 6시, 24일(일) 오후 3시40분

이씨가 코앞까지 왔는데도, 상추씨는 인기척도 못 느끼고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얘는 뭘 이렇게 열심히 보는 거야. 호기심에 들여다보니, 화면엔 군대를 배경으로 한 <티브이엔>(tvN) 시트콤 <푸른 거탑>이 나오고 있었다. ‘싸이코’ 김호창 상병이 후임들에게 ‘거울 보고 가위바위보’를 시키는 대목에서, 상추씨는 몸을 앞뒤로 젖히며 자지러질 듯 웃기 시작했다.

“야, 넌 그게 재미지냐?” 이씨의 퉁명스러운 질문을 듣고서야, 상추씨는 이씨가 코앞까지 온 걸 알았다. “재미있지 않아?” “남자들이 치사스러운 꼴 견디며 고생하는 게 재미있으시다 이건가.” 귀에서 이어폰을 빼며 정리하던 상추씨가 이씨의 말에 도끼눈을 뜨고 대꾸했다. “얘 봐라. 너 권력 가진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게 남자들 군대에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어디 가나 똑같다.”

“그래도 군대하고 사회는 좀 다르지.” 심사가 다소 뒤틀린 게 말투에 묻어나서였을까, 이씨의 말에 상추씨도 배배 꼬인 말투로 응수했다. “아, 예. 고견 감사합니다.” “아니, 진짜로. 제한된 환경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 사이의 권력관계라는 게 사회하곤 미묘하게 다르다니까?” 피식, 상추씨는 쓰게 웃었다. “야, 군대는 2년이라는 기간이라도 있지. 밥벌이 때문에 그만두지도 못하는 직장은 갇혀 있는 게 아니고 뭐냐?”

하긴, 상추씨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충분했다. 매일 출근하자마자 사무실에 놓인 60여개의 화분에 물을 주고 난초의 잎을 행주로 닦아 광을 내는 짓을 4년째 하고 있는 상추씨의 회사생활은 분명 치사스러움의 극을 달렸으니까. “너 요즘 우리 팀장이 뭐에 꽂혀 있는 줄 아냐? 등산이야. 그러면 혼자 산 타면 되잖아? 일요일마다 직원들이랑 산에 가재요, 글쎄. 지난주엔 도봉산,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지지난 주엔 청계산 정상을 찍고 왔다. 그렇다고 사표를 쓸 수도 없고. 내 팔자가 이게 뭐니?”

“너도 네 애환을 <푸른 거탑>에 담아 풀고 있다 이건가?” “그게 푼다고 풀리냐? 그냥 나 혼자 ‘뺑이’치고 사는 게 아니라는 거나 확인하며 웃는 거지 뭐. 갑 밑에서 을로 일하며 사는 건 더럽고 치사한 걸 견뎌야 하는 일이라는 걸 공감하면서 말이야.” 상추씨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이씨는 알 것 같았다. 아, 저건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구나. 이씨는 잠시나마 상추씨에게 모종의 전우애 비슷한 것을 느꼈다.

“하긴, 선배의 ‘꼰대질’, ‘꼬장’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다 거기서 거기인 거지. 별거 있겠니.” 이씨의 말에, 상추씨는 이씨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런 점에선 선배도 없고 상사도 없는 네가 매우 부럽구나, 자유기고가.” “시끄러, 정규직.”

이승한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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