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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01 19:25 수정 : 2013.07.15 16:19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슈츠: 두 변호사>(Suits, 2011~, 미국 유에스에이(USA)네트워크)
<폭스 채널>, 매주 일요일 밤 10시 2회 연속 방영

“말하자면 이런 거야. 내가 조기축구를 열심히 하고 볼도 좀 찬다 쳐.” “너 개발이잖아.” “그러니까 예를 들면! 아무튼 그러고 있는데, 어느 날 다른 팀에서 나를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해 간 거야. 좋다고 갔는데, 알고 보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였던 거지. 남들은 루니나 앙리 급으로 볼을 차는데, 난 언제쯤 내가 조기축구 레벨이란 걸 들키나 가슴 졸이고 있는 거야.”

이씨의 푸념에 박하씨가 지겹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너부터가 네 글에 자신이 없으면 네 글로 누굴 설득시킬 건데?” “야, 업계에 나와보니 나보다 더 잘 쓰는 사람들이 이열 종대로 연병장 세바퀴는 되는데 어쩌냐? 그렇다고 내가 쌓아둔 밑천이 많은 것도 아니고. 언제 바닥을 드러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잠이 다 안 온다.” 커피잔을 손아귀 안에서 굴리며, 동교동 이씨가 투덜거렸다.

박하씨는 한숨을 내쉬고 말을 받았다. “너 혹시 <슈츠>라는 미드(미국 드라마) 본 적 있냐?” “처음 들어 보는데?” “주인공 마이클은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지만, 사정 때문에 법대를 중퇴했어. 다른 사람 대리시험이나 봐주면서 되는대로 살던 이 친구는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잘나가는 변호사 하비를 만나게 되지. 마이클의 재능을 알아본 하비가 마이클을 하버드 로스쿨 졸업생으로 둔갑시켜서 자기 로펌에 취직시키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법정 드라마야.”

“그게 안 걸려?” “혹시 걸리지 않을까 내내 불안해하는 마이클을 보는 게 작품의 재미 중 하나지. 꼭 누구 닮지 않았어?” 이씨는 아랫입술을 비죽거리며 대꾸했다. “그래. 언제 이 얕은 밑천이 들통날까 불안에 떠는 누군가랑 비슷하네.” 이씨의 말에 박하씨는 씩 웃어 보였다. “너 말고도, 마이클에게서 자기 모습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지 않을까?” “무슨 소리야?”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난 마이클은 사회 초년생들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해. 사실 완벽하게 준비된 채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숨기고 싶은 오점이나 구멍을 한두개쯤 가지고 출발선에 서는 거지. 언제 들킬까 불안한 마음으로 말이야. 하지만 마이클의 의뢰인들에게 정말 중요한 게 뭘까? 변호사 자격증 유무일까, 어쨌든 승소하는 걸까?”

“밑천이 없어도 상관없다 이거냐?” “아니지, 밑천은 이렇게 푸념할 시간에 열심히 쌓아 놓아야 하는 거고. 초년엔 뭐든 부족하고 서툰 게 당연하니까 불안에 떠느라 일에 집중할 시간까지 허비하지 말라는 거지. 조금은 스스로를 믿어도 된다는 거야. 변호사든 글쟁이든 어떤 직업이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 남을 설득할 순 없는 거니까.” 티브이 평론가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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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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