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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04 19:53 수정 : 2015.10.23 14:41

지난달 25일 자정에 2집 음원을 발표하며 버스커버스커가 화려하게 컴백했다. 대성공을 거둔 1집이 봄의 사랑을 담아냈다면 2집은 가을의 이별을 그린다. 버스커버스커의 2집은 1집만큼 매력적이었나요? 씨제이이앤엠 제공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버스커버스커의 1집은 힘이 셌다. 발매되자마자 음원차트를 점령했고, 무서운 기세로 ‘시대의 송가’ 자리를 차지했다. 각종 뉴스에서 버스커버스커의 성공 비결에 대해 이야기했다. 1집은 세기만 했던 게 아니라 지구력도 좋았다. 얼마나 좋았는지 발매 후 1년이 지난 올해 봄, 1집의 노래들이 차트를 거슬러 올라와 상위권을 재탈환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노래가 무슨 연어떼도 아니고 이게 뭐지.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 있을 때, 성질 급한 사람들은 보컬 장범준과 고 김광석을 비교하는 무리수를 던지기도 했다.

1집에서 성공을 거둔 밴드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쟤네 2집은 잘 나올까?’ 하나로 귀결된다. 첫 작품에서 과도한 기대를 모은 밴드들이 부담을 떨치지 못하고 무너지는 일은 흔하니까. 그러나 2집은, 적어도 상업적으로는 1집에 뒤지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주요 음원 사이트의 음원차트는 며칠째 버스커버스커 2집의 곡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장범준이 직접 설명한 각 곡의 비하인드스토리는 인터넷 방방곡곡으로 퍼 옮겨지며 사람들의 관심을 사고 있고, 뉴스들은 다시 버스커버스커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은 일이다. 다 좋은데, 어딘가 찜찜하다. 버스커버스커 2집의 상업적 성공을 근거로 ‘듣는 음악의 귀환’이라거나, ‘아이돌 산업 시장에서 꽃피운 음악의 승리’라는 식의 수사를 동원해 음악적 성취를 주장하려는 시도들이 눈에 밟히는 것이다. 그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것은 이런 논리다. ‘버스커버스커는 티브이 출연을 거의 하지 않았고 오로지 음원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거대 기획사의 아이돌들이 지배하는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자기 색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군소 기획사를 찾아간 밴드인 동시에, 모든 곡을 직접 쓰는 작가주의적 밴드다. 그럼에도 매번 대중의 선택을 받는다.’

물론 이 논리에 동원된 근거는 밴드가 취할 수 있는 바람직한 태도다. 그러나 대중의 선택이 언제나 음악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돌을 제외한) 뮤지션들에 대한 대중의 선택이 작품성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친다면, 2000년대 중반 가장 빛나는 음악적 성취를 이룬 이들은 ‘소몰이 창법’을 구사하던 소위 ‘한국형 아르앤비(R&B)’ 목동들 아니겠는가. 당대 대중의 욕망을 풀어주고 근심을 달래주는 것은 대중문화예술이 세상에 기여하는 방식이며 그 자체로 가치있는 일이지만, 그것과 작품의 완성도는 별개의 문제다.

버스커버스커의 2집에 대한 나의 근심을 설명하려면 우선 1집의 성공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2집은 1집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앨범이므로. 1집의 메가톤급 성공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일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리 의외의 결과는 아니었다. 얼마나 소를 잘 몰고 얼마나 고음을 힘차게 찍을 수 있는지가 보컬을 평가하는 절대 기준인 것처럼 여겨지던 2000년대 중반의 트렌드는 청자들에게 무의식적인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버스커버스커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 앞에 도착했다. 불과 몇년 전이었다면 ‘음역대가 좁고 성량도 부족하며 1970년대 포크 전성기 때에나 유행했던 잘게 쪼갠 비브라토 창법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장단점 중 단점만 부각된 채 가창력이 부족하다고 지적받았을 장범준의 보컬은, 과잉의 보컬들에 지쳐가던 사람들을 빠르게 자기편으로 돌려세웠다.

또 ‘오늘 밤 네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투의 노골적인 가사가 범람하는 시대에, 상대를 유리잔 다루듯 조심스레 대하는 가사들은 외려 신선해 보였다. 기껏 깊은 밤 사랑하는 여인에게 전화를 걸어 하는 말은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는 것에 그치고(여수 밤바다),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 소녀가 향수를 바르고 또 한 소년이 애프터셰이브를 바르고 만나서 서로의 향기를 맡는 거’(향수)라고 쑥스럽게 말하는 소년의 노래. 온통 인간관계에 능숙한 선수들이 늘어놓는 사랑 이야기 틈바구니에서 이 서툴고 투박한 가사들은 풋풋한 매력을 발산했다.

1집에 이어 2집 대박난 ‘버스커…’
‘듣는 음악의 귀환’ 극찬 쏟아지지만
대중의 인기와 완성도는 다른 문제
1집 견줘 진전 없고, 단점은 그대로
재능있는 가수 잃을까 우려하는
평론가의 충언이라 생각해주오

상황이 이러니 1집 수록곡들이 편곡이나 믹싱에서 빈틈을 많이 보였다는 점이나, 밴드임에도 밴드 사운드가 아니라 장범준의 목소리가 전체 앨범을 견인한다는 단점들은 적당히 간과되었다. 부족한 부분은 다음 작품에서 채울 수 있겠지. 음악평론가들 또한 이런 기대를 걸고 버스커버스커의 1집이 보여준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결국 정규 데뷔 첫해에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음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며, 버스커버스커는 명실공히 ‘새 시대의 클래식’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2집이다. ‘부족한 부분은 다음 작품에서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평자들의 기대와는 그 결과물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1번 트랙은 <슈퍼스타 케이(K)3> 때와는 달라진 버스커버스커만의 모습을 확 보여줘야 하고, 야구 타순처럼 1번부터 4번 트랙에 힘있는 곡들을 배치해 앨범 초반에 전체 분위기를 잡아준다. 타이틀곡은 4번 타자로 들어간다.” 1집 발매 당시 엠넷(Mnet) <버스커버스커 쇼>에서 언급된 1집의 곡 배치 전략이다. 과연 1집의 문법은 성공적이었다. 봄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연주곡 ‘봄바람’이 1번 트랙, 힘을 뺀 장범준의 보컬을 들려주는 ‘첫사랑’이 2번, 감정을 고조시키는 ‘여수 밤바다’를 3번에 놓은 다음, 타이틀곡 ‘벚꽃 엔딩’을 4번에 올리며 화려하게 타이틀곡을 선보였다.

2집은 여기서 단 한발짝도 전진하지 않는다. 가을의 정서를 연상시키는 연주곡 ‘가을밤’이 1번, 상실감과 회한의 정서를 담은 ‘잘할걸’이 2번, 경쾌한 리듬 위에 이별의 정서를 올린 ‘사랑은 타이밍’이 3번, 절절한 이별 노래인 타이틀곡 ‘처음엔 사랑이란 게’가 4번. 1집과 노골적인 대구를 이루는 이 배치는 2집이 독자적인 문법을 지닌 앨범이 아니라 1집의 성공을 재현하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앨범임을 반증한다. 심지어 후반부에서도 ‘외로움 증폭장치’나 ‘꽃송이가’, ‘향수’ 등의 트랙으로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봄의 정서를 이어갔던 1집과 달리, 2집은 뒤로 갈수록 정서적 통일성을 잃는다.

전략의 반복은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다. 편곡이나 송라이팅에서 2집은 더 많은 허점을 드러낸다. 앞에서 언급했듯 장범준의 보컬이 성량이 강하거나 음역대가 넓은 편은 아니다. 그러기에 밴드의 사운드가 그 뒤를 단단하게 지지해줄 때 그 빛을 더하는데, 2집의 편곡은 여전히 장범준의 보컬에 초점을 맞춘다. 여성 보컬 채지연과의 듀엣곡 ‘그대 입술이’는 이게 어딜 봐서 듀엣곡인가 싶을 정도로 장범준 위주로 믹싱이 되어 있고, 1집에선 나름의 영역을 차지하던 베이시스트 김형태의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고음의 멜로디가 빠르게 반복되는 ‘시원한 여자’나 ‘줄리엣’은 장범준이 견인하기엔 부담스러워 보이지만 그대로 전진한다. 전작의 전략은 계승했으되 단점은 오히려 부각된 작품이 된 셈이다. 브래드의 드럼이 없었다면 이 앨범을 밴드 앨범으로 평가하는 일은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당신은 그렇게 들었을지 몰라도 나는 이번 앨범이 좋은데 어쩌라는 건가”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나는 버스커버스커의 새 앨범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게 잘못된 일이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음악적 완성도는 취향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취향에는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겨우 두번째 정규 앨범을 낸 밴드가 갑작스레 대단한 도약을 보여줄 필요도 없고, 전작을 통해 검증받은 흥행 공식을 다시 시도하는 게 중죄도 아니다. 하지만 대중의 선택을 근거로 음악적 찬사를 보내는 것은, 다름 아닌 해당 가수에게 제일 위험한 일이라는 점은 지적해야겠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한국형 아르앤비’가 유행하던 시절, 얼마나 잘 울부짖느냐가 가창력의 척도인 것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몇몇 가수들은 아직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출처 미상의 ‘대한민국 보컬 순위표’ 같은 것을 자기 입으로 언급하며 그 자리에 안주하고 있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너무 일찍 분에 넘치는 찬사에 취해 제 가능성을 깎아먹고 주저앉고 만 것이다. 그리고 평론가가 대중예술가에게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나쁜 일은 대중의 선택 앞에 기가 질려 충언을 속으로 삼키느라 그 위험을 못 본 척 눈감는 일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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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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