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집 앨범 <모던 타임즈>를 발표한 아이유는 아이돌과 뮤지션 사이를 오간다. 타이틀곡 ‘분홍신’과 자작곡 ‘보이스 메일’ 중 아이유의 미래는 어느 곡이어야 할까. 팬들은 스물한 살 솔로 여자 가수의 성장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로엔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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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아이돌이자 ‘아티스트’로서‘성숙’이란 카드 내민 앨범
‘울퉁불퉁’ 에너지는 자취 감춰
지금 자신의 감성은 어디 갔을까 아이유의 이번 앨범 <모던 타임즈>는 여러 가지 의미로 당혹스럽다. 완성도에 대해서 태클을 걸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편곡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나왔고, 정석원, 박주원, 윤상, 이민수, 지(G)고릴라 등 동시대를 대표하는 유명 작곡가들이 참여해 제공한 트랙 리스트 또한 수려하다. 앨범에 담아낸 소리의 스펙트럼도 만족스럽고, 심지어 아이유의 보컬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능수능란하게 조율되어 있다. 내가 찜찜했던 부분은 따로 있다. 이게 과연 스물한 살의 가수가 부른 노래들이 맞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칭찬이 아니다. 혹자는 이번 앨범을 두고 벌써 “아티스트 아이유가 회사 입장에선 반대했을 법한 시도들을 고집 있게 관철시킨 결과물”이란 평가를 내린 모양이다. 내가 보기엔 이번 앨범 역시 지금까지 아이유와 그의 소속사에서 취해온 행보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앨범 같다. 물론 몇몇 곡은 분명 기존에 아이유가 부른 노래들과는 다소 질감이 다르긴 하다. 격렬한 보사노바풍의 노래 ‘오블리비아테’(Obliviate)나, ‘입술 사이’(50㎝) 등의 곡에서 보여주는 보컬 톤은 전에 없이 끈적하고 격렬하다. 그러나 아이유가 ‘어린 소녀’의 이미지에서 ‘성인 여성’의 이미지로 변신한 것을 두고 굳이 ‘회사 입장에서 반대했을 법한 시도’라고 보는 건 어색하다. 아이유가 어떤 식으로 전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아이유가 처음 발표한 데뷔곡 ‘미아’(2008)는 지금 다시 들어봐도 장중하고 어두운 발라드곡이었고, 대중적인 인기를 끌거나 인지도를 높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의 인지도는 분위기를 180도 전환한 발랄한 댄스곡 ‘부’(BOO)를 발표한 2009년에야 비로소 오르기 시작했다. 발라드 보컬로 시작했으나 큰 반향을 얻지 못하자, 전략적으로 귀여운 이미지의 댄스곡을 들고나온 것이다. 같은 시기에 시작한 인터넷 티브이 프로그램 <곰티브이 뮤직 차트쇼>에서 보여준 몇 가지 면모들과 심하리만치 웃음기가 많고, 은근히 푼수기가 있는 소녀의 모습 또한 ‘부’에서 보여준 이미지와 근사하게 어우러지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귀엽고 푼수기도 있지만, 노래는 잘하는 발랄한 소녀. 제법 근사한 조합이었고, 실제로 이 시기가 인기와 인지도를 함께 얻기 시작한 분수령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유가 진짜로 온 국민의 사랑을 얻기 시작한 건 이때가 아니었다. <문화방송>(MBC) 예능프로그램 <세바퀴>나 <한국방송>(KBS) <유희열의 스케치북>등에 나와 통기타를 치며 선배들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시점이 우리가 아는 아이유의 진짜 시작점이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소녀가 제 몸만한 통기타를 치면서 애절한 목소리로 이문세의 ‘옛사랑’이나,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나미의 ‘슬픈 인연’을 부르는 장면은, 하이틴 가수가 사로잡기 좀처럼 어려운 중·장년층의 애정과, 음악깨나 듣는다는 청취자들의 지지를 한 몸에 살 만한 위력을 지녔다. ‘부’나 ‘마시멜로’와 같은 귀엽고 발랄한 댄스곡을 불러 또래 소년들과 ‘삼촌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통기타를 치며 한국 가요사에 길이 남은 명곡들을 용케 알고 그 맛을 살려 애절하게 부를 줄 아는 열일곱 소녀. 그러니까 아이유는 ‘아이돌’처럼 소비되는 동시에 ‘아티스트’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인식되는 희귀한 사례가 된 것이다. 아이유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자신의 노래만큼이나 선배들의 노래를 자주 불렀고 그때마다 환호받았던 것은, 대중이 아이유에게서 보고 싶어하는 이미지가 바로 그런 모습이었단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니 빅밴드 스윙이나 딕시랜드, 라틴 재즈나 보사노바 등의 다양하고 조금은 낯선 장르에 도전하는 아이유나, 최백호, 양희은과 같은 선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 목소리를 섞는 아이유 모두 결국 지금껏 아이유와 그의 소속사가 밀어왔던 노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선배들의 감성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면서도, ‘좋은 날’이나 ‘너랑 나’ 등의 곡들로 젊은 팬들의 사랑을 붙잡아 두는 것, 이것이야말로 아이유가 전 연령대에 걸쳐 고르게 사랑을 받았던 비결 아닌가. 소속사에서 ‘세대 화합의 아이콘’이란 수식어를 붙여 내놓은 보도자료를 봐도, 이번 앨범인 <모던 타임즈>가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는 제법 자명하다. 딜레마는 여기에서 온다. 아티스트는 다시 재충전이 될 때까지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지만, 아이돌은 대중에게서 지워지기 전에 다시 신곡을 들고 돌아오거나 방송활동을 통해 자신을 인지시켜야 한다. 아이돌은 전작에서 크게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실망하진 않지만, 아티스트라면 다음 작품에서 어떤 성장과 진보를 이루었는지 증명해야 한다. 아이돌인 동시에 아티스트인 존재란 결국, 아이돌의 속도로 신보를 내되, 아티스트의 수준으로 진화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어떤 진화를 보여줘야 하는 것일까. 중학생으로 데뷔해 고등학교 3년을 전 국민이 사랑하는 소녀로 살았고, 이제 스무 살이 넘어 신보를 발표해야 하는 상황. 아이유와 소속사는 ‘성숙’이란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음악적 성숙’과 ‘원숙’은 분명 오인되었다. <모던 타임즈>는 실수나 무리수를 좀처럼 볼 수 없는 앨범이다. 아이유의 목소리는 디렉션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움직이고, 심지어는 최백호나 양희은과 같은 대선배들과 함께 한 곡들에선 선배들의 목소리 톤에 맞춰 창법을 전환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동시에 ‘부’나 ‘마시멜로’에서 보여줬던 서툰 귀여움도 없고, ‘좋은 날’이나 ‘너랑 나’에서처럼 무리한 고음도 없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모습을 능란하게 보여주는 대신, 무리수를 던져서라도 한계를 돌파하려는 승부수는 사라진 것이다. 에너지는 줄어들고, 그 자리를 원숙함이 대신한다. 고작 세 번째 정규앨범을 낸 스물한 살의 가수에게 에너지가 줄어든 대신 원숙함이 늘었다는 이야기는 조로(早老)하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양희은과 함께 사랑의 상처를 포근하게 감싸 안는 관조적인 가사를 노래하는 스물한 살이라니, 이건 흐뭇해할 일이라기보단 걱정할 일에 가깝다. 물론 소속사로서는 재능 있는 젊은 가수가 더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돕는 것이 목표일 것이고, 그를 위한 고민과 노력은 권장되어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그 가수가 지나치게 빨리 소모된다면 그 또한 문제일 것이다. 특히나 가수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가 가려지게 된다면 더더욱 말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곡들은 아이유 자신이 직접 작사나 작곡에 참여한 곡들이다. 지루한 ‘밀당’(밀고 당기기)에 지친 여자의 한탄인 ‘을의 연애’나, 자괴감에 빠져 아무것도 위안이 안 되는 청춘의 어느 궂은 날을 노래한 ‘싫은 날’과 같은 곡들은, 때 이른 관조의 노래와 세련된 사랑 노래들 사이에서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아이유는 매끈하게 다듬어진 상품이 아니라 예전의 울퉁불퉁한 에너지를 보여주는 스물한 살이 된다. 어쩌면 지금 시점에서 아이유에게 필요한 건 아이유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이 생각하는 감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유능한 작곡가들이라기보단, 아이유가 자신의 이야기를 좀더 잘 들려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좋은 편곡자, 믿음직한 조력자들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이다음 앨범의 행보를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스물한 살에 원숙미를 꺼내들었다면, 앞으로도 9년이나 남은 20대는 어떤 방식으로 헤쳐나간단 말인가. 그리고 남은 이야기.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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