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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15 19:51 수정 : 2015.10.23 14:40

17년 만에 가수 나미가 신곡 ‘보여’를 발표했다. 일렉트로닉 댄스곡인 신곡은 이미 클럽에서 인기곡이다. ‘인디안 인형처럼’, ‘빙글빙글’ 때의 몽환적이면서 세련된 목소리는 여전히 개성 있다. 나미는 영원한 ‘신상’이다. 다음 뮤직 제공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하늘색 머리에 파란색 립스틱, 파란색 아이라인을 한 사진 속 나미는 쉰여섯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해도 부담스러울 헤어와 메이크업을 저렇게 태연히 하고 계시다니, 의욕은 좋으신데 조금 무리가 아닐까. 보도자료 속 사진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희미하게나마 ‘나미와 붐붐’ 시절의 영광을 기억하는 나는, 이디엠(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라는 최신 장르로 무장한 나미의 17년 만의 신곡 발표가 내심 두려웠던 것이다.

세상에는 올해 초 모두를 놀라게 했던 조용필의 컴백처럼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는 종류의 컴백도 있지만, 종종 시대를 따라잡으려는 노장의 과욕으로 기록되는 종류의 컴백도 있는 것 아닌가. 혹시라도 그런 결과가 나와서, 나미의 화려했던 시절을 미처 본 적 없는 젊은이들로부터 박한 평가를 받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나는 나미에 대해 가지고 있던 빛나던 추억이 혹시라도 퇴색할까 겁이 났다.

이런 걱정이 기우에 그치는 걸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나이 차이가 조금 있는 후배들과의 만남이었다. 우연히 종로에서 마주친 대학 후배들과 합석한 술자리에서 슬쩍 나미 이야기를 꺼냈고, 그러자 조용했던 자리가 금세 고성방가의 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나미가 한참 ‘나미와 붐붐’으로 활동할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그 친구들은 소리 높여 ‘인디안 인형처럼’(1989)의 전주 부분을 불렀고, ‘빙글빙글’(1984)은 물론이거니와 ‘영원한 친구’(1979)까지 호출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결국 누군가 “거 좀 조용히 마십시다”라는 핀잔을 준 다음에야 우리의 고성방가는 간신히 끝이 났다.

도대체 어디서 보고 배운 건지 토끼춤까지 그럴싸하게 흉내 내는 후배들이 신기했던 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건 대체 어디서 보고 배운 거니. 에이, 형. 유튜브가 있잖아요. 군데군데에서 저마다 자신이 어떻게 나미를 ‘영접’했는가에 대한 간증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가까운 과거인 에이치오티(H.O.T.)의 전성기는 <티브이엔>(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2012)을 보고 배웠다던 후배들이, 나미에 대한 기억만큼은 어떻게든 용케 전승받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야, 계산해보면 나미가 너희들한테는 어머니뻘 아니니?” 자리에 앉아 있던 후배들 중 한명이 말을 꺼낸다. “제 어머니는 올해 마흔넷이시니까, 어머니뻘보다는 더 되는 거죠.” “그런데 이분이 이번에 이디엠 장르를 들고 17년 만의 신곡으로 돌아온대. 클럽에서 나오는 일렉트로닉 음악 같은 거 있잖아. 어떨 것 같아?”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도대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골똘히 생각하던 후배는 경쾌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그 연세에요? 멋질 것 같은데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미는 언제나 시대보다 한발 앞선 음악을 들고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여섯살 무렵부터 동두천 미8군 무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5인조 걸그룹 ‘해피돌즈’ 활동을 하며 7년간 미국 활동을 했던 그는 당대 한국 출신 가수가 접할 수 있는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 거기에 허스키하면서도 음역대가 높고 비음이 매력적인 나미 특유의 목소리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국에 돌아온 나미의 음색에 반해 그를 밴드의 보컬로 섭외한 이탈리아 출신의 뮤지션 프랑코 로마노는, 나미에게 ‘영원한 친구’라는 불세출의 트랙을 선물했다. 그루브가 넘치는 베이스와 펑크 기타의 조화, 적재적소에 배치된 트럼펫 위에 나미의 목소리가 사뿐히 얹힌 ‘영원한 친구’는 지금 들어도 세련된 편곡을 자랑한다. ‘나미와 머슴아들’ 1집(1979)에는 당시 미국에서 발표된 지 1년도 채 안 된 곡들이 번안곡으로 함께 실렸지만, ‘영원한 친구’는 본토의 펑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그루브감을 과시했다. 그랬으니 이 곡이 처음 공개되었던 1979년 당대 젊은이들이 느꼈을 충격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으랴.

시대를 앞서갔던 트랙은 ‘영원한 친구’ 한 곡만이 아니었다. ‘빙글빙글’은 가성과 비음, 허스키한 진성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창법으로 듣는 이들을 몽롱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고, 일본 레코드사에서 받은 곡 ‘슬픈 인연’(1985)은 귓전에 속삭이는 듯한 전반부와 풍부한 감정선이 도드라지는 후렴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세련미를 과시한다. ‘슬픈 인연’과 같은 앨범에 실린 ‘보이네’(1985)에서는 레게를, 디제이(DJ) 유닛 ‘붐붐’과 함께 발매한 ‘인디안 인형처럼’ 싱글 앨범(1990)에서는 한 곡을 다섯 가지 버전으로 리믹스해서 발매하는 실험을 벌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계산하면 나미는 언제나 시대의 최전방에 서 있었던 셈이다. 그런 나미에게 2013년의 이디엠쯤이야 별로 놀랄 선택도 아니지.

“그런데 그건 왜 물어요, 형?” 후배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불안해서. 나이나 공백기에 비하면 파격 변신인 거잖아. 기껏 돌아왔는데 반응이 안 좋으면 어쩌나 싶은 거지.” 내 말을 들은 후배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내게 반문했다. “형, ‘인디안 인형처럼’을 처음 발표할 때 나미가 몇 살이었어요?” 예상치 못한 후배의 말에 일순 멍해졌다. 지금이야 서른두살의 여가수가 댄스곡을 발표하는 게 대수롭지 않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여자 연예인 나이가 서른이 넘어가면 ‘한물갔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며 조신해질 것을 강요하던 나라가 한국이었다. 나미보다 열한살 어린 엄정화조차 <문화방송>(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를 통해 “나이 서른이 넘어가자 ‘나이도 있으니 발라드로 장르를 바꾸라’는 제안을 많이 받았노라”고 고백한 바 있다. ‘나잇값 못한다’는 시선과 싸워야 했고, 고작 서른이 갓 넘었을 뿐인데 ‘젊어 보이는 비결’을 물어보는 무례와 맞서야 했다고 말이다.

쉰여섯에 EDM으로 컴백한 나미
‘영원한 친구·’ ‘인디안 인형처럼’ 등
그녀는 언제나 시대의 최전방에

“30년 동안 하고팠던 음악” 역시
전성기 그대로 잠재력 증폭시켜
‘지나친 욕심 아닐까’ 걱정은 기우

1990년 7월께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나미의 스타 스토리’에서, 서른두살의 나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89년 3월 나는 나의 제6집을 냈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좀 점잖게 노래 부르려고 조용한 노래 위주로 취입했다. ‘인디안 인형처럼’은 취입은 했지만 홍보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될 수 있으면 안 부르려 했다. 그래서 방송국 피디 선생님들이 요구해도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했다.” 자신이 여러 가지 장르를 소화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이 댄스가수로만 기억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서른두살의 여가수가 신보를 발표하며 스스로 ‘이제는 나이도 있고 좀 점잖게’ 노래하려 했다고 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씁쓸하다.

이번 신곡 ‘보여’(Voyeur)를 발표하면서, 나미는 “나는 30년 동안 이런 스타일의 노래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13년 전과는 달리 이번엔 본인이 진심으로 해보고 싶었던 곡을 불렀다는데, 그깟 나이가 무슨 대수라고 나는 벌써부터 나미를 멋대로 내 기억 속 모습으로 박제해두려고 했단 말인가. 후배의 반문 앞에 할 말을 잃은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중얼거렸다. “아유, 후지다. 나이 때문에 지레 겁먹고 멀쩡하게 산 사람을 기억 속에 박제해두려고 하다니, 나 정말 후져.” 술기운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였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지난 11일, 인터넷을 통해 나미의 신곡 ‘보여’가 공개된 뒤 나는 잠시나마 의구심을 품었던 것을 후회했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이디엠 곡과 만난 나미의 목소리는 전성기 때 그대로였고, 허스키한 진성과 깨끗한 가성을 절묘하게 넘나들며 듣는 이의 애간장을 태우는 몽환적인 창법 또한 변한 게 없었다. 과연 잘 어울릴까 확신이 서지 않던 이디엠과 나미의 만남은, 오히려 나미의 목소리가 가진 잠재력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과연 30년을 기다렸다는 말이 단순한 마케팅용 발언이 아니구나 싶었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해 박제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숨쉬는 ‘리빙 레전드’가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 지레 겁에 질려 혼자 건방지게 ‘글쎄올시다’ 운운한 내게 무슨 선택지가 남았겠는가. 그저 이렇게 엎드려 경배할밖에.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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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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