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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06 19:44 수정 : 2015.10.23 14:39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마음을 빼앗기는 목소리가 있다. ‘음색덕후’ 윤종신은 노래 실력만큼이나 희소가치를 기준으로 목소리를 평가한다. 스스로 ‘노태우 정권 때 데뷔했다’는 제작자 윤종신의 감각은 언제나 새로움을 좇는다. 미스틱89 제공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지난 3일, 윤종신이 이끄는 기획사 미스틱89의 트위터 계정에 짧은 글 하나가 올라왔다. “미스틱89의 새로운 가족을 소개합니다. 가수 장재인.” 관련 기사 링크를 함께 달고 올라온 이 짧은 트위터 글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개인 사정으로 한동안 활동을 쉬었던 장재인에 대한 기대감도 탄성의 이유 중 하나였지만, 더 큰 이유는 미스틱89에 소속된 여성 아티스트들의 면면에 있었다. <맘 앤 섹스>(2012)와 <이응>(2012)의 두장으로 평단의 주목을 모은 싱어송라이터 퓨어킴, 2013년 여름 가장 중요한 신인 중 하나로 떠오른 김예림, 인디 신에서 활동하다가 오랜만에 가요계로 돌아오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음원 차트 1위를 찍은 박지윤, 그리고 이제 장재인까지. 마치 스릴러물의 마지막 반전을 보고 넋을 놓은 관객처럼, 나는 무릎을 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이거였구나.

잠깐 3년 전을 회상해보자. 엠넷(Mnet) <슈퍼스타 케이2>에서 김지수와 장재인이 ‘신데렐라’를 부르고, 강승윤이 ‘본능적으로’를 부르며 기타를 든 뮤지션이 얼마나 멋있을 수 있는지를 다시 증명해 보였던 2010년, 사람들은 마치 기타와 포크록의 전성기가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난리를 피웠다. 갑자기 기타 학원 수강생이 급증했고, 낙원상가에서 통기타를 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이돌 음악으로 과포화 상태였던 음악 시장에 분 기타 바람은 새로운 방향성의 징후처럼 여겨졌다. 적잖은 전문가들은 한계치에 도달한 아이돌 음악은 점차 쇠락할 것이고, 록과 포크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때마침 불어온 ‘세시봉’ 열풍과 아이유의 등장 등은 그런 전망을 뒷받침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독특한 목소리 가진 아티스트 선호
김예림·박지윤 이어 장재인 영입
보컬의 질감 강조해 대중 사로잡아
아이돌과 성격 다른 음악시장 개척
‘예능-음악’ 두 마리 토끼 다 잡아

그 무렵, 선배 기자를 따라갔던 인터뷰 자리에서 윤종신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아이돌 시장이 갑자기 몰락할 것이라는 식의 섣부른 예측은 아니지만, 성격이 다른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있고 그것을 여는 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이었다. 윤종신은 자본과 홍보력을 모두 갖춘 제작자가 단순히 시장에 잘 팔릴 것 같은 음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 미친 짓을 해서 음악 위주의 음반을 제작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주면 1등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조심스럽지만 어떤 확신에 차 있던 윤종신의 말은 아주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듣는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음악을 제작하는 ‘제작자’가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기타를 치며 열창을 하는 소년·소녀들은 부쩍 늘어났다. 버스커버스커와 아이유가 음원 차트를 휩쓸었고, 시즌 1에서는 보컬리스트 박지민을 선택했던 에스비에스(SBS) <케이팝 스타>는 시즌 2에서는 기타를 든 싱어송라이터 듀오 악동뮤지션을 1위로 올렸다. 그러나 이것을 각각 버스커버스커의, 아이유의, 악동뮤지션의 팬덤이 늘었다고 볼 근거는 있으되 새로운 시장의 개척이라 부를 만한 유의미한 지표는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전체 음원시장 대비 아이돌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더 늘었다. 더 다양한 장르를 흡수해 제 것으로 차용해 보이는 아이돌 기획사들은 여전히 음원 차트를 지배했다. 현재의 경향을 토대로 미래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다. 새로운 시장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타’의 장착 여부 이전에 ‘새로운 흐름을 대중에게 어떻게 납득시키느냐’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했다.

그 순간 윤종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2012년 상반기, 윤종신은 자신의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에 걸출한 여성 보컬들을 초대해 자신의 곡을 부르게 했다. 장재인, 호란, 김완선, 조원선, 박정현, 정인 등의 보컬들과 함께한 2012년 상반기 <월간 윤종신>에는 일관된 방향성이 보인다. 윤종신은 ‘댄스의 여제’로 기억되는 김완선에게 복고풍의 발라드 ‘널 사랑해 오늘따라’를 부르게 했고, 문화방송(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를 통해 열창의 아이콘처럼 인식된 박정현에게 속삭이듯 노래하며 목소리의 결을 다양하게 펼쳐 보일 수 있는 트랙 ‘도착’을 맡겼다. 힙합 보컬의 이미지가 강하던 정인에게 전형적인 윤종신 식 발라드 ‘오르막길’을 부르게 했고, 우울한 감성으로만 여겨지던 장재인에게 경쾌한 기타 포크 ‘느낌 굿’을 주었다.

요컨대 그것은 대중이 보컬들에 대해 지닌 고정된 선입견이 아니라, 보컬이 지닌 목소리 본연의 색깔을 찾아 부각시키는 트랙들이었다. 멜로디나 테크닉 이전에 가장 원초적으로 듣는 이들의 귀를 잡아당기고, 보컬의 정체성을 전면에 보여줄 수 있는 요소는 결국 보컬의 목소리가 지닌 특유의 질감이다. 그리고 프로듀서로서의 윤종신은, 2012년 상반기 내내 시장의 지배적 취향에 맞춰 보컬의 방향을 바꾸는 대신 보컬의 장점을 극대화시켜서 시장을 설득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실험하고 있었던 셈이다.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미스틱89 소속의 여성 아티스트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방향성은 더욱더 선명해 보인다. 김예림이나 박지윤, 장재인, 퓨어킴까지 모두 애끓는 열창이나 터져나갈 듯한 성량으로 승부를 보는 종류의 보컬은 아니다. 혹은 그런 식의 노래가 가능하더라도 미스틱89의 레이블 아래서는 굳이 그러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대체 불가능한 목소리 톤을 지니고 있다. 김예림의 싱글 ‘올 라잇’은 반복적인 구성을 통해 김예림 특유의 허스키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의 저음과 몽환적인 느낌의 가성을 각인시키는 데 모든 것을 집중시킨 곡이었다. 박지윤의 컴백 곡 ‘미스터리’ 또한 재즈 힙합의 비트 위에 1절부터 후렴까지 차근차근 성량과 음역대를 높이는 구성을 얹어, 박지윤 특유의 도도하면서 매끄러운 음색을 펼쳐 보이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열창이나 테크닉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목소리의 질감을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것이다.

여기에 남성 듀오 ‘유브이’(UV) 활동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작곡 능력을 설득시키는 방법을 터득한 뮤지와 같은 인물이 가세하고, 하림과 조정치, 김연우 같은 윤종신의 오랜 음악 동료들이 중심을 잡아 터를 이룬다. 불과 1년 반 전만 하더라도 윤종신 본인과 하림, 조정치 정도의 소박한 규모의 레이블이었던 미스틱89는, 이제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어떠한 음색이나 질감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라인업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어떠한 장르나 멜로디 작법 등을 연상케 만드는 레이블들은 많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행위에서 가장 원초적인 부분인 ‘목소리의 질감’으로 정체성을 세우는 레이블은, 지금으로서는 미스틱89가 유일하다. 이것이 지난 한해 프로듀서 윤종신이 일궈온 길인 것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그리고 이 소속 가수들은 프로듀서이자 미스틱89의 수장인 윤종신이 걸어왔던 루트를 따라 대중을 만난다. 마치 지난 10년간 윤종신이 꾸준히 남편으로서의 삶,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삶, 제작자로서의 삶을 방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대중에게 보여주었던 것처럼. 조정치는 이제는 부인이 된 연인 정인과 함께 문화방송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해 자신의 연애사를 대중에게 열어 보였고, 성공적인 컴백을 마친 박지윤은 엠비시에브리원 <주간 아이돌>에 출연해 ‘달빛의 노래’ 안무를 재현하면서 뻣뻣하게 굳어버린 관절을 인증했다. 예능을 통해 대중에게 어떤 판타지나 가식 없이 자신을 드러내지만, 음악적으로는 진지하게 보컬의 본질을 전달하려 노력하는 것, 그것은 윤종신이 지난 10여년간의 예능 활동으로 터득한 ‘예능을 하면서도 가수로 살아남는’ 원천기술이었다.

목소리라는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방법을 알고, 독특한 목소리들로 제 정체성을 세웠으며, 그것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하는 방법까지 아는 레이블. 그 맨 앞에 제작자이자 프로듀서인 윤종신이 서 있다. 어쩌면 2014년에는, 그가 제일 선두에 서 있는 제작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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