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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27 19:43 수정 : 2015.10.23 14:38

1996년부터 차근히 쌓아온 배우 송강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한국 영화의 역사가 보인다. 올 한 해 그가 출연한 영화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의 관객을 다 합치면 2000만명을 넘는다. 그의 넉살 좋은 아저씨 미소는 편안하고 소중하다. 위더스필름 제공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영화 <설국열차>와 <변호인>의 경미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음에 걸리시는 독자 분들은 영화 관람 이후에 글을 읽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영화 <변호인>(2013)이 개봉한 직후, 어디를 가든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변호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승한씨는 <변호인> 봤어요? 언제 봤어요? 어떻게 봤어요? 나는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종종 영화 속 송우석 변호사의 모델이 된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로 오인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변호인>은 안온하게 살아가던 돈 잘 벌던 변호사가 우연한 계기로 시대의 모순을 각성하고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바보’ 노무현의 시작이었으니,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그를 적대시하는 사람이든 영화와 그 영화의 바탕이 된 실제 역사를 분리해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리라.

다만 내겐 그런 반응들이 다소 낯설긴 했다. <변호인> 속 송강호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동작이나 말투, 습관을 따라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고인을 떠올리게 하기보단, 관객에게 ‘송우석’이라는 등장인물 자체의 삶을 납득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설령 고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실존 모델의 삶을 전혀 모르는 타국의 관객이 본다 하더라도 <변호인>이 가지는 영화적 의미는 크게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물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소화해내는 송강호의 탁월함에 많은 부분을 빚졌다. 송강호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변호인>은 독립된 텍스트로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대신 실존 인물과 실존 역사에 종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잠시 <변호인>에서 눈을 돌려 송강호의 올해 필모그래피를 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설국열차>(2013)를 기점으로 <관상>(2013)과 <변호인>에 이르기까지, 송강호가 올 한 해 연기한 인물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역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맞아낸 인물이었다. <설국열차>의 남궁민수는 열차라는 시스템과 커티스의 혁명 양쪽 모두에 회의를 품은 무정부주의자였고, <관상>의 김내경은 본의 아니게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정의를 지키는 쪽에 서고자 했으나 끝내 실패한 지식인이었다. 정권의 공작과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맞서 일어선 변호사를 연기한 <변호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아마 <조선일보>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급전 필요한가’ 운운하게 된 것 또한 이런 심상치 않은 행보에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필모그래피를 들어 송강호의 정치적 지향을 넘겨짚기도 하더라. 나는 송강호가 연달아 이런 인물들을 연기하기로 결정한 게 무엇 때문인지 섣불리 말하지 않으련다. 그저 배우가 “좋은 작품인 것 같아 출연했다”고 하면 그런 줄 알밖에. 내가 진짜 궁금한 것은 “왜 송강호가 그런 배역들을 연달아 맡았을까”라는 질문의 정반대편에 있다. “왜 그 많은 감독들은 이런 역사의 격랑 한가운데에 서 있는 배역들을 송강호에게 맡기고 싶어하는 것일까”다.

이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게으른 답변은 “그 연배의 주연급 배우 중 송강호가 상업적으로나 연기력으로나 가장 파괴력 있는 배우이기 때문에”일 것이다. 동년배 주연급 배우 중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배우가 송강호 하나뿐인 것은 아니다. 당장 송강호와 함께 트로이카로 호명되는 최민식과 설경구가 있고, 잠시 동안의 부진을 딛고 일어난 한석규도 있다. 그러니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왜 송강호인가?

그는 어딘지 허술한 ‘흔한 남자’
지식인보단 소시민 역 자주 맡아
관객에게 주인공 활약 체험케 해
올해 그가 연기한 3명의 인물도
역사의 격랑에 휩싸인 ‘장삼이사’
세상 바꾸는 평범한 이들 보여줘

한때 한국 영화계에 지적으로 생긴 남자들이 주연을 도맡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태백산맥>(1994)의 안성기는 좌와 우 모두에 회의를 느끼는 민족주의자 김범우로 분해, 격렬한 좌우대립을 직접 경험한 임권택 감독의 시선을 대신 전했다. 수배를 피해 도망 다니는 법학도 출신의 학생운동가 김영수를 연기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의 문성근 또한 지식인의 자리에서 전태일의 삶을 바라보았던 박광수 감독의 입장을 대변했다. 심지어 블록버스터 영화였던 <쉬리>(1999)의 한석규조차, 인텔리 국가공무원의 자리에 서서 남북 분단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멋진 주인공들이 스크린 위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며 그에 반했고, 그들의 설명을 따라 극을 이해했다.

반면 송강호의 경우는 앞에 언급한 배우들과는 조금 다르다. <변호인>에서 그는 나이트클럽 앞에서 홍보 명함을 돌리다 삐끼로 오인받는 고졸 출신의 속물 세법 변호사였고, <괴물>(2006)에서는 ‘어릴 적 영양소를 잘 섭취하지 못해서 그런지 머리가 좀 그런’ 어수룩한 한강변 매점 주인이었다. <의형제>(2010)에서는 어떻게든 남파간첩을 잡아 팔자를 고쳐보려 하지만 전처를 따라 영국으로 떠난 딸과 통화하고 난 뒤엔 처진 어깨를 감당하지 못하는 못난 아비였고, <살인의 추억>(2003)에서는 매번 뒤통수를 치고 달아나는 범인 앞에서 멍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시골 형사였다. 본의 아니게 계유정난에 휘말린 <관상>에서조차 그의 본질은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고 돈 많이 벌어 식솔을 먹이는 것이 목표였던 평범한 아버지였다.

물론 송강호가 맡은 그 많은 인물들을 한두 가지 공통점으로 싸잡아 묶어 버리는 것은 배우에 대한 결례일 수 있다. 그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공통점을 짚어보자면 영화 속 그의 자리는 주로 상아탑이 아닌 소시민들 틈바구니였고, 무게를 잡고 시대에 고뇌하기보단 주리면 먹고 졸리면 자며, 큰 야망보다는 소소한 행복이 중요한 소탈한 인간상을 더 자주 맡아 왔다는 점일 것이다. 송강호는 극을 설명해주고 이끌어가는 ‘지식인’이 아니라 ‘우리 중 한 명’으로 분해 우리 옆에 서서 스토리라인을 함께 걷는다. 그래서 우리는 송강호가 연기할 때 주인공의 활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주인공의 자리에 앉히고 주인공의 활약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동시대 트로이카로 묶여서 호명되던 최민식이나 설경구와도 또 다른 덕목이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통제불능의 야수성을 속에 꾹꾹 눌러 담은 최민식이나, 허허 웃고 있어도 어딘가 서늘한 기운을 담고 있는 설경구의 연기는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압도’되는 종류의 연기에 가깝다. 설경구와 두 차례 작업하며 등장인물의 뒤틀린 삶으로 객석을 압도하던 이창동 감독이, 영화 <밀양>(2007)에서 여주인공 신애를 물끄러미 뒤에서 바라보는 동네 노총각 종찬의 자리에 설경구가 아닌 송강호를 앉힌 것도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송강호는 어딘가 허술해 보이고, 다분히 무신경하며, 동네 다방 여종업원과 농담 따먹기를 즐기는 흔한 시골 노총각의 연기로 영화 속 밀양이라는 공간의 공기를 그려낸다. 이렇듯 송강호는 우리 중 한 명 있을 법한 ‘흔한 남자’를 그려내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다면 <설국열차>와 <관상>, 그리고 <변호인>을 만든 감독들이 왜 모두 송강호에게 러브콜을 보냈는지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영화의 감독들은 ‘우리 중 한 명’을 탁월하게 그려내는 송강호를 역사의 한가운데에 세움으로써,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목격하는 자리는 위대하고 비범한 인물들만의 몫이 아니라, 바로 나와 당신과 같은 평범한 장삼이사들의 몫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최근 세상을 떠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생전 연설에서 “역사는 왕이나 장군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늘을 살고 있는 평범한 우리 한 명 한 명의 생각과 행동이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왕’이나 ‘장군’이 아니라 저잣거리에 흔한 ‘우리 중 한 명’으로 분한 송강호는, 관객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넌지시 묻는다. “이런 게 어디 있냐”고.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그리 잘나지도 특출하지도 않은 우리가 보기에도 이건 아니지 않으냐고. 영원할 듯했던 열차의 질주를 뽕쟁이 망나니가 멈춰 세웠듯, 촌에 은거하던 관상쟁이가 권력의 심장을 목격하고 증언했듯, 속물 세법 변호사가 시대의 불의와 맞서 싸웠듯, 평범한 당신도 일어설 수 있지 않으냐고 말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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