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때문에 연기력이 가려지는, 미남미녀 배우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배우 이연희는 예쁜 외모를 연기력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은 게 사실이다. 최근 드라마 <미스코리아>에서 연기력이 나아졌다는 반응이다. 이연희는 성장하고 있을까.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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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나의 주변 지인들에게 “이번주엔 이연희에 대해서 글을 쓰겠다”고 말했을 때,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담당기자는 “이연희 좋죠. 하앍하앍”이라는 이상한 문자를 보냈고, 다른 지인은 “그래도 아직 이연희가 연기력을 칭찬받을 정도까진 아니지 않아?”라고 반문했다. 이 두 개의 상이한 반응은 어쩌면 대중이 이연희를 바라보는 대표적인 프레임인지도 모른다. 2004년 한국방송(KBS) 드라마 <해신>으로 데뷔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지만, 이연희에 대한 지배적인 인상은 딱 두 가지로 요약된다.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2006)이나 <엠>(M·2007)에서 보여준 ‘첫사랑’의 이미지, 그리고 ‘니냐니뇨’와 ‘학춤’으로 요약될 연기력 부족.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 배우로선 썩 좋지 않을 타이틀이 생긴다. “예쁜 얼굴 때문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는, 연기 잘 못하는 배우.” 완전히 근거 없는 결론은 아닐 것이다. <백만장자의 첫사랑>, <내 사랑>(2007), <엠>, <순정만화>(2008) 등의 영화에서 그가 맡은 배역들의 주된 일은 오로지 사랑하거나 사랑으로 기억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가 출연한 영화들이 극장에서 흥행하는 일은 드물었고, 그가 스크린 위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주는지 본 이도 그만큼 드물었다. 그러니 그가 영화 속에서 어떤 연기를 펼쳤느냐보다, 영화에서 선보이고 광고로 연장된 ‘첫사랑’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반면 브라운관에서는, 썩 즐겁지만은 않은 필모그래피가 이어졌다. 문화방송(MBC) <에덴의 동쪽>(2008)에서 보여준 몇몇 민망한 대사들과 창, 영어 대사들은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플짤’(플래시 파일)로 저장되어 인터넷을 떠돌아다녔고, 에스비에스(SBS) <파라다이스 목장>(2011)에서 선보인 정체불명의 흥얼거림 ‘니냐니뇨’ 또한 잊혀질 만하면 거론되었다. 비슷한 연배에 이미 성숙한 연기를 선보이는 다른 배우들과 비교되며, 이연희는 연기 못하는 배우의 대명사가 되었다. 에스비에스 <유령>(2012)을 기점으로 연기가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는 평을 듣고는 있지만, 여전히 적잖은 이들은 이연희의 텔레비전 연기를 보면서 불안해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마치 “쟤가 언제쯤 다시 연기를 못하나 보자”는 듯한 눈으로 그의 연기를 본다. 문화방송 <구가의 서>(2013)의 1회가 방송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연희가 어쩐 일로 연기를 잘하나’라는 식으로 바라봤다. 2회에서 다시 발성이 흔들리자 ‘그러면 그렇지’라는 식으로 치부했다. 마치 그의 연기가 나아진다는 게 가당치 않다는 듯, 연기가 좋아진 게 몹시 이상한 일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그래서 문화방송 <미스코리아>(2013~)에서 이연희가 망가지고 울고 웃고 구르는 모습들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불신의 눈으로 그를 본다. 자, 저자가 과연 언제쯤 넘어질까? 물론 연기를 썩 잘하지 못하는 배우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주연급 배역을 꿰차고, 쉬지 않고 광고를 찍는 배우라면 분명 비판받을 지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만약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활동했어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글쎄, 아마 양상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연기를 잘한다고 칭송하는 중견배우들 중 적잖은 수가 초년엔 서툴고 다듬어지지 않은 연기를 하곤 했다. 정보석이 연기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고, 고현정 또한 문화방송 <여명의 눈동자>(1991)에서는 연기력을 이유로 혹평을 들었다. 하지만 그 시절엔 그들이 연기를 못하는 특정 장면들을 캡처해 반복해서 재생해주는 인터넷 ‘플짤’ 따위는 없었고, 연기를 못했던 시절의 시행착오들은 연기력이 향상되면서 자연스레 세월에 묻혀 잊혀졌다. ‘연기 못하는 배우’ 꼬리표어색한 연기장면 인터넷 떠돌아
‘미스코리아’ 달라진 모습에도
시청자들 불신의 시선 여전
그를 향한 객관적 평가 언제쯤… 세계에서 제일 빠른 수준의 인터넷 광케이블이 전 국토에 설치된 시절에 데뷔한 이들에겐, 안타깝게도 그렇게 잊혀질 기회가 없다. 예전엔 배우들이 상대 방송사의 드라마와 경쟁을 해야 했다면, 이연희는 과거의 자신이 남긴 연기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미스코리아>에서 이연희가 아무리 울음과 서러움을 삼키며 억지로 웃어 보이는 장면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잘 살려낸다 해도, 토크쇼에서는 그보다 더 먼저 퍼졌고 더 오래 살아남은 ‘니냐니뇨’ 장면을 재현해주길 요구한다. 같은 소속사의 고아라는 티브이엔(tvN) <응답하라 1994>(2013)를 찍고 난 뒤, 과거 자신의 대표작이었던 한국방송 청소년드라마 <반올림>(2003)의 옥림 역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답답했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이연희에게는 그렇게나마 기억되는 좋은 시절도 없다. 그는 여전히 ‘니냐니뇨’와 ‘학춤’으로 기억된다. 때로 어떤 낙인은 필요 이상으로 깊게 찍힌다. 한 차례 그렇게 표적이 된 배우는 놀려 먹기 쉽고 안전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에덴의 동쪽>에서 이연희의 연기는 예의 삼아서라도 잘했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지만, 그에게 주어진 대사의 수준은 그의 연기력보다 훨씬 더 끔찍한 것이었다. 물론 그 드라마의 각본은 총체적으로 난국이었고, 그 와중에도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있었으니 모든 것을 각본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연희에게 주어진 대사들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좀 정도가 심했다. “아저씨, 날 벌써 사랑하게 된 거니?”라거나, “얼른 말해. 내가 사랑스럽다고! 둘 다 살아나면 날 사랑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해!” 같은 대사는 21세기 대명천지에 지상파 방송을 탄 드라마라고 믿기엔 가혹할 정도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였다. 상황이 이러니 악명은 실제보다 더 세게 퍼졌다. 극중 이연희의 대표적인 대사라고 알려진 “난 슬플 땐 학춤을 춰”라는 대사는 드라마엔 나오지도 않았다. 천계영의 순정만화 <언플러그드 보이>(1996)에 등장했던 “난 슬플 땐 힙합을 춰. 아무도 내가 슬프다는 걸 눈치챌 수 없도록”이란 대사를 패러디해, <에덴의 동쪽>이 구현한 세계관과 캐릭터의 허술함을 비아냥거리려던 비평지 기자의 농담이 와전에 와전을 거듭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아무도 실제로 보거나 들은 적 없는 대사가 지금까지 와전되어 온 것은, 그만큼 <에덴의 동쪽>의 다른 대사들 수준이 형편없었음을 반증한다. 그런 드라마의 수준을 고려할 때, 모든 걸 이연희의 연기력 부족으로 돌리는 건 이연희에겐 다소 억울한 일일 것이다. <파라다이스 목장>이라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니냐니뇨’ 동영상을 보면서 키득거리지만, 그중 드라마를 직접 본 이들의 비율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불행하게도 당시 비평지 기자였던 탓에 그 드라마를 보고야 말았는데, 제작진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드라마도 어떻게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었다. 1화부터 화면 위를 둥둥 떠다니는 핑크색 하트가 목욕을 하고 나온 남자주인공의 아랫도리를 가리는 드라마를 진지하게 비평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지경이었으니까.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모조리 대사로 구술해서 설명하고 넘기기 바빴고, 그런 탓에 등장인물들은 제 속마음을 만천하에 광고하듯 떠들고 다녀야 했다. 이런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연기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 아닌가.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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