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철민은 최근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를 연기했다. 그의 연기는 사회의 양심을 일깨우며 평범한 우리네 일상을 따뜻하게 울린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제작사 제공
|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그에겐 변변한 이름이 없는 일이 잦았다. 엔딩 크레디트 위에서 그는 ‘시민군 케이(K)’였고 ‘우리들’이었으며 ‘웨이터’ ‘회사 동료1’ ‘여관 주인’이었다. 꼭 배역 크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알리게 된 이후에도 그는 ‘형사’ ‘둘째’ ‘담임선생님’ ‘캡틴’ 등의 이름으로 작품에 임했고, 사람들은 배역의 이름보단 배우의 얼굴과 애드리브로 그를 기억하곤 했다. 가만히 있어도 뚝배기처럼 촌스럽고 짠한 얼굴을, 웃을 때면 그 윤곽이 무너질 정도로 크게 웃는 통에 입 양옆으로 팔자 주름이 계곡처럼 파여 버린 남자. 입으로 바람 소리를 내면서 “이것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야”라고 부르짖는 허세투성이 사내. 한껏 피치가 올라가는 목소리와 씰룩이는 입술, 진한 호남 말씨로 매사에 전투적으로 반응하는, 살면서 어느 골목에선가 한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유난히 호들갑스러운 사람. 사람들은 구태여 그를 배역의 이름으로 기억하지 않았다. 그는 브라운관이나 스크린 너머, 주인공이 아닌 장삼이사의 삶을 사는 ‘우리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렇게 박철민은 은근슬쩍 우리의 옆자리를 치고 들어왔다. 영화 <스카우트>(2007)에서는 “왜 멋있는 건 그쪽 혼자 다 하려고 하느냐”며 주인공 호창(임창정)에게 눈을 흘기다가도 결국 그를 돕는 연적 ‘곤태’로, <화려한 휴가>(2007)에서는 전남도청을 지키다 죽어간 이름 없는 사내 중 하나인 ‘인봉’으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2008·문화방송)에선 클래식을 동경하면서도 몸에 밴 성인 카바레의 기운을 빼지 못해 괴로워하는 색소폰 주자 ‘용기’로. 박철민은 항상 어딘가 한 끗발 모자라지만,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우리의 못난 동료, 친구, 감초로 변신해 화면을 채웠다. 박철민, 촐싹대는 감초로 유명
‘또 하나의 약속’ 주연 맡자
반신반의하는 사람들 있었다
특유의 과장된 연기톤 절제
평범한 남자의 비범함 그려
실화 속 아버지가 ‘고스란히’ br>
때로는 그의 과감한 애드리브나 특유의 과장된 발성에 대중의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못난 장삼이사가 흔히 그렇듯 그는 미워도 많이는 미워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지난 십수년간 대중의 지근거리를 지켰다. 매번 비슷한 역만 맡으며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내가 배우인 것도 운명이고, 이 캐릭터를 확 깨지 못하는 것도 운명이다. 모자라지만 친근하고 구성진 이 캐릭터라도 완벽하게 만들어보자”고 다독이면서. 젊은 시절 마당극에 오래 몸담았던 박철민은 감독에게 “마당극적인 연기를 하시네”란 말을 들으면서도 “어느 무리든 한 놈은 호들갑스럽고 과장스럽게 감정을 표출하는 이가 있다”며 자신의 연기를 캐릭터화했고, 그 결과 특유의 연기 톤은 대중의 뇌리에 깊숙이 남았다. <또 하나의 약속>(2013)에서 박철민이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반신반의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삼성반도체 입사 2년 만에 백혈병을 얻어 2년의 투병 끝에 스물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황유미씨와, 딸의 죽음이 산업재해임을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과 그 뒤에 숨은 삼성과의 외로운 싸움을 계속한 끝에 결국 1심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낸 아버지 황상기씨의 실화를 다룬 영화의 주연. 과연 촐싹거리는 감초 연기로 일가를 이룬 박철민이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을 품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스스로도 “까불고 능청스러운 편안한 이미지가 너무 정형화되어 지겹기도 하고 한계도 느꼈”을 무렵이었으니, 보는 이들이라고 비슷한 걱정을 안 할 리가 없었다. 박철민으로선 억울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대학 졸업 뒤 노동극단에서 활동을 시작한 배우이고, 1980년대 말 화려한 재담으로 노동자와 학생들의 집회를 이끌던 집회 사회자 ‘민주 대머리’였다. 그런 그에게, 젊은 노동자의 죽음과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싸움이 그리 낯선 이야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십수년의 필모그래피는 예전의 박철민과 오늘날의 박철민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조선인인 것을 숨기고 사는 친구 역도산을 바라보는 말수 적은 재일조선인 김명길(<역도산>·2004)처럼 차분한 배역을 맡은 적도 있건만, 100편 가깝게 쌓인 필모그래피에서 그런 역을 콕 집어 기억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미묘한 반신반의의 기류 안에서 박철민은 묵묵히 촬영에 임했고 끝내 영화를 완성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객석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개봉 2주차에 확대상영에 나선 <또 하나의 약속>에서, 박철민의 연기는 화려하지 않지만 조용히 그 빛을 발한다. 다 큰 딸과 소주 한잔을 나눠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하며 웃는 소박한 아버지의 웃음에서, 회사에서 백혈병을 얻어 돌아온 딸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굳어버리는 창백한 절망의 표정까지, 박철민은 그 아찔한 낙폭을 차분하게 연기해낸다. 아픈 딸에게 “아프면 아프다고 윗사람한테 이야기하지, 왜 이야기를 안 했느냐”며 다그치는 것 말고는 다른 위로를 미처 떠올리지 못하는 못나고 투박한 아비, 딸의 치료비를 회사에서 대준다는 말에 멋도 모르고 순순히 산재 신청 포기각서를 받아들이는 순진한 중년, 연락을 고의로 무시하는 회사 인사과 직원에게 “이 쌍놈의 종자야”라고 음성메시지를 남겨놓고선, 정작 직원이 병원에 찾아오자 일단 고개부터 숙이는 힘없는 소시민. 박철민은 안으로 수그러드는 말투와 처진 어깨로 그 지옥과 같은 세월을 통과하는 한 남자의 초상을 그려낸다. 종종 흥분하면 섞여드는 콧소리가 잠시 박철민의 예전 필모그래피를 떠올리게 하다가도, 1인시위를 막으려 회사가 보낸 버스 차벽 안에 갇혀 망연자실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의 적막함은 관객의 시야를 다시 영화 안에 온전히 붙박아 둔다. 신기하게도, 특유의 과장된 연기 톤을 절제했음에도 우리와 부대끼며 사는 평범한 장삼이사의 얼굴은 고스란히 박철민의 육신을 통해 화면 위로 떠오른다. 영화의 오프닝, 뒷자리에 탄 손님에게 “두 분은 언제 결혼해요? 내가 택시 운전만 25년을 했어요. 어떤 사연 있는 손님인지 보면 대번에 알아요”라고 말을 건네는 모습은 긴 설명 없이도 인물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살아왔는지를 설명해준다. 화려한 스타 이미지 하나 없이 지난 십수년간 관객과 면을 터온 박철민의 친근한 얼굴은, 이 영화가 거대 기업과 제도의 허점과 싸워 이긴 특별한 영웅에 대한 서사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중에 한 명일지 모르는 아주 평범한 남자의 비범한 이야기라는 점을 관객에게 즉각적으로 상기시키는 힘을 지녔다. 덕분에 <또 하나의 약속>은 사회고발 영화라는 층위와 평범한 가장이 외부 충격으로 붕괴된 가족공동체를 복원하고 죽은 딸과의 약속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가족극의 층위도 함께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또 하나의 약속>은 엄청난 수작이라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배경음악은 종종 관객보다 앞서 슬퍼하고, 대사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투박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지니는 의의가 있다면, 이 영화가 강자에 대한 약자의 기적적인 승리를 담아낸 영화라는 데 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 허지웅의 지적대로, 불의에 맞서 싸우다 패배하는 비극적인 서사 속에서 관객들은 울분을 쌓는 동시에 저도 모르는 사이 패배를 학습하곤 한다. 그런 냉소와 염세 속에서 한 평범한 아버지가 이뤄낸 승리의 기록은 보는 이로 하여금 패배의식을 딛고 다시 희망을 가지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그 의의의 대부분은 실화의 주인공인 황상기씨와 고 황유미씨에게 빚진 것이겠지만, 평범한 장삼이사가 영웅으로 각성하는 일 없이 세상과 맞서 싸워내는 모습으로 인물을 완성한 박철민 또한 충분히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장삼이사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살아낸 박철민이 일궈낸, 작지만 옹골차게 빛나는 성취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