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규는 한국방송 대하사극 <정도전> 속 고려 말 최고 권력자 이인임을 연기한다. 박영규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가 유명하지 않던 역사적 인물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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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에 발묶였던 박영규, 이인임의 ‘명품 연기’로 꽃피다
저열하지 않은 이 악역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2013년 초 영화 <남자사용설명서>(2012) 개봉 당시, 감독 이원석은 비(B)급 코미디 감성을 담은 대본에 적잖은 배우들이 당황했다며 박영규의 예를 들었다. 작중 수수께끼의 박사 ‘닥터 스왈스키’ 역으로 출연해 진지한 연기로 극의 코미디를 이끌어갔던 박영규조차, 처음엔 ‘나까 코미디’(맥락도 없고 페이소스도 없는 종류의 저급 코미디를 가리키는 은어)인 줄 알고 출연을 꺼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영화는 독특한 질감을 지닌 몽환적인 로맨틱 코미디로 완성됐고 박영규도 멋진 연기를 선보이는 데 성공했지만, 이 일화를 박영규의 입장에서 다시 곱씹어보면 조금 서글픈 구석이 있다. 에스비에스(SBS)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1998)의 전설적인 캐릭터 ‘미달이 아빠’로 코미디 연기에 일가를 세운 그에게 얼마나 많은 코미디 영화의 대본이 갔을 것이며, 그중에서 아무 맥락도 페이소스도 없이 그저 웃기기만을 요구했던 영화는 또 얼마나 많았으랴. 어쩌면 <남자사용설명서> 또한 그 수많은 제안 중 하나로 보였을지 모른다.
시계를 조금만 더 뒤로 돌려서 그가 한창 멜로드라마의 일인자로 군림하던 1980년대 말~90년대 초로 가보자. 문화방송(MBC) 드라마 <내일 잊으리>(1988)에서 애인 성현(임채무)에게 버림받고 복수심을 불태우던 인애(김희애)를 묵묵히 감싸 안아주던 동준 역은, 박영규 스스로의 표현처럼 “장동건, 배용준 부럽지 않은” 인기를 불러모았다. 그윽한 눈빛과 시원하게 뻗은 콧날, 중저음의 목소리는 그에게 ‘한국의 클라크 게이블’이라는 별명을 선사했고, 서른이 넘은 늦은 나이에 티브이에 데뷔한 그는 빠른 속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 무렵 그의 필모그래피가 어땠는가 돌아보면, 또 그렇게 작황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레테의 연가>(1987), <애란>(1989), <서울무지개>(1989) 등의 영화는 박영규의 잘생긴 외모와 매끄러운 매너만을 부각시킨 멜로드라마의 게으른 반복에 가까웠고, 심지어 희대의 괴작 <신사동 제비>(1989)에서 맡은 ‘제비도사’ 역은 ‘연애에 능한 느끼한 남자’라는 이미지만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그쳤다. <순풍 산부인과>를 만나기 직전까지 이어졌던 그 상황 속에서, 박영규는 지금껏 자신이 쌓아온 이미지를 부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나긋하면서도 무시무시하고
협박하되 저열하지는 않은
‘정도전’ 속 박영규의 명품연기
억지로 꾸며서 보여주는 대신
원래 자신의 색깔 자연스레 변주
그에게 정극과 희극은 동전의 양면
삶과 연기 또한 둘이 아니라 하나
절박한 진심을 담아 그는 연기한다
멜로드라마를 잘했더니 멜로드라마의 이미지만 강화되었던 90년대 초와, 코미디를 잘했더니 코미디의 이미지만 강화된 2010년대 초. 십수년의 시차를 두고, 박영규는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물론 배역을 결정하는 것은 배우 본인이니만큼 박영규의 책임도 없지 않지만,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의 특성상 비슷한 제안 속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였음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개탄하는 가장 쉬운 길은 “창작자들이 너무 게으르다”고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만, 타이프캐스팅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어느 한가지 이미지를 소화하는 데 능한 배우가, 그 존재 자체로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뮤즈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 뮤즈에게서 얻은 영감을 기반으로 써 내려간 캐릭터를 다시 그 배우에게 맡기는 일 자체가 뭐 그리 큰 잘못이겠는가. 다만 박영규에겐 그 세월이 너무 길었다. 창작자들이 박영규에게서 다른 이미지를 상상하고, 날개를 달아주는 작업은 그의 능력에 비해 더뎠다. 박영규는 그렇게 배우 인생의 초반 십수년을 멜로드라마에, 후반 십수년을 코미디에 묶여 살았다. 그 어떤 배우에게나 한가지 이미지에만 안주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박영규에겐 특히 더 그랬을 것이다. 코미디를 연기하는 순간에조차 자신의 인생사에서 채취한 슬픔을 담아냈던 박영규에게, 정극과 희극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았기 때문이다. 2003년 영화 <보리울의 여름> 개봉 당시, 박영규는 영화 홍보차 <씨네21>과 한 인터뷰에서 남동철 기자에게 자신의 연기관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미달이 아빠는, <똑바로 살아라>의 영규는 나야. 내가 그 사람이야. 나를 보고 웃는 이유는 저 사람은 저걸 연기로 하는 게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야. 왜? 그 모습이 너무 절실하니까. 가슴 아픈 그 절실함이 코미디고 트래지디지. 비극과 코미디는 그러니까 쌍둥이야. 진실이 인볼브 안 돼 있는 건 안 되는 거지. 다 거짓말이야. 진실이 들어 있을 때 웃는 거라고요.” 진지한 순간에도 인생의 아이러니가 담겨 있고, 우스꽝스러운 상황도 자세히 뜯어보면 절박한 진심이 담겨 있다고 믿는 박영규에게, 인생의 어느 한쪽만 확대해 보여주기를 지속적으로 요구받는 상황은 분명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배우가 대중에게 사랑받고 관심 속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것은 크나큰 복이겠지만, 보여줄 수 있는 수많은 모습들 중 어느 한가지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까지 복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스스로는 “생각했던 대로 삶이 전개된 매우 운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중년 연기자에서 장년 연기자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어느 순간 굳어져 버린 이미지를 바꿔야 하는 시점이 차차 다가오고 있었다. 멜로드라마의 이미지에 갇힌 자기 이미지를 부숴야겠다고 생각했던 90년대 말엽의 그때처럼. 그리고 그 순간, 코미디의 이미지 안에 갇혀 진중한 역을 과연 잘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세간의 인식이 단단해졌을 무렵, 박영규는 한국방송(KBS) 대하사극 <정도전> 속 고려 말 최고 권력자 이인임으로 분했다. 이상만 앞서는 풋내기 정도전(조재현)에게 개혁이 아닌 근본적인 혁명을 꿈꾸게 만든 흑막이자, 그 누구도 얕잡아 보지 않고 모든 정적에게 최선을 다해 맞서는 이 노회한 정객에게 시청자들은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마치 <선덕여왕>(2009, 문화방송)의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미실(고현정)의 카리스마에 반해 “드라마 제목을 <미실>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을 걸었던 것처럼, 세간에는 “대하사극 <정도전>이 아니라 대하사극 <이인임>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이 번지고 있다.
KBS 대하사극 정도전.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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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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