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승환이 정규 11집 파트1인 <폴 투 플라이(Fall to Fly)-전(前)>을 발매했다. “대중적인 발라드를 담은 전(前)의 반응이 좋지 않으면 록 사운드와 실험적인 트랙들이 담긴 후(後)는 아예 발매하지 않겠다”는 그의 절박함에서 음악판의 현재를 읽는다. 드림팩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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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CD 앨범은 이번만으로…
다음 발표곡 앨범으로 낼지…
4년만에 11집으로 돌아온 뒤
또다시 ‘마지막’ 배수진을 쳤다
더이상 앨범을 사지 않는 ‘대중’
그를 벼랑으로 내모는 건 우리다
언제부턴가 이승환은 자꾸 마지막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홉 번째 앨범 <환타스틱>(Hwantastic)을 발매한 2006년, 그는 음악의 본질적인 면모인 사운드의 중요성은 간과되고 상업적인 면모만 강조되는 세태에 대한 경각심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다음 앨범은 시디(CD)로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것은 사회적 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지금 시디 발매를 했을 때 한번쯤 생각해봐 달라’는 의미에서 과격한 표현을 한 거다. 내 다음 정규 앨범이 나올 2, 3년 후에는 정말 시디가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2006년 12월 <채널예스> 김정희 편집장과의 인터뷰 부분) 이승환의 말처럼 시디가 사라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시장이 붕괴했음을 확인할 수는 있었다. “기둥뿌리를 뽑아 만들”었다던 그의 아홉 번째 앨범의 판매고는 5만여장. 변변한 기획사 없이 혼자 만든 1집 <비시(B.C) 603>(1989)의 판매고가 100만장을 훌쩍 넘겼던, 좀처럼 무대를 떠난 적이 없던 데뷔 17년차 현역 가수의 9집은 그렇게 기록되었다.
10집 <드리마이저>(Dreamizer)가 발매된 2010년에도 이승환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음악을 앨범 단위로 소비하는 풍조는 저물고 싱글 한두 곡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으니 이젠 다음 앨범을 기약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러니까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해외 유명 엔지니어들의 믹싱, 전세계를 뒤져 찾아낸 스태프와 아티스트들과의 협력, 고가의 빈티지 악기나 오케스트라 같은 어마어마한 물량 투입까지. 이승환은 5집 <사이클>(1997) 시절에도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고, 그때나 2010년도에나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는 흔치 않았다. 기껏 심혈을 기울여 작업을 해봐야, 320Kbps로 압축된 엠피스리(MP3) 포맷으로 음질이 잔뜩 깎인 채 유통되고 소비되는 음원 중심의 시장에서 누가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10집도 시장에서의 반응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대중성을 고려한 듯 쉽게 쓰인 발라드들은 그의 골수팬들이 듣기엔 다소 성에 안 차는 선택이었다. 4집 <휴먼>(1995)과 5집 <사이클>, 6집 <더 워 인 라이프>(1999)로 이어지는 이승환 디스코그래피의 황금기를 맛본 골수팬이라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11집의 파트1인 <폴 투 플라이(Fall to Fly)-전(前)>의 발매를 맞이하는 팬들의 심경은, 글쎄, 반가운 동시에 다소 울적하다고 해두자.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공연 관객과 앨범 판매고를 보며 ‘내리막길’을 생각했고, 그것이 ‘다시 날아오르기 위한 추락’일 것이라 믿으며 붙였다는 앨범의 제목도 울적하지만 “대중적인 발라드를 담은 전(前)의 반응이 좋지 않으면 록 사운드와 실험적인 트랙들이 담긴 후(後)는 아예 발매하지 않겠다”는 그의 절박함이 아직 해소가 안 됐다는 사실이 더 참담한 것이다. 근 10년간 매번 ‘이번이 이 사람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에 시달리고 있노라니, 이게 팬질을 하는 건지 협박을 당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는 마음도 불편하고 말이다. 뭐 어쩌겠는가. 그렇게 계속 근 10년에 걸쳐 마지막을 이야기하게 되는 가수의 위기감도 이해가 되고, 그 위기가 자신들이 앨범을 구매하고 공연 티켓을 예매하는 행위로도 해소가 안 되는 현실도 답답한 노릇이니 말이다. 5집부터 그의 팬이 된 나 같은 풋내기 팬도 그럴진대, 1집부터 그를 따라온 골수 중의 골수들이 느끼는 쓸쓸함은 어떠랴.
좀처럼 티브이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데뷔 25년차 가수가 몇 년에 걸쳐 티브이 출연을 야금야금 늘리고, 알고 지내는 기자도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이 이틀에 걸쳐 수차례의 라운드 인터뷰(여러 언론사가 배석해 동시에 질문하는 인터뷰. 보통 한 차례에 열 팀 안팎의 기자들이 함께한다)를 하는 상황, 혹은 해야만 하는 상황. 이승환만이 겪고 있는 일은 아니다. 티브이에 좀처럼 나오지 않던 아티스트였던 유희열이나 정재형은 요 몇 년 사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개수를 부쩍 늘렸고, 예능에 가장 먼저 자리잡은 윤종신은 꾸준히 월 단위로 발표한 음원을 모아 일 년치의 결과를 앨범으로 재구성해 발표하는 식으로 재편된 시장 속에서 자리를 확보했다. 음원 위주로 시장이 완전히 재편된 마당에, 가수 입장에서 대중을 마냥 설득만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아티스트들이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접점을 조율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광경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런 이야기는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음악 시장이 너무 아이돌 시장 위주로만 돌아가서 실력 있는 가수들을 찾아볼 수 없다”고 쉽게 이야기하곤 한다. 거대 기획사들의 횡포에 가까운 물량 공세를 이야기하고, 어떻게든 인기를 얻기 위해 섹시코드를 선택하는 아이돌들을 ‘씹는’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하는 이들 중 최근 직접 시디를 구매해본 이들이 몇이나 될까. 아이돌 위주로만 기울어진 대중음악 시장을 개탄하고, 앨범 한 장 살 돈으로 150여 곡을 내려받을 수 있는 정액제와 스트리밍 요금제라는 폭력적인 대안의 존재를 비난하는 이들의 존재는 이리도 많은데, 왜 여전히 앨범은 잘 안 팔리고 가수는 ‘마지막’을 이야기하는가 말이다. 답은 결국 하나다. 음악 시장의 현실을 개탄하는 우리 중 많은 수 또한 역시 예전만큼 앨범을 돈 주고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승훈과 김건모라는 텐밀리언셀러만 두 명을 만들어낸, 돈 주고 앨범을 사는 걸 당연히 여기던 90년대의 우리들은 대체 다 어디로 갔는가. 앨범을 사던 사람들이 예전만큼 시장에 활발하게 참여하지 않는데 대체 누가 균형을 잡는단 말인가. 그 와중에 적극적으로 시장에 참여하고도 애꿎게 욕을 먹는 아이돌 팬들은 또 무슨 죄고. 그들은 적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제 돈 주고 사는데 말이다.
어쩌면 함정은 흔히 쓰는 ‘대중’이란 단어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우리는 “우리나라 대중이”라고 말문을 뗄 때 대체로 객체인 대중의 행태를 관찰하는 평가자의 자리에 서서 생각하지, 나 자신 또한 그 대중의 일부임을 계산에 넣진 않는다. 그러니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붕괴 원인을 이야기할 때 “아이돌 천하인 음악판”을 개탄하고, 티브이에 선보이기 편한 아이돌을 편애하는 예능 프로그램 피디들을 욕하고, 엠피스리 음원 요율 계약을 참담한 수준으로 체결한 한국음반제작자협회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왜곡된 요율을 유지하는 음원 유통사들을 비난해도, 예전만큼 앨범을 돈 주고 사지 않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는 찾기 힘든 것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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