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유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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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지난 수요일 첫 파일럿 방송이 나간 한국방송(KBS) 토크쇼 <나는 남자다>에 대한 인터넷상의 반응은, 글쎄, 어딘가 좀 뜨뜻미지근하다. 한편에선 250명에 이르는 일반인 방청객과 패널들을 혼자서 쥐락펴락하며 녹화를 진두지휘한 유재석의 진행능력에 대한 상찬이 이어지는 동안, 다른 한편에선 핵심 코너 없이 ‘일반인 남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대재생산하고 ‘남중-남고-공대’ 출신 남자를 대상화하는 수준에 그치는 농담들을 하염없이 늘어놓은 백화점식 구성이 산만했다는 지적도 고개를 드는 것이다. 물론 의견의 비율을 보면 전자의 압도적인 승리다. 인터넷 포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의 반응은 방송에 대한 호의적인 의견이 대부분이고, 방송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들조차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를 ‘지적’하기보단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하는’ 분위기일 정도니까. 포털 사이트 ‘다음’이 마련한 네티즌 투표에서 이 방송이 정규편성이 되길 바란다고 응답한 네티즌의 비율은 87%에 육박한다. 파일럿 방송 ‘나는 남자다’
탁월한 진행 불구 위기론 나와
무명부터 지금까지 실패 반복
보완·재도전하며 정상 올라
완벽하지만 약점 없다는 거리감
찌질함 드러낸 토크쇼로 좁힐까
말 좋아하는 이들은 벌써부터 ‘유재석이 진행을 맡았는데도 프로그램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니’라며 위기를 논한다. 절반은 틀렸고 절반은 맞는 소리다. 틀린 것부터 짚어보자면, 유재석에게도 맡은 프로그램이 속절없이 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명 시절을 보냈던 1990년대뿐 아니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2000년대에도 그는 자잘한 실패들을 반복해왔다. 특히나 에스비에스(SBS)의 일요 예능 프로그램 기록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일요일이 좋다>의 ‘엑스맨’이 시청률 부진으로 폐지되었던 2006년에서 ‘패밀리가 떴다’로 다시 일요 예능의 체면치레를 할 수 있게 된 2008년 사이, 유재석이 그 시간대에 시도했던 모든 일요 예능은 실패로 끝났다. ‘하자고’와 ‘옛날티브이’, ‘기적의 승부사’에 이르는 프로그램들은 길어봐야 6개월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폐지되었다. ‘패밀리가 떴다’로 다시 <일요일이 좋다>의 시청률을 끌어올리기까지 2년, 유재석은 그 시간대를 지치지 않고 공략했다. 이미 문화방송(MBC) <무한도전>이라는 시그니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던 시절의 일이다. 폐지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자리를 잡은 프로그램조차 유재석은 쉽게 자리를 잡아 본 적은 없었다. 8년을 버틴 문화방송 <놀러와> 또한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몇 번이고 집요하게 포맷을 갈아엎고 시간대를 이동하는 실험을 했던 프로그램이고, 내년이면 방송 10주년을 맞는 <무한도전> 또한 초반에는 시청률 부진으로 폐지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던 프로그램이었다.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조차 초반에는 여타 다른 게임 쇼 프로그램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는 비판에 시달렸고, 한국방송 <해피투게더> 역시 매번 매너리즘의 위기에서 포맷을 쇄신하는 형태로 오늘날에 이르렀다. 유재석은 타고난 재능으로 프로그램을 성공으로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방식이 통할 때까지 실패와 보완, 재도전을 반복하는 집요함으로 프로그램을 견인하는 종류의 예능인이다. 유재석이 프로그램을 안착시키는 방식은, 아마 그 자신이 오랜 무명 시절을 극복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방식과 맥락을 같이할 것이다. 극심한 무대공포증과 개인기 부족, 멘트를 던지는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90년대 내내 무명 시절을 헤매던 유재석은, 그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인기 있는 동료들의 방송과 자신의 방송을 모니터링하며 자신의 약점을 점검하고 타인의 장점을 벤치마킹했다. 한국방송 <서세원쇼>의 토크박스에서 선보였던 입담을 조금씩 강화하고, 동료 강호동의 타이밍과 개인기, 신동엽과 김용만의 상황 정리 능력 등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은 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 포맷인 ‘오합지졸 남자들의 좌충우돌 도전기’를 끊임없이 시도했고, 한국방송 <슈퍼 티브이 일요일은 즐거워> ‘천하제일 외인구단’이나 에스비에스 <일요일이 좋다> ‘유재석과 감개무량’의 실패에도 지치지 않고 조금씩 포맷을 보완해가며 자신의 비전을 관철시킨 끝에 <무한도전>의 성공을 거뒀다. <무한도전>이 추격전을 자주 선보이자 더 박진감 넘치는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했고, 그 기세를 몰아 ‘런닝맨’까지 시도할 수 있었다. 천재형 예능인 신동엽과 동물적 직감과 승부사적 기질의 예능인 강호동 사이에서, 유재석은 ‘될 때까지’ 지치지 않고 보완하고 도전하는 집요함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라온 것이다. 그러니 파일럿 프로그램이 불만족스럽다 해서 속단할 순 없는 노릇인 게다. 그렇다면 말 좋아하는 사람들의 우려가 절반은 맞다고 한 이유는 뭘까. 바로 그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남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그는 실패를 해도 용인될 수 있을 만큼 빈 틈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던 90년대에 그는 실패를 반복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무명 코미디언이었고, 프로그램 자체의 단점을 꾸준히 보완해가며 재도전을 하던 2000년대의 그는 ‘정상급’ 코미디언이었지만 지금처럼 독보적인 ‘유느님’의 지위를 차지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뻔뻔스레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고 자처할 수 있었던 2000년대 중반, 그는 ‘야한 비디오’를 즐겨 보고 이상하리만치 ‘삼바’에 집착하는, ‘깐죽거리며 멤버들을 놀리기를 즐기는’ ‘체력이 부실한’ 노총각이었다. 2010년대가 되자, 그는 모든 걸 가진 남자가 되어 버렸다. 꾸준한 운동의 결과로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한 몸과 체력을 지니게 되었고, 남부러울 것 없이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미중년이 되었으며, 누구와 대화를 나누어도 순식간에 캐릭터를 만들어주고 화학작용을 이루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강호동과 신동엽이 오랜 부진과 부활을 겪는 동안 큰 부침 없이 최정상의 위치를 지키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 것이다. 각종 지표 조사에서 근 10년째 ‘한국인이 사랑하는 코미디언 1위’, ‘광고주가 선호하는 연예인 1위’ 등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으며, 그가 무명 시절을 어떤 마음으로 통과했는지를 담은 노래 ‘말하는 대로’를 청춘의 송가 반열에 올려버린 남자. 유재석은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실패를 하는 게 ‘그럴 수도 있는 일’로 용인되기 어려운 위치까지 올라와버렸다. 편하게 놀리고 웃고 떠들 만한 소재로서의 약점이 전혀 없는 예능인은 다가가기 어렵다. 신동엽에게는 사업 실패가, 강호동에게는 ‘단순무식’이라는 이미지가, 이경규에게는 영화 <복수혈전>이, 김구라에게는 인터넷 방송 시절의 원죄가 있다. 유재석에게서는 더 이상 그런 것을 찾기 어렵다. 완벽에 가까운 중재자이자 놀릴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바른생활 사나이. 유재석은 이제 모두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방송인이 된 대신, 예전만큼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내도 좋을 만한 사람이 될 순 없게 되었다. 실제로 최근 1~2년간 그가 <무한도전>과 <해피투게더> 등을 통해 조금씩 다시 예전의 ‘깐죽거리며 사람들을 놀리기 좋아하는’ 잔소리꾼의 캐릭터를 점진적으로 확장해 온 것 또한 그런 거리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과거 멤버들끼리 피차 못나고 약점이 많던 시절에야 잔소리와 깐죽거림이 편안한 웃음의 요소가 될 수 있었겠지만, 완벽에 가까운 남자가 던지는 잔소리와 깐죽거림이란 건 아무래도 어딘가 불편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런 남자에게 과연 과거처럼 대중이 너그럽게 실패와 재도전을 용인할 것인가? 애칭부터가 농반진반으로 신격화된 ‘유느님’이 된 남자에게?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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