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천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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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주의: 글 말미에 영화 <사이에서>(2009), <한공주>(2013)의 결말과 관련된 직접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은 이 글을 잠시 미뤄두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올해 처음 그를 본 건 <우아한 거짓말>(2013)에서였다. 그가 맡은 배역인 미란은 그리 비중이 크지 않은 조역이었지만, 미란이 등장할 때마다 화면은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성동일이 연기하는 아버지 만호와 대립하는 장면이나, 긴장감이 최고로 고조되는 순간 중 하나인 학교 옥상 신에서 그는 과시하지 않고 조용히 존재감을 발산했다. 오버액션으로 주연에게 가야 할 시선을 빼앗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레 제 몫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 배우는 대체 누구지. 영화가 끝난 뒤 엔딩크레디트를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이름이 등장한다. 천우희. 어디서 들었지. 갸우뚱하며 극장에서 걸어 나오던 그날 밤, 난 <써니>의 ‘본드걸’ 상미와 <우아한 거짓말>의 미란을 연결시키지 못했다. (내가 띄엄띄엄 떨어진 점들을 다시 이을 수 있게 되었던 건 <한공주>를 보고 난 뒤였다. 그 이유는 글의 후반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첫 단독 주연 장편인 <한공주> 이후, 이제 그의 이름은 ‘누구였더라’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유수의 언론에서는 그가 세계적인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로부터 찬사를 받았다는 점을 예로 들거나, <한공주> 한 편에서 그가 얼마나 생생하게 인물을 빚어냈는가를 분석하며 천우희의 새삼스러운 발견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남긴 장편이 아직 열손가락을 채 채우지 못하는 이 젊은 한국 배우의 연기를 논할 때, <한공주> 한 편에 대한 이야기나 국외로부터의 찬사에 기대서만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그건 동시대 같은 문화권을 살아가는 배우에 대한 결례가 아닐까? 해서 나는 이 글에서 천우희가 찍은 주요 작품들을 지면이 허락하는 최대한도로 많이 언급하고 집요하게 비교해 그의 재능을 증명하려 한다. 적어도 나로서는, 이것 말고는 이 재능 넘치는 배우에 대해 제대로 된 찬사를 표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한공주’ 이후 이름 제대로 알렸지만전부터 뛰어난 재능 꾸준히 내보여
웃음 하나에도 경계가 미묘하고
팔다리 행동반경까지 다른
동어반복 피하는 연기 탁월
과시하지 않는 조용한 존재감
연인과 잠자리 중 끝말잇기를 하는 맹랑한 소녀(<마더>, 2009)에서 친구에 대한 삐뚤어진 애정으로 자신을 파괴하는 여고생(<써니>), 동생을 돌봐야 하는 책임감과 자존심으로 처지는 어깨를 간신히 편 소녀가장(<우아한 거짓말>), 자신의 잘못이 아닌 과거 때문에 끊임없이 도망 다니는 사건의 생존자(<한공주>)까지. 영화마다 천우희는 다채로운 얼굴로 스크린 위에 등장한다. 캐릭터의 차이만은 아니다. 앞서 열거한 작품들은,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공간은 물론 그 어법까지 천양지차로 다르다. <마더>의 눅눅한 지방 소도시의 습기와 <써니> 특유의 활기차고 과장된 톤의 80년대 서울, <우아한 거짓말>의 덤덤한 현실 묘사, 차갑고 고통스러운 <한공주>의 오랜 침묵까지. 천우희는 저마다 다른 영화적 공간 안에 스며들 듯 들어간다. 관객들이 지난 몇 년간 천우희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못한 것은 그가 맡은 배역들이 작아서이기도 했겠지만, 역설적으로 몇 편 안 되는 필모그래피 안에서도 동어반복을 피하는 그의 행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천우희가 니콜 키드먼처럼 보철을 붙여 얼굴 윤곽을 바꿔가며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거나, 설경구처럼 작품마다 20㎏을 찌웠다 뺐다 하며 육체적 한계에 도전했단 이야기는 아니다. 천우희는 자신이 기본적으로 갖춘 육체와 연기 테크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이 지닌 자원들을 매우 미묘하고 섬세하게 조율해 전혀 다른 사람을 빚어낸다. 이를테면 ‘찡긋’을 넘어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는 특유의 웃음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기쁨의 표현인지 비아냥의 표현인지 그 경계가 미묘하다. 천우희는 이 미묘한 웃음을 정확히 통제해 작품에 맞게 다른 감정을 표현해낸다. <써니>의 상미는 춘화(강소라)에게서 받은 모멸과 자조를 담아 ‘우는 대신’ 웃고, 같은 표정으로 웃어도 <한공주>의 공주는 오랜 시간 웃음을 잃었다가 조심스레 다시 웃어 보이는 사람의 희망과 두려움, 서툶을 담아 웃는다. 도준(원빈)의 출소를 기념하며 두부로 만든 케이크를 내미는 <마더>의 미나는 정말 큰 고민 없이 활짝 얼굴을 찡긋하며 웃는다. 천우희는 말투나 호흡 등의 언어적 표현에도 능하지만, 앞에서 예로 든 특유의 미소처럼 비언어적 표현에도 능한 배우다. 같은 여고생의 걸음걸이임에도 자신과 동생이 처한 상황 앞에 좌절하지 않기 위해 애써 밝음을 유지하며 등을 곧게 세운 <우아한 거짓말>의 미란과, 사건을 겪은 뒤 외부에서 오는 모든 자극에 흠칫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린 채 걷는 <한공주>의 공주는 몸 전체를 타고 흐르는 긴장감부터 근육의 사용, 팔다리의 행동반경까지 다르다. 두 캐릭터 모두 잔혹한 현실 앞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고생이란 유사성이 있지만, 천우희는 이런 섬세한 육체적 표현으로 완전히 결이 다른 두 인물을 빚어낸다. 같은 해에 찍어 같은 해에 개봉한 두 영화에서 빚어낸 이 스펙트럼은 이제 갓 20대 후반에 진입한 배우가 보여준 것치곤 몹시 인상적이다. 불공평하지만 타고난 외모가 배우의 연기에 도움을 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천우희는 클로즈업만으로도 화면을 긴장시키는 얼굴을 타고났다. 실제로 <한공주>나 <우아한 거짓말>에서, 카메라는 종종 천우희를 상반신이나 얼굴 클로즈업으로 당겨 잡는다. 둥근 호를 크게 그리다 끝에 가서 날카로운 선으로 마무리되는 눈매, 마냥 둥글진 않아 미묘한 긴장을 자아내는 입체적인 이목구비, 탄탄하게 날을 세운 턱선은 작은 표정의 변화만으로도 다양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좋은 자원이다. 덕분에 천우희는 캐릭터의 감정이나 고통을 격렬하게 죄다 발산하고 산화하는 게 아니라, 분노하고 고통받는 순간에서조차 속으로 수렴하며 절제할 수 있는 여유를 얻는다. 그리고 그 타고난 자산은, 자신의 고통을 말로 옮길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내세운 <한공주>에서 빛을 발한다. 모멸감을 이기고 과거를 지우기 위해 발버둥치면서도 무례로 가득한 세상 앞에서 존엄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캐릭터의 투쟁을, 천우희는 온몸을 이용해 표현해낸다. 나는 앞서 각기 다른 영화에서 다른 역할을 한 천우희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한공주>에 이르러 점들을 이을 수 있었노라 이야기했다. 각기 결이 다르고 어법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른 인물들 사이에 보이던 희미한 공통점이 <한공주>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선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천우희가 주로 연기해온 인물들은 제 앞에 자연재해처럼 던져진 비극을 벗어나고 싶고, 사랑과 행복을 갈망하면서도 결코 남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애걸을 하지 않고 제 존엄을 지키려 고군분투한다. 때로는 그것이 뜻처럼 이뤄지지 않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고(<한공주>), 제 식구를 보호하고 자존을 세우기 위해 친구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우아한 거짓말>). 도저히 자신의 고개를 숙일 수 없어 끝내 자기파괴로 이어지는 파국도 경험했다(<써니>). 그러나 그 소녀들은 결코 고개 숙이거나 애정을 구걸하지 않는다. 그들은 제 앞에 떨어진 비극 앞에서 가만히 옷깃을 여미고, 그 고통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간다. 이제 고작 20대 후반에 접어선 배우가 필모그래피 전체에 걸쳐 그려낸 이 강렬한 자존의 초상 앞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스포일러 경고)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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