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6.13 18:47 수정 : 2015.10.23 14:30

가수 김추자.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내가 처음 ‘님은 먼 곳에’라는 노래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조관우 덕분이었다. ‘늪’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데뷔한 다음해, 조관우는 리메이크 곡들로 채운 앨범 <메모리>(1995)를 발표했다. 낭창낭창한 팔세토가 무기인 조관우는 그 앨범의 대부분을 정훈희나 나미, 혜은이 등의 여성 가수 선배들의 곡으로 채웠고, 개중에도 유달리 처절한 ‘님은 먼 곳에’는 유독 기억에 남았다. 이 귀기 서린 곡을 처음 부른 원곡 가수가 누구였는지 알게 되기까지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유튜브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대체 어린 내가 어떤 경로로 원곡을 접했던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원곡을 접했던 순간의 충격은 상세한 기억을 지우고도 나머지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십대의 나는 수십년의 간극을 넘어 김추자와 처음으로 대면했다.

한영애·이선희 등 ‘디바’의 원형질
새 앨범, 멸종공룡 산채 발견한 느낌
귀곡성에 가까운 울부짖음
특유의 비음과 가성·진성 넘나들며
한 소절 한 소절 귀에 꽂아넣는 힘
히트곡 재탕·트렌드 편승 없어

조관우가 정제된 흐느낌으로 날씬하게 청승을 노래했다면, 김추자는 끓어오르는 한을 굽이굽이 절묘하게 풀어냈다.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라는 첫 문장에서, 김추자는 “한다고”를 “하-은-다-고우-”에 가깝게 느리게 부르며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뒤늦게 토해내는 깊은 한을 담아낸다. 이어지는 “그랬지”는 “그랬-쥐-이-”로 꺾어서 고음으로 당겨올리는데, 노래라기보단 장탄식에 가까운 이런 끝처리는 사무치는 감정의 여운을 듣는 이의 귓전에 끈적하게 ‘묻힌’다. 조관우의 가성이 듣는 이의 마음을 아련하게 스치며 지나간다면, 김추자는 온 천지사방에 자신의 감정의 흔적을 점액질처럼 남긴다.

물론 이 모든 묘사는 사후적인 해설이다. 어린 내가 그 모든 감정을 이해했을 리 만무하고, 어렴풋이 이해했더라도 이렇게 가난한 언어로나마 정리할 깜냥도 안 되었을 테니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김추자라는 싱어가 온몸으로 밀어올려 부른 ‘님은 먼 곳에’는 하나의 총체적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매혹적이고 충격적이며 낯설고 당혹스럽고 끈적하고 야하며 슬프고 애끓는 토털 패키지. 마치 온몸을 실뱀들이 휘감고 지나간 듯 근질거리고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다.

유튜브의 시대가 오고 김추자의 과거 무대 동영상을 볼 수 있게 되자, 나는 한층 더 강한 충격에 휩싸였다. 이미 김완선과 서태지와 아이들과 에이치오티(H.O.T.)를 경험한 내가 설마하니 그 시절의 춤을 보고 충격을 받으랴 했던 내 생각은 오만이었다. ‘무인도’를 부르며 춤을 추는 김추자는, 슬로템포에 맞춰 흐느적거리다가 일순 몸을 튕기고 몸서리치며 시각적인 긴장을 빚어냈다. 격정이 고조될수록 이완과 수축은 더 치밀해졌고, 템포가 갑자기 빨라지는 후렴에 와선 김추자는 안에 응축된 한을 몸 밖으로 털어내 버리려는 듯 풀쩍풀쩍 뛰며 팔다리를 흔들었다. 그건 흡사 굿판에서 제 몸을 원혼에 빌려주어 한풀이를 하는 만신의 그것이었다. 적어도 20세기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그에 비견할 정도의 무대를 보여준 이는, 1987년 ‘팍스 뮤지카’ 무대에서 ‘리듬 속의 그 춤을’을 부르며 신내림의 경지를 보여준 김완선 정도를 제외하면 전무하다시피 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미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은퇴해버린 전설의 가수에게 꽂혀버렸다. 노래와 춤과 표정이 모두가 하나가 되는 에로티시즘과 격정의 경지, 10대의 나와 20대의 나를 10년 주기로 사로잡은 이 압도적인 싱어는, 그 후 등장한 수많은 디바들, 김정미, 윤시내, 한영애, 이선희, 김완선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계보의 원형질처럼 보였다. 마치 발해나 고구려의 역사를 연구하고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며 민족적 원형을 찾으려 하는 이들처럼, 나는 김추자의 시대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음에도 기록을 통해 상상해보고 재구성하며 김추자를 하나의 원형으로 받아들였다.

자료를 찾아봐야 당시의 충격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내 세대에서야 이게 흔한 일이 아니었겠지만, 나보다 윗세대의 청자들에게 김추자 앓이는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김추자를 ‘우리 대중가요사의 한 정점이나 선지식’이라 평한 고 이성욱 평론가는, 은퇴했던 김추자가 단발성 리사이틀 특별쇼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는 수술 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의 신분을 망각하고 병원을 탈출했던 1986년의 기억을 기록한 바 있다. “선배 집에 달려가니 그 방의 풍경은 김추자의 위력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 방에는 벌써 선배, 동료들이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당시 민중가요, 노동가요 혹은 민요 등을 만들고 부르던 잘나가던 노래운동의 작곡가 또는 가수들이었다. 김추자는 제각기 어떤 길을 가던 역시 우리 또래의 노래 정서에 있어 하나의 몽골반점이었다.”(이성욱,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 중)

공식 은퇴 이후 33년 만에 김추자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흥분부터 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조용필이나 나미의 컴백과는 또 달랐다. 아무리 오랜만의 앨범이었어도 난 조용필과 나미가 동시대에 현역으로 무대에 서는 광경을 보면서 자란 세대였다. 그에 비해 김추자는, 내게는 상상과 고고학의 영역에 가 있는 존재였다. 내가 미처 태어나기도 전에 은퇴한 가수를 다시 볼 수 있다니, 그가 예전에 신중현에게 받았으나 미처 취입하지 못했던 곡들과 신곡들을 묶어 새로 녹음한 신보로 돌아온다니. 멸종한 줄 알았던 공룡을 산 채로 발견한다면 고생물학자들이 느낄 흥분이 이런 것일까. 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앨범 발매일을 기다렸고, 마침내 김추자의 친필 사인이 적힌 <이츠 낫 투 레이트>(It’s not too late) 초판(2014)을 구매할 수 있었다.

전설의 싱어는 과연 압도적이었다. 환갑을 넘긴 김추자의 목소리엔 더 이상 ‘꽃잎’이나 ‘님은 먼 곳에’를 부르던 시절의 가녀리고도 도발적이던 소녀의 흔적은 없었지만, 그 자리엔 대신 더 깊고 굵직해진 목소리를 능란하고 과감하게 부리는 테크니션 김추자가 있었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몰라주고 말았어’는 송홍섭의 베이스와 한상원의 기타가 만드는 헤비하고 펑키한 사운드로 시작하는데, 그 악기들이 빚어낸 긴장감을 단숨에 뚫고 뻗어나오는 김추자의 보컬은 첫 소절부터 듣는 이의 얼을 빼놓는 힘으로 가득 차 있다. 자유자재로 리듬을 밀고 당기고 가사의 발음을 마음대로 희롱하며 청자의 귓전에 한 소절 한 소절을 때려 꽂아넣는 김추자는 33년을 쉬었던 사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나는 첫 곡을 듣고는 잠시 시디(CD)를 멈춰 숨을 골라야만 했다.

아마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이 얼마나 탁월한가 한 가지 주제만 가지고도 밤새 떠들 수 있을 것이다. 흡사 귀곡성에 가까운 울부짖음에 한을 실어 간주 부분을 채우며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태양의 빛’이나, 특유의 비음과 가성, 진성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야하고 두터운 바이브레이션을 선보이는 ‘내 곁에 있듯이’, 담백한 듯하다가도 매 소절 끝에 아릿한 뉘앙스를 남긴 ‘춘천의 하늘’, 절제된 보컬과 세련된 편곡으로 촌스럽다 느낄 틈을 한순간도 주지 않는 고 이봉조 식 세미트로트 ‘그리고’… 뭐 하나 빼놓을 트랙이 하나라도 있어야 말이다. 김추자의 굵직해진 목소리에선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지만, 동시에 시류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노래해도 당대의 청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란 자신감 또한 느껴졌다. 그는 과거의 히트곡을 재탕하거나 최신 트렌드에 뛰어드는 대신, 더 능란해진 자기 방식으로 건재함을 과시하며 돌아온 것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그래서, 나는 아직 김추자의 노래를 접하지 못한 이들이 부럽다. 나는 내 생이 시작되기도 전에 은퇴했던 전설로 김추자를 처음 접했고, 그 충격의 동시대성을 경험하지 못해 상상으로 재구성해야 했지만, 그와의 조우가 처음인 이들은 그의 신보부터 들으며 1970년대 한국 대중가요 특유의 사이키델릭 사운드 위에 실린 김추자의 목소리를 만나는 충격을 동시대에 경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추자가 왜 기자회견장에서 “디바니 전설이니 하는 수식어보다, 그냥 노래 잘하는 ‘김추자’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는지 이제 알 거 같다. 그런 화려한 수사와, 오랜 잠적 속에서 전설이 되어 구전된 33년이라는 세월의 더께 없이도, 김추자는 노래 하나만으로 사람 죽이는 재주가 있는 기가 막힌 가수니까. 전설 말고 디바 말고, 노래 잘하는 김추자가 돌아왔다.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