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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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한국방송(KBS) <정도전>(2014) 출연진이 종영을 기념하며 방문한 토크쇼 <해피투게더>, 진행자 유재석이 “조재현씨가 정도전 역할에 그렇게 어울릴 줄 몰랐어요”라고 이야기하자 조재현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한다. “그렇게 어울리진 않았어요.”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마음고생이 적진 않았을 것이다. 작품 초반만 해도 그가 정도전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연기하는 게 어색하다는 반응이 많았으니 말이다. 전쟁의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들판을 걸어가는 정도전이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하늘은 이미 고려를 버렸다”고 중얼거리는 인상적인 오프닝 시퀀스 정도를 제외하면, 초반 그의 연기는 찬반이 선명하게 엇갈리는 반응을 얻었다. 부정적인 의견이 과다대표 되는 여론의 특성상 찬보다는 반의 비율이 더 높아 보였고, 항간에는 ‘미스캐스팅’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돌아다닐 정도였다.
정도전이 뭐 이래? 서툴고 강퍅했던 시절부터
대책없는 외골수로 그린데다
황폐한 연기의 달인이 빚은 결과
불편하고 존재감 없다 했지만
알고보면 든든했던 중심 기둥 작품 초반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던 이유는 아마 시청자들이 기대한 정도전과 드라마 <정도전>이 제시한 정도전의 모습이 다소 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대하사극치고는 다소 짧은 분량이었던 <정도전>은 조금은 불친절한 구도로 극의 포문을 연다. 주인공의 유년기부터 시작해 시청자들이 등장인물의 개인적 서사에 감정이입할 시간을 주고 성년기로 넘어가는 최근의 사극 트렌드와는 달리, <정도전>은 바로 성인이 된 정도전을, 그것도 가장 서툴고 강퍅하며 별 볼일 없던 시기의 정도전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백성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며 대뜸 성균관 유생들을 이끌고 나와 농사일을 시킨다거나, 관직에 출사한 사형들을 ‘밥버러지’라 부르고, 자신이 낸 상소를 중간에서 반려시킨 도당의 중신인 이인임(박영규)의 집 앞마당에 쌓인 뇌물더미 위에 똥물을 뿌리는 등, 초반의 정도전은 힘도 실력도 없는 주제에 타협을 죄악시하고 자신이 옳다 믿는 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배척하는 꽉 막힌 인물로 그려진다. 과거 드라마 <용의 눈물>(1996~1998)에서 고 김홍기가 보여줬던 관록과 식견이 넘치는 대정치가 정도전의 모습을 상상했을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분명 낯선 접근이었을 것이다. 동료들에게도 배척당하고 중앙정계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으며,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환멸과 증오를 사방팔방에 흩뿌리는 사내에게 감정을 이입해 애정을 갖기가 어디 쉬운가. 더구나 그를 연기하는 연기자가 성마르고 황폐한 인물을 연기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조재현이라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기존 사회의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주변부를 전전하는 것은 <한반도>(2006)의 최민재 박사를 닮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제 안에 갇힌 거로는 문화방송(MBC) <스캔들>(2013)의 하명근을 닮았으며, 전체적으로는 <나쁜 남자>(2001)의 한기가 폭력 대신 학문을 자신의 언어로 택했다면 그런 모습일 법한 남자. 조재현이 연기한 정도전이 기껏 귀양을 가서는, 마을 어귀 서낭당에 놓인 신령한 돌 위에 걸터앉아 이에 항의하는 양지(강예솔)에게 되레 미신에 현혹되지 말라고 훈장질에 나서는 대목쯤에 이르면 이 대책 없는 외골수 주인공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편함은 하늘을 찌른다. 말하자면 작품 초반의 ‘미스캐스팅’ 논란은, 주인공이 허물투성이일 때를 극의 시작점으로 잡은 독특한 서사전개와, 성마르고 타협을 모르는 인물을 필요 이상으로 잘 연기하는 조재현이 만나며 생긴 어떤 오해였던 셈이다. 그 와중에 작품 초반을 지배한 정치 10단의 중신 이인임이나, 백발을 산발한 채 폭발하는 카리스마를 선보인 최영(서인석), 동북면 사투리를 말씨에서 지우지 못하는 촌뜨기 울보 이성계(유동근), 대결보단 상생을 택하는 탁월한 정치가 정몽주(임호)가 차례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자 보는 이들의 오해는 깊어져 갔다. 오죽했으면 이인임이 실각하고 퇴장할 때까지, 농반진반처럼 “이 작품이 대하사극 <정도전>이냐 대하사극 <이인임>이냐” 하는 의견들이 인터넷을 수놓았을까. 조재현도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왜 <정도전>이란 제목을 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정도전은 잘 안 나오더라”며 작품 초반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은 바 있다. 물론 작품은 잠시간 정도전에게 감정이입을 해 볼 구석을 열어둔다. 백성의 진짜 고통은 농사를 짓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지어도 수확물의 대부분을 수탈당하고야 마는 체제의 모순에 있으며, 백성이 바윗돌을 섬기는 것은 무지해서만이 아니라 마음을 의지할 곳이 바윗돌밖에 없을 정도로 현실이 처참하기 때문임을 깨달은 뒤, 패배주의와 냉소에 물들어 있던 정도전 또한 서서히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니 말이다. 그러나 정도전이 고려를 무너뜨리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는 길을 선택하며 작품은 다시 조재현에게 다소 각박해졌다. 대업의 화신이 되어 불도저처럼 전진하는 정도전은, 정치적 함정을 만들어 이인임을 실각시키고, 이성계의 배후에서 위화도회군을 권유하며, 친구인 정몽주 앞에서도 본심을 속인다. 앞부분에는 강퍅한 인물이라 감정을 많이 드러낼 기회가 없었다면, 뒤로 가서는 그 많은 감정을 포커페이스 뒤에 꽁꽁 숨겨야 하는 더 어려운 과제가 시작된 셈이다. 앞서 조재현이 황폐한 인물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말했지만, 사실 대중에게 기억되고 오래 회자되는 조재현의 연기 중 대부분은 ‘사람 냄새’를 진하게 뿜어내거나 감정을 발산해 장면을 압도하는 종류의 연기다. 에스비에스(SBS) <피아노>(2001)의 눈물 많고 정 많은 아버지 억관이나, 자기혐오와 자기파괴의 극단을 달리며 짐승처럼 사는 <나쁜 남자>의 한기, 일평생 누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천년학>(2007)의 동호, 자식을 잃은 한과 복수심으로 시작된 납치가 어느 순간 뒤틀린 부정이 되며 괴로워하는 <스캔들>의 명근 등에게는 평생을 품고 사는 찐득거리는 감정이 있었으며, 한번쯤은 그것을 화면 가득 발산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정도전>은 달랐다. 양지가 죽는 순간이나 평생의 친구 정몽주가 죽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정도전에게도 인간적인 면모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주어지긴 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종류의 배역도 아니었다. 이성계로부터 ‘유종공종’ 어필을 받고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도, 바로 얼굴을 바꿔 어떻게 하면 왕자들로부터 사병을 압류해 무력화시킬지를 고민하는 대업의 화신으로 돌아와야 하는 배역이 아닌가. 제한된 표현범위 안에서 강철 같은 신념과 표면 뒤에 격렬하게 움직이는 감정을 모두 표현해야 하는 이 어려운 배역을 만난 조재현은, 대사보다는 침묵과 호흡으로, 몸짓보다는 눈빛의 형형함과 흔들림을 조율해가며 인물의 감정선을 구축해야 했다. 나이를 먹고 초조함에 시달리며 점점 정도가 아닌 사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인생 말년의 묘사는, 사적·공적 실패를 거듭하며 몰락하는 혁명가의 초라한 뒷모습을 최대한 건조하고 냉정하게 그려야 하는 난제였으리라. 정현민 작가와 강병택 감독, 그리고 조재현은 정도전의 말년의 시행착오나 패착에 대해 애써 변명하거나 감상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그 어두움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마지막 순간 정몽주의 환영을 보며 “난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네”라고 토로하며 그간 쌓아온 감정을 터뜨리는 대목을 제외하면, 그 냉정한 태도만큼은 스티븐 소더버그와 베네치오 델 토로가 <체-2. 게릴라>(2008)에서 체 게바라가 연패를 거듭하며 지쳐가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진득하지만 고통스럽게 묘사한 것에 비견할 법하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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