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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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석규. 사진 오계옥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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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한석규라는 이름에서 무엇을 떠올리는가? 근작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에스비에스(SBS) 사극 <뿌리 깊은 나무>(2011)에서 보여준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왕 세종을 기억할 것이고, 그보다 더 오랜 세월 그를 지켜본 이들은 영화 <은행나무 침대>(1996)나 <접속>(1997), <쉬리>(1999) 등에서 보여준 부드럽지만 쓸쓸한 도시 남자의 이미지를 기억할 것이다. 조용히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생의 마지막에 찾아온 사랑 앞에 웃어 보이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속 정원이나, 사랑에 전념하기엔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2006) 속 인구를 떠올리며 현실적인 질감의 멜로를 잘 연기하는 남자로 그를 기억하는 이도 있을 테다. 설령 그를 작품으로 많이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도 그가 출연한 커피회사 광고나 이동통신사 광고 정도는 쉽게 떠올려볼 수 있지 않을까? 본인조차 “내가 웃고 있는 사진 보는 게 나도 지겹다”고 말했을 정도로, 환하게 웃는 표정의 한석규는 한 시대를 통째로 상징하는 신뢰의 상징이었으니 말이다.
고뇌하는 왕, 부드러운 도시 남자, 현실적인 멜로, 신뢰의 상징. 자, 이제 조금 더 기억의 진폭을 넓혀보도록 하자. 누군가는 그를 보며 문화방송(MBC) <서울의 달>(1994)이나 <초록물고기>(1997), <넘버3>(1997)에서 마주친, 늘 무언가에게 쫓기면서도 성공을 갈급해하는 밑바닥 인생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이층의 악당>(2010)에서 보여준 성마른 사기꾼이나, <그때 그 사람들>(2005)에 등장한 시니컬한 중앙정보부 과장처럼 메마르고 날이 서 있는 칼날 같은 남자로 그를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그가 섬뜩한 광기와 히스테리를 외투처럼 두른 <구타유발자들>(2006)이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2008)를 더하면, 한석규라는 남자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점점 요원해진다. ‘부드러운 도시 남자’면서 동시에 질 낮은 ‘밑바닥 인생’이기도 한 남자, 멜로를 잘 연기하는 사람이면서도 날 선 히스테리로 관객의 긴장을 확 잡아당기는 배우.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한석규는 ‘이 사람에게 이런 면도 있었나?’라고 새삼 놀라게 되는 배우다. 1991년 문화방송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한 이래 23년, 한석규는 그를 어느 한 작품의 지배적인 이미지로 기억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배반해왔다.
언뜻 생각하기엔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아니, 당대 최고의 배우 중 한 사람인데, 다양한 역을 잘 소화해낸다는 사실이 그렇게 상찬을 받을 일인가. 하지만 다양한 질감의 인물을 선보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한석규처럼 한 시대의 지배적인 얼굴로 떠오른 톱배우들에겐 자신만의 아우라와 연기색이 있기 마련이고, 그 때문에 좀처럼 소화하기 어려운 배역들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정우성처럼 연기력으로도 큰 비판을 들어본 적 없는 배우조차 <신의 한 수>(2014) 초반의 소심하고 찌질한 남자 연기는 좀처럼 몸에 안 맞는 옷이라는 평을 들어야 했고, 한때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의 소심한 은행원 역을 해도 그럴싸하게 어울리던 설경구는 <실미도>(2003)나 <역도산>(2004), <공공의 적>(2001)에서 <강철중>(2008)으로 이어지는 ‘강철중 연대기’를 거치며 어디 한 군데 모나지 않은 평범한 남자 역을 맡기는 게 어색해 보이기 시작했다. <내 깡패 같은 애인>(2010)의 삼류 깡패를 연기하며 훨훨 날던 박중훈도, <해운대>(2009)의 김휘 박사 같은 냉정한 지식인 역 앞에선 미지근한 평을 듣는 걸 감수해야 했다.
‘도시 남자’이면서 ‘밑바닥 인생’
멜로 달인이면서 섬뜩한 광기
이 사람에게 이런 면도 있었나
‘지배적 이미지’ 기억하려 하면 배반
‘뿌리깊은 나무’에서 낯선 세종처럼
영조의 어둠 깊이 그린 ‘비밀의 문’서도
보편 속 비범 담아내는 그가
인물의 영토를 한뼘 넓힐 것이다
반면 한석규는, 이상하게 어느 자리에 어떻게 세워놓아도 그럴듯하게 말이 되는 남자다. 본인은 7대째 서울에 살아온 서울 토박이라서 도시 남자를 연기하는 게 가장 자신이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구타유발자들> 속 교통경찰 문재처럼 한적한 교외나 시골 어딘가에 세워놓은 한석규조차 어쩐지 그럴 법하다고 납득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그것은 한석규가 그리는 ‘도시 남자’라는 것이 지방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지닌 공간으로서의 ‘도시’의 정체성을 지니고 사는 남자가 아니어서일 것이다. 한석규의 ‘도시’는 오히려 보는 이들이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어떤 보편성에 가깝다. 한석규의 연기에는 송강호의 말씨가 지니고 있는 경상도라는 ‘지역’이 없고, 건달이나 사기꾼, 경찰이나 도시 빈민 등의 역을 맡았을 때 빛을 발하는 박중훈 연기의 ‘계급’이 없다. 이정재나 정우성처럼 외모 자체가 비현실적인 ‘매혹’의 배우도 아니고, 최민식이나 설경구처럼 비범한 아우라를 사방에 흩뿌리는 ‘압도’의 배우도 아니다. 우리가 아는 한석규는, 공감의 배우다.
한석규는 누구나 호감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고 그처럼 보이고 싶을 만큼 인상이 좋지만, 동시에 외모나 아우라에 질려 감정이입을 포기할 정도로 독특한 인상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것은 그의 연기로도 이어지는데, 일상적인 톤을 잃지 않으면서도 순간순간 피로나 외로움, 날 선 신경과 같은 요소들을 드러내 보이며 인물에 리듬과 질감을 부여하는 한석규의 연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인물의 내면으로 쉽게 진입하게 만드는 동시에 감탄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그의 직계 선배쯤 될 안성기가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해 보이는 인상으로 모두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동네의 짐승 취급을 받는 남자(<안개마을>·1982)부터 ‘거렁뱅이’(<고래사냥>·1984)를 지나 유약한 지식인(<태백산맥>·1994)을 거치며 남자가 맡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역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한석규 또한 동시대 한국인들에겐 이상적이고도 보편적인 한국인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가 차가운 도시 뒷골목에서 죽어가는 새끼 조폭(<초록물고기>)을 연기하든, 반으로 나뉜 조국의 모순 앞에서 연인을 쏘아야 하는 엘리트 정보요원(<쉬리>)을 연기하든, 관객들은 한석규가 연기하는 인물이 겪는 서사를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였다.
완벽에 가까운 계몽 군주 세종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입히고자 했던 <뿌리 깊은 나무> 제작진이 세종 역에 한석규를 섭외한 것도 이 지점에 말미암은 선택일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은 우리가 익히 아는 지성과 의지를 겸비한 천재인 동시에, 끊임없이 회의하고 고뇌하며 심지어는 백성을 미워하는 모습까지 갖춘 낯선 왕이다. 신격화된 숭앙의 대상 세종의 이미지를 간직한 이들에게 신하들더러 “지랄하고 자빠졌네”라 외치고, 자신이 불러낸 스스로의 환영을 향해 경멸의 의미를 담아 침을 뱉는 세종은 분명 낯선 존재다. 한석규는 흔들리는 눈빛과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손 대면 끊어져버릴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을 표현하며 인간 이도(세종의 본명)의 고뇌를 그리면서도, 동시에 특유의 너털웃음과 느긋한 말투, 궁녀들이나 호위무사에게 끊임없이 농을 던지는 소탈함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인자한 성군 세종을 그리며 보는 이들을 안심시킨다. 당신이 알고 우리가 아는 그 세종이 맞다고. 겁낼 필요 없다고. 기존의 환상을 부수지 않고 새로운 층을 덧입혀야 하는 이 어려운 배역에, 보편 속에 비범함을 담아내는 한석규만 한 배우가 어디 있었겠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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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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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어둠 속으로 깊게 들어가는 에스비에스 드라마 <비밀의 문>(2014) 제작진도 필시 비슷한 고민 끝에 한석규를 섭외했으리라. 누구든 제일 먼저 한석규의 이름을 떠올렸을 것 아닌가. 대중의 뇌리에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절대군주로 각인되어 있을 영조의 이미지 위에, 형 경종을 암살했다는 소문 속에 즉위해 평생을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죽 끓는 듯한 변덕과 완벽주의자적인 훈육으로 주위를 괴롭게 만든 인간 이금을 그려 넣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과연 한석규는 방영 1화 만에 “선위하겠다”는 대사 한마디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혹자는 <뿌리 깊은 나무>와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성급하게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접속>과 <쉬리>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그를 파악하려 했던 모든 시도가 보기 좋게 실패했던 것처럼, 한석규는 여유롭게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의 영토를 또 한 뼘 넓힐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낯익은 보편의 얼굴로 말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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