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 사진 오계옥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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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영화 <나의 독재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은 영화 감상 이후 글을 읽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나온 포스터와는 달리 영화 <나의 독재자>(2014)는 설경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영화 전반부는 무명배우 김성근(설경구)이 어쩌다가 김일성 대역배우로 훈련받게 되었는지를 다루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박해일이 분한 아들 태식은 영화가 시작한 지 한시간가량 흐른 뒤에야 비로소 화면에 등장한다. 희극과 비극이 복잡하게 뒤엉킨 줄거리를 힘있게 가로지르는 설경구의 호연은 최근 몇 년간 그가 남긴 작품 중 단연 으뜸이다. 그렇다고 <나의 독재자>를 ‘설경구의 영화’라고만 정의 내리자니 조금 망설여진다. 등장 시간은 절반 수준에 그쳤음에도 박해일이 설경구와 비교해 크게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20년 넘게 김일성으로 살아가는 성근에 비하자면, 태식은 관객이 공감하기 한결 쉬운 보편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바라본 아버지에 대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내레이터일 뿐 아니라, ‘일에 몰두한 나머지 가족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를 미워하고 부정하는 아들’이라는 비교적 전형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전형적인 캐릭터는 감정이입이 쉬운 만큼 강렬하고 독특한 캐릭터 옆에 서면 잊히기 쉽다. 상영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한 채 ‘메소드 연기(극중 배우가 몰입하여 인물 자체가 되는 것)를 하는 배우’를 연기하는 이중의 연기를 선보이며 특수분장의 힘을 빌려 인물의 노년까지 연기하는 설경구 옆에서 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박해일은 어떻게 전형적인 캐릭터로 제 존재감을 뽐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지금껏 그가 거쳐온 필모그래피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물다섯의 나이로 주인공 성우의 고등학생 시절을 연기했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이래로 14년 동안, 박해일은 ‘소년’을 연기하는 데 연기 인생을 바치다시피 했다. 누군가는 물을지 모른다. 10대를 연기한 것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서른세살의 육신에 갇힌 채 죽음을 60일간 유예받은 열세살 소년 네모를 연기한 <소년, 천국에 가다>(2005) 정도가 전부인데 어째서 그 모든 배역들을 ‘소년’이라 쉽게 말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박해일이 맡아온 배역을 곰곰이 뜯어보면, 그는 순수하든, 미숙해 철이 없든 어느 쪽으로든 소년인 인물들을 연기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본격적인 스타덤에 오른 2003년 선보인 두 편의 영화를 생각해보자. <국화꽃 향기>(2003)의 인하는 훼손되지 않은 순정한 사랑의 화신이었다. 짝사랑하는 선배의 집 앞에 떠먹는 요구르트 탑을 쌓아두고는 하염없이 기다리고, 그 연인이 불치병에 걸리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는 지고지순한 남자. 이 티없는 순수함은 연쇄살인사건의 주요 용의자 박현규로 등장한 <살인의 추억>(2003)에서 기묘하게 변주되는데, 관객은 현규가 진범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의 얼굴에 번지는 억울함을 보며 혼란에 빠진다. 무고한 희생양처럼 보이는 말갛고 여백이 많은 얼굴. 현규의 눈을 보고도 그가 진범인지 확신할 수 없어 끝내 그를 놓아주고야 마는 두만(송강호)의 열패감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바로 그 얼굴 때문이었다.
박해일의 ‘소년’은 때론 순수함 대신 미숙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질투는 나의 힘>(2002)에서 박해일은 어른의 세계에 편입되고 싶지만 자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어 일어서는 데엔 한없이 무력한 대학원생 원상을 연기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 번이나 빼앗아간 유부남 윤식(문성근)을 질투하는 동시에 동경하는 원상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성연(배종옥)을 제대로 쟁취하지도 못한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누나, 그 사람이랑 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라며 애정을 구걸하는 것뿐인 웃자란 소년 원상은, 결국 윤식과 함께 싸구려 양주를 나눠 마시고는 그가 상징하는 어른의 세계로 백기투항해버린다. 불안하고 미욱한 소년은 제 성장을 남에게 기대는 것으로 대신한다.
영화속 나이와 무관하게 그가 연기해온 캐릭터들은
성장을 거부하거나
성장 불가능한 소년들이었던 셈
‘나의 독재자’에서 그는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거대한 도약을 감행했다 원상보다 세상의 때가 훨씬 더 많이 묻은 인물을 연기할 때도, 박해일이 맡은 인물들은 여전히 어딘가 성장이 멈춘 인물들이었다. <괴물>(2006)의 실패한 왕년의 운동권 대졸 백수 남일이나, 흥행 참패와 이혼의 위기 앞에서 패잔병 신세로 노모의 집으로 돌아간 <고령화가족>(2013)의 영화감독 인모는 모두 어른들의 세상에 편입되지 못한 채 그 언저리만 기웃거리는 미숙한 인물들이었다. 미숙하기는 밀도 높은 베드신을 시도한 <연애의 목적>(2005)의 바람둥이 유림도 마찬가지인데, 능숙한 언변이나 탁월한 매력으로 상대를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넘어올 때까지 쉬지 않고 집적거리는 유림은 흡사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엄마가 사줄 때까지 마트 바닥에 누워 울기를 그치지 않는 어린아이 같았다. 친일파 아버지 밑에서 한량처럼 살아가다가 우연한 계기에 독립운동에 얽히게 된 <모던보이>(2008)의 이해명이나, 전쟁노예로 잡혀간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오라비 남이로 분한 <최종병기 활>(2011) 정도가 그나마 소년에서 한발 나아가 성장하는 캐릭터들이었지만, 두 작품 모두 본인의 선택이었다기보단 격변하는 시대에 등 떠밀려 그 자리에 서게 된 결과였다. 심지어는 특수분장의 힘을 빌려 칠십 노인 이적요로 분한 <은교>(2012) 또한 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늙은 육신 안에서 다시 움트고 싶어하는 젊음의 미련을 그린 작품이었다. 결국 생물학적 나이와는 무관하게, 박해일이 맡아 연기해온 캐릭터들은 성장을 거부하거나 성장이 불가능한 소년들이었던 셈이다. 박해일은 어쩌다 이렇게 14년에 걸쳐 일관되게 소년을 연기하게 된 걸까? <질투는 나의 힘> 개봉 당시 영화주간지 <씨네21> 인터뷰에서 “그 불안함, 그 모호함을 연기하기엔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였기 때문에” 원상 역을 선택했노라 말했던 박해일은, 7년이 지난 2009년 다시 이 잡지와 인터뷰하면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젠 ‘넓어지기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부분들을 깊이 파들어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수놓은 소년의 행렬은, 어쩌면 시기에 맞춰 자신이 가장 잘 연기할 수 있는 인물들을 깊이 파들어간 결과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다시 <나의 독재자>로 돌아오자. 박해일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지금껏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지만 정작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기에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나의 독재자>는 암울한 시대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한 배역에 평생을 바친 배우의 연기 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결국 잔뜩 뒤틀린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성근에 대한 원망과 증오를 걷어내고 성장한 태식은, 영화의 말미 자신 또한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긍정하며 영화의 서사를 완성한다. <은교>의 이적요조차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인물임을 생각해본다면, <나의 독재자>의 태식은 박해일의 필모그래피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자리에 선 인물인 것이다. <나의 독재자>를 ‘설경구의 영화’로만 정의내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설경구는 기념비적인 연기로 영화의 중심에 섰지만, 박해일은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거대한 도약을 감행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제보자>(2014)에서 박해일이 진실을 파헤치는 심층취재 프로그램 프로듀서 윤민철 역을 맡은 것 또한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취재를 막기 위해 방송국을 찾아온 이장환 박사(이경영)는 윤민철 피디에게 “같은 한국대학교 동문으로 알고 있는데, 몇 학번이죠?”라고 물으며 자신이 선배임을 은연중 드러낸다. 윤민철은 냉소하며 답한다. 학번 확인하려고 여기까지 오신 건 아니지 않으냐고. 나이와 학벌로 위계를 세워 주저앉히려는 부당한 시도에, 윤민철은 주눅 들지 않고 한 사람의 독립된 어른의 자격으로 맞선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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