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티브이엔 <꽃보다 청춘>에서 함께 페루 여행을 한 윤상·유희열·이적(왼쪽부터).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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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최근 일이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독특한 제목의 글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솔직히 가요의 황금기는 2007~2009년 아니었냐.” 음반시장이 흔적도 없이 몰락해버린 시기를 ‘황금기’로 호명하는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거지. 고도의 농담인가 하는 마음에 클릭해 보았지만 웬걸, 글쓴이는 지극히 진심이었다. “그때만 해도 정말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나오지 않았냐? 빅뱅 ‘거짓말’이나, 소녀시대 ‘지’(Gee) 같은 곡들도 좋았고. 원더걸스도 ‘텔 미’랑 ‘쏘 핫’이랑 ‘노바디’ 연속으로 히트하고. 그 시절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게 참 행운이다 싶다. 요즘은 다 비슷비슷한 노래들만 나오잖아. 케이팝도 이제 찍어내는 상품이 된 지 오래 같아.” 한참 웃다 생각했다. 하긴, 누구든 자신이 제일 좋아했던 시기를 가치판단의 기준점으로 삼는 거겠지. 글쓴이에겐 그 시절이 진정 황금기였을지도 모르고. 그러는 동안 이런 걱정도 고개를 들고 올라왔다. 발표된 지 채 10년도 안 지난 ‘거짓말’과 ‘텔미’를 기준으로 삼은 사람조차 세대 차이를 느낄 정도라면, 한국 가요계에 맥락이나 계보 같은 게 있긴 한 걸까? 티브이엔(tvN) <응답하라 1997>(2012)을 보며 에쵸티(H.O.T.)에 대해 배웠다는 동생들을 보고 아연했던 게 불과 작년의 일인데, 이젠 10년도 채 안 지난 곡들에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사람들이 등장하다니. 이 아찔한 문화적 조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한국 대중음악은 좀처럼 시간을 쌓는 데 익숙하지 않으니까. 전통의 강자 트로트 장르를 제외하면, 포크나 록 같은 ‘청년’ 문화는 꽃이 필 법하면 외부의 개입으로 명맥이 끊어졌다. 신중현을 필두로 한 ‘한국형 로큰롤’의 흐름도, 이장희를 필두로 한 포크의 흐름도 70년대 중반 대마초 파동을 겪으며 순식간에 허리가 잘려나갔다. 그 시절 청년들이 불온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답시고 나라에서 정한 금지곡은 참 많기도 했는데, 이유도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거짓말이야’는 불신감을 조장한답시고 금지,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시킨답시고 금지, ‘고래사냥’은 염세적이라고 금지. 남다른 상상력을 소유한 나라님들 덕분에 한국 대중음악은 좀처럼 그 맥락과 계보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청년문화를 이끌던 아이콘이 방송금지를 당하거나 외압을 받고 활동을 그만두는 일을 몇 차례 경험하다 보면, 그 빈자리를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으로 채우는 일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막상 민주화를 거치고 전통을 차근차근 쌓을 수 있게 된 1990년대가 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끊어진 대중음악의 맥락과 연보를 다시 이어붙이는 대신 댄스곡을 들고 등장한 신인 아이돌들에게 눈을 돌렸다. 세계적으로 댄스음악이 인기를 끌던 시기였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각 장르가 탄탄한 팬덤과 소비시장을 구축할 만한 환경이 뒷받침되었던 미국이나 일본의 환경과, 툭하면 금지곡으로 묶여 노래를 못 하고 몇 년 쉬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뉴 페이스가 등장하면 그쪽으로 모든 포커스를 돌리는 데 익숙해져 있는 한국의 환경은 달랐다. 가요계의 판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탄탄한 팬덤을 쌓을 기회도 없던 이전 세대 뮤지션들은 그렇게 현역의 자리에서 쓸쓸히 내려왔다. 어제 히트했던 가수가오늘이면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되는 세상
조로를 거부하고
시간을 견디며
멈추지 않는
한 세대의 시작이다 물론 다 아는 것처럼 그 후일담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돈 되는 일이라고 너도나도 아이돌 제작을 하겠다고 뛰어드는 바람에 공급 과잉이 되었고, 팬덤 장사로 빨리 돈을 벌고 싶었던 사람들은 음악에 응당 들여야 할 투자를 안 하기 시작했다. 타이틀곡들만 모아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드는 데 재미를 붙인 몇몇 제작자들은 앨범 전체에 공을 들이는 대신 확실히 팔릴 만한 곡들에만 집중했고, 그러는 사이 엠피스리(MP3)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던 제작자들은 내수시장이 붕괴하는 걸 넋 놓고 바라만 봐야 했고, 가수들은 행사와 예능, 드라마 출연이 아니면 수익을 내는 게 불가능한 시대 앞에 내팽개쳐졌다. 가수들은 더 빨리 도태됐고, 더 빨리 다른 가수로 대체됐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재빨리 트렌드를 따라 스타일을 바꿔야 했고, 그 결과 2007년에 빅뱅의 ‘거짓말’을 들으며 자란 한 네티즌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2014년도 한국 가요계의 현실을 개탄한다. 꾸준히 시간을 쌓아본 적도, 맥락과 계보를 이어본 적도 없는 초라한 풍경. “90년대 음악인이라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의 어떤 카테고리가 있잖아? 몇 명이 안 돼. 김현철, 신해철, 윤상, 이적, 김동률, 유희열, 윤종신… 요 사람들인 거야. 딱 그 사람들인 거야!” 지난여름 티브이엔 <꽃보다 청춘>에 출연한 유희열은 프로그램 사전 미팅을 겸한 식사 자리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의 외로움과 동지의식을 이야기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따로 찍은 게 분명해 보이는 사전 미팅 영상에서 윤상이 같은 주제로 말을 받는다. “윤종신, 유희열… 이런 애들은 뭐랄까, 이 중에 하나라도 낙오되면 그건 결국 다 내 손해라는 느낌. 다 같이 가야지.” 유희열은 화답한다. “본질적으로 보면 이 사람들은 다 한 무리야. 마지막으로 가면, 다 한 팀이야, 한 팀.” 가요계의 메인 스트림이 숨가쁘게 트렌드를 갈아입어가며 양적 성장에 몰두하던 시절, 자신들의 영토를 착실하게 만들어 버티며 그 시절을 건너온 이들은 이제 같은 시대의 공기를 호흡했던 동료들과 ‘함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이야기한다. 어제 히트했던 가수가 오늘이면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되는 세상,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살아남은’ 동료는 손에 꼽을 만큼만 남았다. 젊은 시절처럼 곡을 쓰는 건 어렵고,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후배들이 늘어만 간다. 전성기였던 90년대는 벌써 영화 <건축학개론>(2012)으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로, 클럽 ‘밤과 음악 사이’로, 시리즈 공연 <청춘 나이트>로 회고의 대상이 되어 소비되지만, 이 세대는 끊임없이 신보를 발표하고 대중을 만나며 세상 속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간다. 유희열이 지칭했던 ‘살아남은 90년대 음악인’의 카테고리는, 어쩌면 한국 대중음악사 사상 검열이나 금지곡 지정 따위의 폭력적인 방식 없이, 대중음악계의 판도 변화를 무사히 넘겨, 마흔이 넘고 쉰이 넘어서도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되길 거부하고 현역으로 살아남아 맥락과 계보를 잇는 데 도전하는 첫 세대인 건지도 모른다. 조용필이나 이문세와 같은 ‘위대한 예외’ 한둘을 제외하고는 그 세대의 나머지가 통째로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초라함을 벗어나, 한 세대가 한 팀으로 온전히 살아남아 대중과 발걸음을 맞춰 함께 나이 먹는 것에 도전하는 첫 세대 말이다. 작년 이맘때 신보 <고독의 의미>(2013)를 발표한 이적이 “시간을 견디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던 건, 세상을 떠난 신해철이 마지막으로 발표했던 싱글 ‘에이.디.디.에이’(A.D.D.a)에서 “천천히 걸을까. 멈추지 말아 볼까”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던 건, 분명 그런 의지의 표명이었으리라.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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