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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8 09:24 수정 : 2019.09.28 16:23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오브더티브이
방송사의 창작자 착취

시즌3 앞둔 JTBC 음악예능 ‘슈가맨’
멜로망스에 음원 수익 미지급 분쟁
음악연대 “수익 편취, 고질적 병폐”
방송작가, 지식재산권 인정 못 받아
대접 안 하면 인력 국외 유출 불가피

방송작가노조 조합원들이 2017년 11월 서울 상암동 <제이티비시>(JTBC) 건물 1층 카페 모임방에서 큐시트를 본뜬 종이 구호 ‘방송작가도 노동자다’를 들어 보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제이티비시>(JTBC) 음악 예능 <투유프로젝트―슈가맨>(이하 슈가맨)이 시즌3로 돌아온다는 소식에도, 사람들은 예전만큼 기꺼이 환호하지 않는다. 시즌3 제작과 관련한 뉴스가 나온 바로 다음날, 방송사가 음원으로 거둔 이익을 뮤지션과 음원 제작사에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공정한 음악생태계 조성을 위한 연대모임’(이하 음악연대)이 지난 19일 연 기자회견에서 주장한 바와, 2인조 남성그룹 멜로망스 소속사 엠피엠지(MPMG), 음원을 제작한 레이블 광합성 쪽 주장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멜로망스는 지난해 1월 <슈가맨> 시즌2에 출연해 가수 김상민의 <유>(You) 리메이크곡을 선보였고, 그 곡은 주요 음원차트 실시간 순위 상위권을 기록하며 월간 차트 1위를 기록했다. 현재까지 10억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한 히트곡이지만, <제이티비시>는 방송 이후 4개월이 지나도록 음원 제작비와 음원 수익의 정산을 미뤘다. 제작비 이상의 수익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정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음원의 유통을 맡은 인터파크 쪽에서 투자한 5억원 이상이 되어야 비로소 정산이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지난 8월이 되어 계약서를 새로 작성하기로 했지만, <제이티비시>가 다시 음원 수익 배분에 제3자인 인터파크를 끼워 넣으면서 계약이 틀어졌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방송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도 음원 차트 시장에서 ‘음원 깡패’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영향력을 과시하는 멜로망스나 되니까 <제이티비시> 정도의 방송사를 상대로 공개적인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지, 다른 뮤지션이었다면 어땠을까? 음악연대는 <제이티비시>의 다른 음악 프로그램인 <싱포유>(2016~2017) 역시 출연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으며, 제작비와 음원 수익에 대한 정산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제이티비시>는 공식 입장을 통해 “실무자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음원을 제공한 뮤지션과 기획사에 피해가 발생했고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대화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며 뮤지션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 보상과 함께 음악 프로의 정산 작업 전반을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외부 전문가도 참여시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할 것을 약속했다. 바람직한 자세이지만, 여전히 한가지는 걸린다. 과연 이 일이 “실무자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생긴 일인 걸까?

‘아육대’ 피해 국외로 가는 아이돌

음악연대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례가 “음악 창작자들에 대한 방송국의 갑질과 횡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제이티비시> 음원 수익 편취 사건도 고질적인 관행 때문”이라고 밝혔다. 돌이켜보면 이와 같은 일들이 어디 한두번이었나. <문화방송>(MBC)이 매년 명절 선보이는 <아이돌스타 육상선수권 대회>(현 <아이돌스타 선수권대회>, 이하 아육대)는 경기 준비 과정이나 경기 중에 다친 아이돌 가수만 두자릿수를 기록한 행사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아이돌 가수들은 음악방송이라는 막강한 플랫폼을 지닌 방송사의 명절 특집 프로그램 출연 요구를 거절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 토로한 바 있다. 여력이 되는 소속사들은 오로지 자사 아이돌의 <아육대> 출전을 피하기 위해 명절 시즌에 맞춰 외국 공연 일정을 잡는 극단적인 행보를 택하기도 한다. <제이티비시>에서 방영된 드라마 <송곳>(2015)은 노동운동을 다룬 드라마임에도 소속 작곡가들에게 저작권 영구 귀속을 강요하고 응하지 않은 작곡가들을 내쫓은 방송 배경음악 라이브러리 업체 로이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는 역설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방송사가 음악 창작자들을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을’ 대우를 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제이티비시>가 말한 “실무자의 대응”은 방송사 입장에선 관행을 충실하게 따른 매우 적절한 대응이었을 확률이 높다.

방송사의 착취는 비단 음악 창작자들만을 향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한국 예능 프로그램들은 그 경쟁력을 인정받으며 세계 각국에 포맷을 수출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초기 포맷 개발에 기여한 방송작가 대다수는 그 수출 실적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국외 제작사들의 경우 포맷 개발에 기여한 방송작가들에게 수익의 약 10%에 이르는 지식재산권을 인정해준다. 그렇게 지식재산권으로 고정적인 수익이 생기면, 방송작가들은 좀 더 긴 호흡으로 더 정교하고 질 높은 콘텐츠를 설계해 새롭게 시장에 선보일 수 있다. 또한 한번 선보인 포맷에 대한 기여도가 영원히 기록되는 탓에, 좀 더 주인의식을 가지고 프로그램에 임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한국방송작가협회에 가입된 작가들에게 네트료(지역 방송사에 프로그램이 송출될 경우 받는 페이)와 재방료, 주문형비디오(브이오디·VOD) 시청료, 비디오 판매료 등이 지급될 뿐, 영상 저작물이나 포맷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인정받는 사례는 거의 없다. 방송작가들의 항의에도 방송사의 반응은 한결같은데, 그게 관행이라는 것이다.

한국 방송작가들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사실은 대단한 비밀도 아니다. 어디까지가 작가의 일이고 어디에서부터 연출부의 일인지 불투명한 탓에 자꾸 업무 영역 바깥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노동시간은 살인적인데 페이는 높지 않다. 고용 또한 프로그램 단위로 맺어지는 계약직 고용이기에 안 그래도 불안정한데 일방적인 작가 교체나 원고료 미지급 사태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엄연히 인정받아 마땅한 포맷에 대한 지식재산권마저 인정받지 못하니, 작가들은 연차가 1년차든 20년차든 계속해서 당장 눈앞의 프로그램 대본을 써내느라 긴 호흡으로 창작에 임하지 못하고 허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방송사는 이와 같은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작가나 작가 지망생은 많으니, 불만을 표시하는 작가가 있다면 언제든지 교체하면 된다는 생각이리라.

<제이티비시>(JTBC) 음악 예능 <투유프로젝트―슈가맨2>의 홍보 이미지. 시즌3 제작과 관련한 소식이 나온 뒤 방송사가 음원 이익을 뮤지션에게 지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슈가맨> 누리집 갈무리
국경이 사라지는 세계 콘텐츠 시장

굳이 칸 티브이필름미디어프로그램박람회(MIPTV, 세계 최대 방송 콘텐츠 마켓) 같은 국외 행사를 나가 보지 않더라도, 한국 예능이 세계 시장에서 지닌 경쟁력은 간단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유튜브에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리액션 영상을 찍어 올리는 세계 각지의 유튜버들이 가득하고, 케이팝 열풍을 타고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이 출연한 예능 영상을 찾아보다가 어느 순간 한국 예능 자체에 매료됐다고 말하는 이들이 온라인 포럼 곳곳에서 목격된다.

과거에는 한국 예능 프로듀서나 작가들이 진출하는 국외 시장이 중국 정도로 제한되었다면, 이제 세계 각국의 자본이 직접 한국 예능 작가들과 접촉해 협업을 제안하거나 포맷을 의뢰하는 단계까지 왔다. 아예 한국에 들어와 한국 작가들을 데리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국외 자본 사례가 넷플릭스 정도로 그칠 거라고 생각한다면 심각한 오산이다. 그리고 안방의 작가들이 더 나은 대우와 기회를 찾아 국외로 나갈 채비를 하는 동안, 그들을 붙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오로지 한국의 방송사들만 모른다.

이게 다 남의 노동에 기대어 수익을 내면서도 그에 대해 정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는 걸 당연한 일이라 여기며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방송사의 오랜 관행 탓이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5년 전에도 그랬으며 어제도 그랬으니 오늘도 그래도 될 것이라 생각한 이들의 게으른 관행. 그러니 10억원 가까운 수익을 기록한 멜로망스에도 자꾸만 불공정한 수익 배분을 강요하고, 해외 각국에 그 포맷이 팔려나가며 한국 예능의 성공적인 외국 진출 사례로 손꼽히는 예능들의 포맷을 설계한 작가들을 기획자가 아닌 일용직 마감 노동자 취급하며 지식재산권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이리라.

좋든 싫든 세계 콘텐츠 시장은 점점 국경이 사라져 가고 있다. 안방에 앉아서도 국외 진출이 가능해진 세상에서, 관행을 핑계 삼아 방송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사람들에게 응당 돌아가야 할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한때 한국 방송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기여했던 그 인재들은 죄다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버릴 것이다. 그것이 한국 방송산업이 택하고 싶은 미래라면 마음대로들 하시기 바란다. 다만 그 결과가 모두 자신들의 탓이라는 점만큼은 알아두시기를.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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