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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3 10:22 수정 : 2019.11.24 16:02

인간세계의 번거로운 위계를 따르지 않는 펭수는 재밌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성별 이분법을 거부하는 펭수에게 남녀 모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펭수가 오른손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 <교육방송> 화면 갈무리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오브더티브이
<교육방송>(EBS) 히트상품 ‘펭수’

남극 ‘펭’씨에 빼어날 ‘수’
키 210㎝의 자이언트 펭귄
위계 없이 사장 ‘김명중’ 호칭

JTBC ‘펭수 남성’ 팩트체크
‘굳이 왜 성별 확인하나’ 반응
성 구분 없이 그 자체로 존중해야

인간세계의 번거로운 위계를 따르지 않는 펭수는 재밌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성별 이분법을 거부하는 펭수에게 남녀 모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펭수가 오른손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 <교육방송> 화면 갈무리

<교육방송>(EBS)이 낳은 가장 파괴력 있는 대세 캐릭터 펭수의 세계관은 명확하다. 남극 ‘펭’씨에 빼어날 ‘수’를 쓰는 210㎝ 키의 자이언트 펭귄 펭수는 뽀로로 같은 스타가 되는 것을 꿈꾸며 남극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헤엄쳐 왔다. 오디션을 거쳐 교육방송의 연습생으로 발탁되어 교육방송 창고에서 숙식을 해결 중인 펭수의 나이는 올해 열 살. 그러나 자이언트 펭귄 나이로 열 살이 인간으로 치면 몇 살인지 알 수 없는 까닭에, 인간들은 펭수가 한국 특유의 정교하고 복잡한 상하 위계관계 따위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걸 나무라지 못한다. 소속사 사장에게 극존칭을 쓰는 인간 연습생들과 달리 펭수는 교육방송 사장의 이름을 아무런 경칭 없이 ‘김명중’이라 부르고, 후배 군기를 잡겠다고 전화해대는 교육방송 대선배 뚝딱이의 전화를 사뿐히 무시한다. 인간들은 펭수의 이런 행보를 보며 ‘펭성 논란’을 운운하지만, 그런데도 펭수는 펭수의 길을 간다. 펭귄이니까. 펭귄에게 인간세계의 번거롭고 자질구레한 위계관계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인간세계의 규칙을 크게 따르지 않는 펭수의 존재는 좀 재미있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우선 펭수는 성별 이분법을 거부한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펭수는 한사코 자신은 그저 남극에서 온 열 살짜리 펭귄이라고만 답한다. 덕분에 우리는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펭수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펭수가 거부하는 건 성별 이분법만이 아니다. 펭수가 <문화방송>(MBC) 라디오 <여성시대>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들은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는지 물었다. 펭수를 수컷 펭귄이라 상정하고 건넨 질문이었으리라. 그러나 펭수는 그 질문에 “여자친구도 남자친구도 없다”고 답했다. 한쪽으로 정해진 대답을 피함으로써 펭수는 영리하게 제 성별에 대한 답만 피한 게 아니라 성적 지향에 대한 답도 함께 피한 셈이 됐다. 덕분에 그 어떤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의 소유자든 편한 마음으로 펭수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어떤 거창한 선언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이분법적인 질문에 답하길 거부하는 것만으로 이뤄낸 쾌거다.

전형적 성역할 거부

이는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캐릭터 전략과는 다른 행보다. 대부분의 캐릭터는 정해진 성별과 그에 따른 역할 모델이 있으니까. 미키 마우스나 미니 마우스, 벅스 버니와 롤라 버니, 헬로 키티 같은 캐릭터들은 명확하게 지정된 성별이 있고 전형적인 성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이 캐릭터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지금보다 성별 이분법이나 성역할 고정관념이 더 단단하던 시기였으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탄생한 캐릭터들이라고 상황이 다르진 않다. 외계인이라 지구의 성별 구분법을 따를 이유가 없는 <교육방송> 선배 방귀대장 뿡뿡이 또한 여자 캐릭터 뿡순이의 등장 이후 남성으로 성별이 굳어졌다. 펭수와 종적 친연성을 지닌 선배 펭귄 뽀로로 또한 수컷이고, 과연 성별이 필요한지 의문이 드는 꼬마버스 타요 또한 정비사 하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거로 보아 남자아이다.

성별이 부여되면 그 성별에 맞는 성역할 또한 부여된다. 뽀로로와 타요의 친구 중 대다수는 남자아이들인데, 고명처럼 들어간 여자아이들은 소위 ‘여성적인 색깔’인 노란색 몸통을 지니고 있거나(꼬마버스 타요의 라니), 남자아이 캐릭터들이 대부분 활기찬 파란색 바지를 입고 있는 것과 달리 분홍색(뽀롱뽀롱 뽀로로의 루피)이나 자주색(뽀롱뽀롱 뽀로로의 패티) 원피스를 입고 있다.

동물은 물론 외계인이나 버스에까지 집요하게 성별을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일 먼저 떠올려볼 수 있는 건 ‘시장 공략’이다. 성별이 명확해야 ‘남아용’과 ‘여아용’으로 나누어진 관련 상품 시장을 공략하기 쉽고, 그에 맞춰 콘텐츠 방향을 조율할 수 있다. 하지만 관련 상품 시장이 나누어진 것은 사실 이유라기보단 결과에 가깝다. 근본적인 원인은 태어날 때 사회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성별에 따라 특정한 성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 전반의 가부장제 질서일 것이다.

여자아이들이 축구하거나 바지 입는 걸 ‘선머슴 같다’고 평하고, 남자아이들이 소꿉장난하거나 발레 배우는 걸 ‘계집애 같다’고 평하며 일찍부터 무엇을 해야 칭찬받고 무엇을 하면 비난의 대상이 되는지 일러주는 일부터, 여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좋아하고 남자아이가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것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라 가르치는 일, 남자아이들에게는 자위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가르치면서 능동적인 성 탐구를 권장하는 반면 여자아이들에겐 기껏해야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제 성을 지키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면서 방어적인 성역할을 가르치는, 이 모든 일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일어난다. 새로 유입된 인구를 기존의 ‘활동적인 남성과 가정적인 여성’이라는 가부장제 질서 안에 무사히 포섭하기 위한 집단적 무의식이, 버스에까지 남성과 여성의 성별을 부여하고 성역할을 수행하는 집요함으로 이어진 셈이다.

재미있는 건 이런 성별 구분과 성역할을 거부하는 펭수를 향한 팬들의 지지다. 최근 <제이티비시>(JTBC) 뉴스는 자신들이 펭수의 성별을 알아냈다고 보도했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홍보를 위해 외교부 청사를 찾은 펭수와 교육방송 관계자들이 적법한 신원확인 절차 없이 외교부 청사에 출입했다는 논란이 일자, 관련 사실을 체크하던 중 밝혀냈다는 것이다. 교육방송 관계자들의 신원을 확인한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남성이라는 것이 기자의 설명이었다. 아마도 펭수를 실제 펭귄처럼 대하는 네티즌들의 설정놀이에 자신들도 합류하겠다는 장난스러운 보도였겠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펭수가 자기 입으로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말하는데, 굳이 성별을 확인하는 이유가 대체 뭐냐는 것이었다.

펭수가 사인회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교육방송> 제공

보건복지부의 헛다리

헛다리를 짚은 건 <제이티비시>만이 아니었다. 보건복지부 유튜브 계정은 남극에 두고 온 가족을 보고 싶다는 펭수에게 가족사진 일러스트를 선물했는데, 성 중립적인 외모의 펭수와 달리 일러스트 속 펭수의 가족은 외모부터 구성까지 전형적이었다. 수염 자국이 거뭇거뭇 난 아빠와, 앞머리는 뱅을 하고 뒷머리는 쪽을 찐 엄마, 그리고 공갈젖꼭지를 물고 있는 펭수의 동생까지. 전통적인 성역할에 따른 스타일링과 소위 ‘정상 가정’이라 불리는 4인 가족―아, 펭귄이니 4펭 가족이겠지― 구성으로 채워진 가족사진 일러스트를 받은 펭수는, 고맙다는 말 대신 단호한 말로 일러스트를 거부했다. “저 동생 없는데요?” 그리고 팬들은 그런 펭수에게 환호한다.

이는 펭수가 인간이 아닌 펭귄이라는 설정을 모두가 존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펭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그저 남극에서 온 열 살 펭귄이라고. 펭수를 있는 그대로의 펭수로 존중하는 것이 펭수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존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모두가 언론과 정부기구의 헛다리 짚기를 비웃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 가능성은 사실 펭수만 지니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 특정한 성역할 안에 가둘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성별 이분법과 성역할 모델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이 일을 펭수가 한국 사회에 상기시켜 준 셈이다.

최근 있었던 ‘2019 국민과의 대화, 국민이 묻는다’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동성혼 합법화에 대한 질문에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아주 틀린 답이라 할 순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던 관습법을 바꾸는 일을 정부가 독단적으로 끌고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준비가 안 된 게 정말 한국 사회일까, 아니면 변화에 소극적인 정부일까? 언론이 펭수의 성별을 밝혀냈다고 환호하고, 정부기구가 펭수에게 전형적인 성역할 모델에 따른 가족사진을 선물하는 동안, 펭수의 팬들은 펭수를 있는 그대로의 펭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언론과 정부기구의 낡음을 비웃었다. 적어도 펭수 팬들은 타자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할 준비가 된 거 같은데, 정말 시대적 분위기를 못 따라가고 있는 건 누구인가?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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