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14 18:00
수정 : 2019.11.14 17:37
미세먼지 문제를 ‘먼지’의 문제라기보다 환경파괴에 의한 ‘대기오염’으로 보는 시각이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우리의 생명과 삶을 중심에 두는 정치, 그리고 과학적인 논의를 통해서 구체적인 정책을 모색하는 집단적인 노력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과학이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 이 말은 1934년 스웨덴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이 한 말이다. 197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뮈르달이 당시 스웨덴의 인구위기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서 한 말이다. 경험적 사실과 과학적 논증에 기반을 둔 정치만이 직면하고 있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1930년대 유럽은 대공황과 더불어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위기를 경험하였다. 유럽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였던 스웨덴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였다. 종교계는 종교적 교리를 내세웠고 정당들은 정치적 이념에 기반을 둔 주장들을 앞세웠다. 뮈르달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이 아니라, 인구통계에 근거하고 엄밀한 사회과학적 논의를 통한 정책적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집권당이 된 스웨덴 사민당은 뮈르달의 주장을 받아들여 가족복지 강화를 통한 저출산 탈피에 성공했다. 오늘날 유럽 제2의 고출산율 국가가 되었다.
2010년대 한국에서는 과학보다 정치가 우선한다. 최근 미세먼지로 인한 고통스러운 나날이 지속되면서, 먼저 미세먼지의 원인과 해결책을 둘러싼 뉴스들이 매체를 통해 쏟아졌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진 원인이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중국과 한국의 대기오염물질 중 어디에서 배출된 오염물질이 더 핵심적인지를 둘러싼 정치적 해석도 대두되었다. 그리고 그 미세먼지가 지속되는 현실에 대한 정부 책임론도 등장하였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원인과 책임 주체도 달라지는 ‘미세먼지의 정치학’이 대두되었다.
팩트와 과학적 진실보다는 추측과 상상을 통해서 ‘미세먼지 담론’이 유포되면서, 급기야 이를 우려하는 ‘미세먼지 해결 더 어렵게 하는 혹세무민 주장들’이라는 사설도 실렸다. 특정한 정보나 해석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쉽게 확산되면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주장에 의한 여론이 만들어졌다.
한국의 정당들은 긴 호흡을 갖고 환경파괴와 대기오염, 화석연료 사용과 지구온난화 등에 대응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유불리를 계산하며 대응하였다. 과잉 정치화된 매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이루어진 동아시아의 산업화가 낳은 환경파괴와 공해산업의 문제, 환경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국민들의 소비행태와 과도한 화석에너지 사용에 대한 성찰 없이, 미세먼지의 책임만을 둘러싼 기사가 난무했다.
이런 점에서 <한겨레>의 미세먼지 관련 기사들은 나름대로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복잡한 ‘미세먼지 방정식’을 풀어나가고자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했다. 원인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해법도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해석보다 과학적 설명에 충실한 기사였다는 점에서 ‘미세먼지의 과학’에 대한 알찬 기사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미세먼지 문제를 ‘먼지’의 문제라기보다 환경파괴에 의한 ‘대기오염’으로 보는 시각이 많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2월5~9일 새 런던을 뒤덮은 스모그로 1만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산업화가 낳은 대기오염이 유발한 끔찍한 재앙이었다. 영국에서 가장 먼저 경제적인 이윤만을 지상의 목표로 하는 산업화가 이루어졌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대기오염은 동아시아 산업화의 또 다른 산물이다. 경제성장을 위하여 환경파괴는 필요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연파괴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지속되고 있고, 경제성이라는 이름 아래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공해물질이 배출되고 있다. 각종 자동차 매연, 생활 쓰레기, 플라스틱 공해와 미세먼지는 모두 같은 종에 속하는 환경오염의 일종이다.
매년 봄이 되면 겪는 황사에 더하여 미세먼지라는 새로운 대기오염물질이 하늘을 뒤덮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 몇년 동안 그에 대한 원인 진단과 해법은 별로 진전된 것 같지 않다. 미세먼지가 사라지면, 다시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도 사라지고 대기오염 문제가 잊히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럽다.
2019년 초 한반도를 뒤덮은 미세먼지와 이를 둘러싼 담론을 접하면서, 군나르 뮈르달의 오래된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정말로 ‘과학이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 정치적인 이해득실과 경제적인 이익이 아닌 우리의 생명과 삶을 중심에 두는 정치, 그리고 과학적인 논의를 통해서 구체적인 정책을 모색하는 집단적인 노력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미세먼지가 없는 때에도, 미세먼지 문제를 계속해서 다루는 언론이 되길 기대한다. 한국에서도 ‘과학이 정치를 이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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