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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8 16:17 수정 : 2019.11.14 17:36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올해도 역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 되었다. 잔인함은 영국 시인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희망적으로 읊조린 척박한 땅에서도 강인한 생명이 움트는 과정의 처절함 때문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황무지로 변하는 절체절명의 재난 때문이었다. 바로 동해안 산불로 강원도민은 물론 온 국민이 한동안 두려움과 안타까움으로 고초를 겪었다.

불은 강원도 고성군에서 발화하여 삼척, 속초와 강릉 세 도시를 집어삼켰고, 경상북도 울진군 일부까지 삽시간에 태워버렸다. 이번 동해안 산불은 마침 양강지풍이라고 불리는 거센 바람까지 불어 무섭게 해안가로 번져나갔다. 강원도 동해안 지역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다행스럽게도 동해안 산불은 우려했던 것보다 빠르게 진화됐다. 그야말로 밤새워 진화에 나선 소방대원, 지역 주민과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진화작업 덕분에 조기 진화에 성공했다. 티브이 화면에 비친 무서운 불길을 보고 느꼈던 공포가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은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대형 재난 사태는 한 사회의 총체적인 역량을 그대로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재난이 발생하면, 사회의 모든 부문이 작동하게 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소방방재청과 같은 화재를 전담하는 부서, 지역의 군과 경찰이 움직이면서 진화, 응급구조, 이재민 지원, 복구 등 대단히 다양한 활동이 동시다발로 이루어진다.

민간 부문에서도 언론사는 기사로 보도하고, 통신사는 끊어진 통신망을 연결하여 진화와 구호활동상의 장애를 없애고, 전력회사는 감전을 막고 화재로 인한 전기 공급중단 문제를 다룬다. 지역 병원은 부상자를 치료하고, 지역 학교는 이재민 자녀들의 문제를 다룰 뿐만 아니라 이재민들에게 임시 주거지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중앙과 지방, 관과 민 가릴 것 없이 일사불란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총체적인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대형 재난은 한 사회의 역량을 시험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번 동해안 산불 사건에서는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와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우왕좌왕했던 모습과는 달리 매우 일사불란한 재난 대응을 보여주었다. 세월호 사건이 반면교사의 구실을 톡톡히 했다고 볼 수 있다.

동해안 산불 사건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구실을 한 것이 언론이다. 언론이 직접 여론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만이 아니라 관련 기관의 대응을 평가하고, 독려하는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매체들이 앞다퉈 동해안 산불을 보도했고, 방송사들은 실시간으로 화재 현장을 중계했다. 신문들은 산불 사진을 1면에 게재하면서 동해안 산불을 보도했다. 신문들은 주로 산불 피해를 중심으로 보도했다. 망연자실한 이재민, 산불에 그슬린 소나 불을 피하지 못한 애완견,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의 대피 등이 뉴스 사진으로 보도되었다. 신문의 경우, 티브이에 견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더 자극적인 사진을 싣는 경향도 나타났다.

그러나 언론사에 따라서 동해안 산불을 다루는 기사의 내용과 빈도가 현저하게 달랐다. 중앙 일간지들 가운데서도 산불 발생 일주일 동안 보도된 기사 수는 가장 많이 보도한 경우와 가장 적게 보도한 경우 무려 4배 차이가 있었다. <한겨레>는 평균보다 약간 적은 수의 보도기사를 내보냈다. 가장 많은 기사를 내보낸 신문사에 견줘 3분의 1 정도였다.

기사 내용과 관련해 산불 진화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소방대원들의 활약을 다룬 기사는 한건도 없었다. 전국에서 강원도로 달려와서 산속에서 밤새워 진화작업을 한 소방대원들의 입장에서 서운했을 것이다. 소방대원들의 헌신적인 진화 대신 ‘소방관 국가직’ 논의가 그 뒤 기사화됐다. 동해안 산불에서 소방대원들의 영웅적인 활약상과 형편없는 처우가 먼저 보도되었다면, 소방관 국가직 논의도 훨씬 더 용이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대신 비정규직 소방관들인 산림청 산불재난 특수진화대원 기사는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한국의 민낯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보도였다.

대형 재난 사고에 대한 보도는 신속성, 정확성 그리고 신문사의 편집 방향 등과 관련하여 어려운 판단을 요구한다. 언론도 사회의 역량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한겨레>의 역량이 더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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