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15 16:08
수정 : 2018.05.15 19:08
백기철
논설위원
한·중·일 정상회의가 도쿄에서 열린 지난 9일 베이징에선 3국 기자들의 세미나가 열렸다. 세 나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마련한 행사였다. 애초 주제는 ‘미디어 변화와 3국 언론’이었는데 현장에서 ‘반도의 평화’ 문제가 추가됐다. 3국 기자들은 한반도 변화에 놀라워했다. 밥 자리건 토론이건 한반도가 이슈였다.
중국 기자들은 이념적이었는데 3국 협력을 통한 경제발전에 관심이 많았다. 한 중국 기자는 “세계 경제의 20%를 차지하는 동북아 3국이 협력하면 미래는 밝다”고 했다. 다른 이는 “그간 한반도 상황이 악화됐던 데는 미국 책임이 크다”고 했다.
일본 기자들은 실용적이었다. 이른바 ‘일본 패싱’에 대한 아쉬움도 묻어났다. 한 일본 기자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 이번은 과거와 다를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른 이는 “번영을 위한 협력은 외교관 언어다. 기자는 팩트를 봐야 한다”고 냉정히 말했다.
한국 기자들은 뭐랄까 격정적이었다. 당사자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중국의 양해로 남북 단일팀이 꾸려진 걸 끄집어냈다. 나는 “남북한과 중국, 일본이 국제정치도 이렇게 협력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 나라가 남북의 평화·번영을 위해 통크게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도둑처럼 왔다는 독일 통일은 주변국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특히 미국 대통령 아버지 부시와 소련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역할이 컸다. 당시 서독 총리 콜은 두 사람과 하루가 멀다 하고 접촉했다. 수시로 전화하고 소통했다.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 붕괴 다음날 베를린 집회 현장에서 콜은 고르바초프한테 전문을 받았다. 집회가 과열되지 않도록 시민을 자제시켜 달라는, 다소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주고받을 정도였다.
콜은 독일 통일 10개항이란 대원칙을 천명해 밀어붙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변국 협력을 얻는 데 전력투구했다. 그 결과 장벽 붕괴 3개월 만에 고르바초프로부터 ‘통일은 독일인 스스로 해결할 문제’라는 양해를 얻었다. 아버지 부시 역시 나토에서 통일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독일 통일과 견주면 지금 북한의 비핵화는 미미한 시작에 불과하다. 통일과는 거리가 먼 정상국가의 초입으로, 공존의 창이 열릴 듯 말 듯 하는 정도다. 그래도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 통일로 가는 창도 열릴 것이다.
북한의 정상국가 진입에서 미국은 물론이고 이웃한 중국·일본의 협력을 얻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번영이 동북아 3국 모두의 번영으로 이어지고, 남북의 통일이 3국 모두에게 이익이거나, 최소한 해가 되지 않는 구조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을 남북이 주도해야 한다. 이웃이라 해도 우리가 만만해 보이면 결코 도움을 얻을 수 없다.
이번 3국 세미나는 사드, 과거사로 험악했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중국 기자들은 개혁개방 40년의 성취에 자부심이 컸다. 일본 기자들은 아베가 내정을 죽 쑤고 있어서 외교로 탈출구를 찾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 중국 기자는 27년 전 남북 탁구 단일팀 이야기로 화답했다. 그때도 일본·중국이 상대였는데, 현정화·리분희 단일팀이 중국을 꺾고 우승했다고 했다. 이웃 나라들의 이런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자고도 했다.
어떤 일본 기자는 언젠가 남북한과 중국, 일본이 함께 참여하는 4국 또는 3국 언론인 세미나가 열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남북한이 단일 언론팀일까 아니면 각자일까 하는 다소 복잡한 상상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런 상상이 싫지는 않았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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