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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22 18:25 수정 : 2018.05.22 19:54

신승근
논설위원

좀 지난 일이다. 정치부로 발령받은 후배 기자는 국회의원들을 보고 있자니 가치관에 혼돈이 온다고 했다. 회의장에서 삿대질과 욕설을 주고받던 이들이 어떻게 상임위가 끝나자마자 아무 일 없다는 듯 서로 토닥이며 함께 밥을 먹으러 나가냐는 것이었다.

이젠 일상이 됐지만, 국회에 첫발을 디디면서 적지 않은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다. 가장 흔한 게 이념이나 소속 정당을 떠나 작동하는 ‘끈적한 동류의식’이다. 여야로 갈려 막말을 주고받지만, 카메라가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싱글벙글, 말도 섞을 것 같지 않던 앙숙은 친밀하고, 적대세력 간에도 동지애가 발현한다.

자유한국당의 홍문종·염동열 의원이 21일 오전 열린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상정되기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회는 이날 뇌물·횡령·배임 혐의 등을 받고 있는 홍 의원 체포동의안을 찬성 129, 반대 140, 기권 2, 무효 3표로 부결했다. 직권남용 및 업무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 염동열 의원 체포동의안도 찬성 98, 반대 172, 기권 1, 무효 4표로 부결됐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건 ‘금배지들’이 집단적 우월감 속에 특권을 공유하는 심리적·구조적 버팀목 같은 것이었다. 치열하게 싸우는 듯하지만, ‘거래’를 서슴지 않았다. 특권이 위협받을 때 동류의식은 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홍문종·염동열 의원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건 그 징표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리 의원 감싸기라며 자유한국당의 방탄국회 소집을 20일 가까이 성토했다. 그런데 기표소 안에선 20여명이 넘는 여당 의원이 부표를 던졌다. 홍문종·염동열 의원이 동료 의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밝힌 건 빈말이 아니다. ‘한 패거리’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동료애를 보여준 데 대한 진심이 담겼을 것이다. 여론이 의석수를 줄이라거나, 세비를 반납하라거나, 의원 외유를 문제삼을 때 의원들은 잠시 순응한다. 여론이 잦아들면 소속 정당을 넘어 ‘끈적한 연대’를 과시하면서 자신들의 특권을 지켜낸 게 이번만은 아니다.

의원들을 더 깊숙이 알면, 정글 같은 일상에 또 놀란다. 대개 정의를 외친다. 하지만 그들의 실제 삶은 더 강한 자에게 굽히는 것이다. 목소리 큰 의원도 당대표 앞에선 대부분 침묵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막말 파문’으로 욕을 먹지만 당 안에서 쓴소리는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이유다. 의원들은 정의보다 당직에 더 목을 맨다. 공천부터 이른바 ‘줄’을 타고 들어온다. 패거리를 만들고, ‘계보’라는 이름으로 행세한다. 배신도 잦다. ‘보스’로 모시던 실력자가 더 큰 권력자, 특히 대통령 눈 밖에라도 나면 “형님 좀 잘하쇼”라며 맞짱을 뜬다. 동향을 파악해 실세에게 보고한다. 의원부터 장관직을 꿰찬 거물까지, 대개 정글에서 하이에나처럼 치열하게 물고 물린다.

정말 놀라운 건, 의원들의 정신력이다.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 보이지만 단면일 뿐이다. 다수는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멘탈갑’이다. 오죽하면 ‘정치인은 부고 빼곤 욕먹는 얘기도 신문에 실리는 게 좋다’고 말하겠나. 정치인을 품평하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그들의 생존능력은 인정해야 한다. 정글 속 하이에나, 싱크대 밑 바퀴벌레라는 비아냥도 크게 신경 안 쓴다. 아무나 정치를 하는 게 아니다. 체포동의안 부결 뒤 ‘불체포특권 폐지’ 등의 자성부터 ‘국회를 해산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는 자조까지 분출한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체포동의안 기명투표’ 추진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평안할 것이다. 언제 검찰의 칼날이 자기 목을 치러 올지 모르니 이번 표결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한 ‘보장성 보험금’ 납입 같은 일로 느낄 게다.

너무 분노하지 말자. 정신건강에 안 좋다. 우리도 그들만큼 치열하게, ‘바꾸면’ 된다. 국회를 해산할 수 없지만, 4년마다 바꿀 수 있다. 또 말놀음에 속지 말고, 특권을 내려놓는지 눈 부릅뜨고 지켜보자. 정글에서 단련된 의원을 대적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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