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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24 18:37 수정 : 2018.05.24 19:53

김영배
논설위원

영화 <해적>은 부제부터 재밌었다. ‘바다로 간 산적’이라니. 최고 재미 요소는 ‘철봉’ 역을 맡은 유해진의 익살맞은 연기였다. 바다 한 번 본 적 없는 산적들한테 고래의 존재를 설명하는 대목은 특히 웃겼다. 관람 내내 배꼽 잡느라 주 무대가 고려시대 국제무역항 ‘벽란도’였다는 사실 따위는 무심히 흘려 넘겼다.

사극이나 중고등학교 역사책 한 귀퉁이에서 본듯만듯한 흐린 기억 속의 벽란도가 냉엄한 표 계산의 정치판에 불려나온 건 2007년 9월이었다. 당시 대통령선거에 나선 한 후보가 ‘벽란도 프로젝트’ 공약을 내놓았다. 남북 경제협력 사업의 하나로 벽란도 중심의 공동특구를 설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역사적 감흥을 일으키는 벽란도를 제목으로 삼아 제법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2014년 개봉작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 포스터. 고려시대 국제무역항 ‘벽란도’를 주요 무대로 삼고 있다. <한겨레> 자료
벽란도가 정치인의 공약집과 기업인의 미래 비전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 선언’에 이어 열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형성된 새 기류 때문이리라. 6월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직에 도전하는 한 후보는 ‘교동도-벽란도 자치경제특구’ 구상을 내놨다. ‘강화도 옆 교동도와 북한 예성강 하구 벽란도를 잇는 특구를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판문점 선언에 포함된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와도 잇닿는 내용이다. 벽란도에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도시를 조성하자고 제안한 기업인도 있다.

벽란도는 고려왕조 도성인 개경(개성)의 지리적 약점을 채워주는 보완재였다. ‘송악산에서 흘러 (개경의) 만월대 좌우 양쪽으로 흐르는 물과 선죽교 밑으로 흐르는 물을 합쳐도 서울 청계천의 수량보다 적다’(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5>). 이 점에서 개경은 ‘한강을 띠로 두르고 있는 한양보다 조건이 나빴는데, 교통이나 상업적인 측면의 입지 조건은 뛰어났던’ 게 바로 벽란도 때문이었다. 개경 서쪽 30리(12㎞) 지점에 터 잡은 예성강 하구의 자연항 벽란도는 상업과 무역의 중심이 되었고, 고려의 이름(코리아)을 바깥 세상에 알린 통로였다. 이런 역사적 상징성에,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한 쪽 교동도와 2㎞가량 떨어진 지리적 근접성을 아울러 지니고 있어 주목을 받는다.

고려왕조 멸망 뒤 벽란도의 위상은 떨어지고 세금으로 거둔 쌀을 운반하는 나루터 정도에 머물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들어 철도를 비롯한 육로 교통의 발달로 더 위축됐다. 벽란도는 황해도 연백군 해월읍 ‘벽란리’라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가 1952년 북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배천군 문산리에 편입돼 지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판문점 선언 뒤에 조성된 일련의 분위기 덕에 벽란도와 교동도를 아우르는 경제특구 구상이 마냥 허황된 공상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북-미 회담을 앞두고 돌출 변수들이 불거지고, 살얼음판 같은 난관을 여럿 거쳐야겠지만,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정치·경제의 돌파구를 열고픈 사람들의 절절한 열망이 꿈을 현실 쪽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해적> 속 산적들의 불신과 달리 고래는 정말로 존재했다. 교동도와 벽란도 권역이 경제특구로 한데 묶이고, 남북한 주민과 외국인들이 무비자로 이곳을 자유롭게 오가는 상상이 현실로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경제특구든, 서해평화협력지대든 대담한 구상을 통해 ‘벽란’이 다시 지도에 그려지는 꿈을 즐겁게 상상하고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돌 하나 쌓는 것’일지 모른다. ‘글로벌 고려’의 선봉이었던 벽란도의 부활로 북한 경제가 남한, 나아가 세계 경제와 연결돼 ‘예성강의 기적, 대동강의 기적’으로 이어지기를 고대한다.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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