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16 18:31
수정 : 2018.08.22 22:54
안재승
논설위원
2004년 참여정부 때 일이다.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해 2월 통계청의 ‘2003년 산업활동 동향’ 자료가 나오자 보수언론들은 “불황에 지친 서민들이 소주만 마셨다”고 보도했다. 소주 판매가 2002년보다 5.4% 증가한 것을 이렇게 해석했다. 그러다 2004년 상반기 소주 판매가 2.2% 감소한 것으로 나오자 이번엔 “불황 탓에 서민들이 소주도 못 마신다”고 보도했다. 소주 판매 증가도, 감소도 모두 불황의 증거로 동원됐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었다.
통계는 경제 흐름을 파악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복잡한 상황을 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그만큼 통계는 사람을 속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통계는 죄가 없다. 실수든 고의든 자의적 해석이 잘못이다.
보수언론들은 참여정부 내내 각종 통계를 왜곡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경제 위기론’을 퍼뜨렸다. 하지만 위기는 오지 않았다. 참여정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5%였다. ‘경제 대통령’을 자처한 이명박 대통령 시절 연평균 성장률은 3.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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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김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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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수언론들의 경제 관련 보도를 보면 참여정부 시절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지난 2분기 한국과 미국의 경제성장률 비교가 한 예다. 지난달 말 보수언론들은 한국은 0.7% 성장했는데 미국은 4.1% 성장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여기엔 심각한 오류가 있다. 한국은 전기 대비 성장률이고 미국은 전년 대비 성장률을 연율로 환산한 수치다. 기준 자체가 다르다. 한국 기준으로 하면 미국은 1.0% 성장했고, 미국 기준으로 하면 한국은 2.8% 성장했다. 1분기엔 한국 성장률이 미국보다 높았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우리 경제가 2분기 0.7% 성장하는 데 그쳤다. 한국보다 경제가 12배 큰 미국은 무려 4.3%(연율 환산) 성장을 내다본다. 충격적이기에 앞서 어이가 없다”고 했다. 정말 어이가 없다.
고용 통계도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취업자 증가 폭이 지난해 상반기 36만명에서 올해 14만2천명으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실업률은 4.0%에서 4.1%로 거의 변동이 없고, 고용률은 60.4%로 똑같다. 취업자 증가 폭 감소를 경기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산업활동 동향은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이 혼재돼 있다. 대규모 반도체 투자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설비 투자가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5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섰고, 6월엔 13.8% 줄었다. 상반기 전체로는 1.4% 증가했지만 지금 추세로 보면 당분간 부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투기 억제책의 영향으로 건설 투자(기성)도 상반기에 1.6% 감소했다. 반면 소비는 같은 기간 4.8% 증가했고, 수출은 1~7월 누적 기준으로 6.4% 증가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물론 체감 경기가 전반적으로 안 좋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공급 과잉에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영세 기업과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크다. 정부의 경제정책도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인 저성장 고착화와 소득 양극화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을 두고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느니 “우리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느니 하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경제주체들이 위기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과 위기를 부추기는 것은 전혀 다르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다. 보수언론들도 “소비심리가 바닥”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고 강변하면서 소비심리 위축을 걱정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일반 국민은 통계 원자료가 아니라 언론이 보여주는 해석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언론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통계를 정직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계 왜곡은 국가경제에 독이 된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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