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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23 17:22 수정 : 2018.08.23 19:07

고명섭
논설위원

2000년대 초반 일본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가 출간한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은 동북아시아 나라들이 경제협력을 거쳐 공동안보로 나아가는 공동의 길을 제시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화해정책’이 일으킨 평화의 물결이 동북아에 넘실거리던 시기였다. 그러나 ‘동북아 공동의 집’ 비전은 한반도 남쪽에 수구보수정권이 들어서고 동북아 정세가 악화일로를 걷자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지난주 광복절 73돌 대통령 경축사에는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떠올리게 하는, 근래 보기 드문 대담한 구상이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경축사에서 동북아를 하나로 연결하는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머잖아 구축될 남북종단철도가 중국횡단철도, 몽골종단철도,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고, 한-일 해저 터널까지 뚫린다면 동북아시아 일대를 덮는 거대한 철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런 미래상 위에 그린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구상은 대통령 경축사가 밝힌 대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모델로 삼고 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양차 세계대전의 적대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서독)이 뜻을 모으고 베네룩스 3국과 이탈리아가 가세해 1951년 창설됐다. 경제·군사 자원인 석탄과 철강을 공동의 관리 아래 둠으로써 전쟁 재발을 막고 경제 재건의 동력을 확보한다는 것이 이 공동체의 목표였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1967년 유럽공동체(EC)를 거쳐 1994년 유럽연합(EU)으로 발전했다. 유럽통합의 모체가 석탄철강공동체였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구상도 그 목표는 동북아 일대의 공동번영과 공동안보라고 할 수 있다. 철도를 축으로 삼아 경제공동체, 나아가 안보공동체의 집을 짓는다는 구상이다. 안보공동체 건설은 남북을 포함해 동북아 지역이 군사적 대결을 멈추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관건이 되는 과제다. 이 안보공동체는 외부의 적에 공동으로 대항하는 체제라기보다는 내부에 적이 없는 공간을 창출하는 지역적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역내의 어느 나라도 잠재적 적으로 간주되지 않는 공간이 형성되면 낡은 적대의 정치가 끝나고 진정한 우애의 정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공동의 집 구상은 일본에서 먼저 나왔지만, 역사적인 시야를 고려하면 역시 우리가 제안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아무리 순수한 차원이라 해도 일본이 공동의 집을 짓자고 한다면, 과거 제국주의 침략에 짓밟힌 기억이 있는 나라들은 의심의 시선을 거두기 쉽지 않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를 병참기지로 삼아 중국을 침탈한 나라가 일본 아니었던가.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보더라도, 2차 대전 피해국인 프랑스가 독일에 먼저 제안해 이 기구가 창설됐다. 더구나 한반도는 그 침략과 전쟁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분단의 고통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수난을 당한 쪽이 평화의 집을 짓자고 할 때 그 제안은 한층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구상이 실현되려면 한반도 남과 북의 전면적인 화해와 협력이 앞서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가 동북아시아 평화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와다 하루키도 강조한 바 있다. “한반도는 동북아시아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긴장과 대결의 장이다. 따라서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가 확립된다면 동북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협력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남북 대결의 종식과 분단체제의 극복은 남과 북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 번영과 평화의 근본 조건이다. 그 원대한 비전의 출발선에 남과 북은 서 있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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