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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13 16:07 수정 : 2018.11.13 19:16

고명섭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의 9월 평양 능라도 연설은 여러 측면에서 역사에 남을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 연설은 남쪽 대통령이 북녘 동포들 앞에서 한 최초의 연설이었다. 15만 평양시민들 앞에서 문 대통령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말했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며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연설을 제안한 사람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연설을 해 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내용과 형식에 일절 조건을 달지 않았다. 남쪽 대통령의 첫 대중연설에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않은 것은 남북 정상의 깊은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호소에 15만 평양시민들은 뜨거운 함성과 박수로 호응했다. 남쪽의 대통령이 직접 북쪽 인민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그 자리에서 응답을 받아낸다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남과 북이 통일의 첫 단계로서 ‘남북연합’ 건설 도정에 들어섰다는 것을 이 연설보다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19일 저녁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평양 시민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왼쪽).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능라도 5·1경기장을 가득 메운 평양 시민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다.
남북이 국가연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알리는 소식은 많다.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한 것은 신호탄이라 할 만하다. 연락사무소 설치 뒤 남과 북은 24시간 상시 협의 체계를 갖추고 남북 공동의 문제를 언제든 논의할 수 있게 됐다.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남북군사합의서’는 더욱 의미가 크다. 남북은 지상·해상·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어떤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남북 사이에 정전 65년 만에 이루어진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다. 이 합의에 따라 남북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무장을 해제했고 비무장지대 안 감시초소 철수에 들어갔으며, 서해 분쟁지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자는 논의를 시작했고 한강·임진강 하구를 함께 이용하기 위한 공동조사에 착수했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이 본격화하고 경제협력이 전면화하면 ‘한반도 경제 공동체’ 건설 작업은 더욱 속도를 높일 것이다. 남북이 체제의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로 통하는 남북연합 시대에 성큼 다가서는 것이다.

물론 아직 난관이 남아 있고 장애물도 여럿이다. 남북의 전면적인 화해·협력이 실현되려면, 외부 환경이 우호적인 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 관건은 한반도 긴장의 기본축인 북-미 적대관계가 청산되는 것이다. 이 목표에 도달하려면 북한의 비핵화 약속이 실행돼야 하고 여기에 상응해 북-미 관계가 정상화돼야 한다. 지금 북-미는 비핵화 조처가 먼저냐, 상응조처가 먼저냐를 놓고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2차 정상회담은 예고됐지만 상대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충분치 못하다.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가까운 시일 안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김 위원장의 답방은 남북 정상의 교차방문 정례화를 현실로 만듦으로써 남북의 전면적인 화해·협력 시대를 앞당기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 김 위원장이 비핵화 완수 의지를 남녘 동포들 앞에서 밝힌다면, 북-미 협상의 교착 국면을 돌파하는 데 큰 동력이 될 것이다. 두 정상이 서울에서 남북협력 의지를 밝히는 것은 그 자체로 미국에 비핵화 협상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압박 효과를 낼 수 있다. 북쪽 지도자가 남쪽 땅을 밟음으로써 남북의 결속이 강화되고 북-미 비핵화 협상이 촉진될 수 있다면, 그것은 해볼 만한 도전이다. 김 위원장의 이른 답방을 기대한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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