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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29 18:09 수정 : 2018.12.03 19:02

안재승

논설위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를 잃은 5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됐다.”(<한국경제> 8월24일) 이튿날 김용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괴물이 노동취약계층의 국민들을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며칠 뒤 이 기사는 ‘가짜뉴스’로 밝혀졌다.

며칠 전엔 “소득주도성장 때문에 국민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국적 상실자’ 통계를 근거로 <뉴스1> 등이 24일 “국적 포기자가 올해 1~10월 3만284명으로 최근 10년 중 가장 많았다.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 등으로 외국에서 새 삶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란 분석이 많다”라고 보도했다. 25일 송희경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 살기 위해 탈한국을 하고 있다”는 논평을 냈고, 26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이 이 논평을 인용해 다시 기사를 썼다. 또 가짜뉴스다.

그래픽 김지야
법무부에 확인한 결과, 올해 ‘국적 상실자’가 증가한 것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인명부 작성을 위해 그동안 국적을 옮긴 사람들의 국적을 집중적으로 정리했기 때문이다. 행정적으로 국적 상실자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4·13 총선이 있었던 2016년 1~10월의 국적 상실자는 3만1723명으로 올해보다 많았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민을 많이 가는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국적 상실의 기준이 되는 시민권을 얻으려면 영주권 취득 이후 5년 이상 걸린다. 올해 시민권을 얻었다면 최소 5년 전에 이민을 결정했다는 얘기다. 소득주도성장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이렇게까지 엉터리는 아니더라도 객관적 근거와 합리적 논리 없이 소득주도성장을 공격하는 기사나 주장은 부지기수다. ‘소득주도성장은 악’이라는 프레임을 짜놓고 경제지표가 나쁘게 나오면 모두 소득주도성장 탓으로 몰아간다. 한국 경제가 마치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것처럼 과장한 뒤 그 원인으로 소득주도성장을 지목한다. 기승전-소득주도성장이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아예 “이번 정기국회에서 소득주도성장 ‘한 놈’만 패는 집중력을 보이겠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의 공격은 소득주도성장 가운데 최저임금에 집중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고용과 소득분배 악화에 영향을 준 것은 맞다. 의욕에 비해 준비가 부족했던 정부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그 원인을 최저임금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빈곤 고령층 증가, 자영업 과잉 공급, 온라인 거래 급증, 사드 여파에 따른 중국인 관광객 감소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실증적 통계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진작하고 내수를 살려 투자와 고용 확대로 이어지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정책 방향이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주는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하나의 정책 수단이다. 임금노동자뿐 아니라 저소득 자영업자의 소득도 보전해주는 근로장려금(EITC) 확대,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지급 등은 올해 하반기에 시행됐거나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주거·의료·교통·통신·교육비 등 핵심 생계비 부담을 줄이는 것도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방안이다. 중소기업과 가맹점·대리점 등이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도록 불공정거래를 바로잡는 것도 대책 중 하나다.

소득주도성장이 저성장과 양극화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아직까지 가시적 성과를 뚜렷하게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반세기 이상 이어져온 ‘대기업 독식 경제’를 바꾸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 다듬어지고 보완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빈약한 근거를 내세워 ‘소득주도성장 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경제로 포장한 정치적 주장이다. 어떻게든 문재인 정부를 흔들겠다는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인다. jsahn@hani.co.kr

▶ 관련 기사 : 국적 포기 급증? 시민권 취득에 최소 5년…“전 정권 때 신청자 많아”

▶ 관련 기사 : 김수현 정책실장 “소득주도성장 큰 틀에서 수정 계획 없다”

<바로잡습니다>

애초 10월29일 칼럼에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올해 국적 포기자가 최근 10년 중 가장 많다.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 등으로 외국에서 새 삶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확인한 결과 주 의원이 보도자료를 낸 게 아니라 주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통계를 근거로 일부 언론이 이렇게 보도한 것이어서 이를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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