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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04 17:23 수정 : 2018.12.04 19:19

박병수
논설위원

‘9·19 남북 군사합의서’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애초 몇몇 보수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며 반론을 이끌었고, 군 출신 인사 일부도 반대 목소리에 적극 합류하고 나섰다. 얼마 전엔 국방부 장관 출신이 포함된 ‘안보를 걱정하는 예비역 장성 일동’이 토론회를 열고 대국민 성명서를 내어, 9·19 군사합의서 반대 목청을 돋웠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9·19 군사합의서가 한국군의 손발을 묶어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서해 완충구역 설치로 북방한계선(NLL)이 무력화되고 서북 5도가 고립됐고,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공중 전력의 감시·정찰 기능이 약화됐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도 우리보다 3~5배 많은 해안포에 덮개를 씌웠고, 지피(GP·감시초소) 철수로 비무장지대(DMZ) 방어망이 엷어지는 것을 감수했다는 것 등엔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9·19 합의는 남북 간 긴장 완화와 우발충돌 방지를 겨냥하고 있다. 당연히 군사력 운용을 쉽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조처가 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군의 손발을 묶었다’는 평가가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북한군의 손발 역시 묶였다’는 것도 반대쪽 접시에 제대로 올려놓아야 저울추의 균형이 잡힌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9월19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9·19 군사합의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합의 내용의 이해득실을 따져볼 순 있다. 그러나 우리 군이 무장해제라도 당해서 당장 어떻게 될 것처럼 불안을 부추기는 건 사실 왜곡이다.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 국방부 국정감사 때 공개한 내용을 보면, 이번 9·19 합의 내용은 과거 정부 때부터 검토해왔던 것들이다. 실제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군비통제계획’에는 최근 논란이 불거진 군사분계선(MDL)과 북방한계선 주변에 완충구역을 설정하는 방안 등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 군비통제계획서엔 “북한이 소극적일 땐 경제적 지원을 지렛대로 설득한다”는 내용까지 있다고 한다. 2011년이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바로 이듬해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였던 시기다. 9·19 합의 반대론의 논지를 빌리면, 이런 위험천만한 시점에 군이 스스로 무장해제를 계획했다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얘기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당시 군비통제 업무를 관장했던 군 장성이 이제 와서 9·19 합의 반대의 선봉에 선 모습에서는 ‘내로남불’ 말고는 다른 표현을 떠올리기 어렵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불리한 내용도 있고, 거꾸로 유리한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눈앞의 유불리가 전부는 아니다. 남북 정상은 ‘4·27 판문점 선언’에서 “단계적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9·19 합의는 그 첫걸음이며, 군비통제와 군축의 더 긴 과정에 녹아들 단기적인 손해와 이득이다. 이 과정은 남북 간 긴장을 누그러뜨려 북한이 더 쉽게 비핵화를 선택하도록 촉진하는 구실도 할 것이다. 북한을 어떻게 믿느냐는 반론도 있다. 북한군이 합의를 지키는 척하다 도발하면, 우리만 당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군이 합의를 어기는 순간, 우리 군도 더는 9·19 합의에 구속될 이유가 없어진다. 북한군이 우리 군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발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남북 간 군비통제는 사회의 구조 변화 측면에서도 불가피하다. 군은 2020년대 중반 이후 병력을 50만명 수준에서 유지할 계획이지만, 인구 절벽과 복무기간 단축 등으로 병력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북한도 출생률 저하를 겪고 있고, 대규모 병력 유지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힘겹다고 한다. 군비통제와 군 감축은 남북 간 이해가 맞물린 선택이 될 수 있다.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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