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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08 17:20 수정 : 2019.01.08 19:37

고명섭
논설위원

베르?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사상 최악의 전투로 기록돼 있다. 열달 동안 계속된 이 전투에서는 전쟁에서 흔히 보이는 오판과 실책뿐만 아니라 기이한 착오도 벌어졌다. 그 한 사례를 보(Vaux) 전초기지 공방전에서 볼 수 있다. 베르?窩막 진격하던 독일군에겐 먼저 보 기지를 점령하는 것이 선결과제였다. 1916년 3월8일 밤, 독일군 사단장에게 최전방 기병대장의 보고가 들어왔다. ‘세개 중대와 함께 보에 도달했다’는 것이었다. 사단장은 즉각 상부에 ‘보를 점령했다’고 알렸다. 날이 밝자 수백개의 쌍안경이 기지를 향했다. 기지 상공에 독일 깃발이 펄럭이고 기지 위로 독일군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감격한 독일 황태자는 사단장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때 전령이 사단 지휘부에 도착해 새로운 소식을 알렸다. 모든 것이 착각이고 진지는 여전히 프랑스 수중에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잘못됐던 것일까. 착오는 ‘보 도달’이라는 최초 보고를 ‘보 점령’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했다.

지휘부는 사태를 제대로 인식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처구니없는 착각이었다. 이것이 ‘선입관의 마법’이다. 선입관이 일단 머릿속에 들어앉으면 사물은 그 선입관에 따라 재단되고 인식된다. 사단 지휘부의 쌍안경은 기지 앞에 어른거리는 깃발과 병사를 보았을 뿐이지만, 그것을 점령의 증거로 받아들였다. 선입관에 어긋나는 다른 사실들은 무시했다. 이런 일은 전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정치·외교의 영역도 선입관의 지배를 받는다. 단적인 사례를 북-미 관계에서 볼 수 있다. 워싱턴 정가와 미국 주류 언론을 지배하는 ‘북한 불신’이라는 선입관이 그것이다. 북한의 모든 발언은 이 선입관에 따라, 이 선입관에 어울리게 재해석된다. 선입관을 지지해주는 말은 주목을 받고 선입관의 틀에 맞지 않는 말들은 버려진다. 액면대로 받아들여도 될 말도 의심 어린 시선 아래서 ‘이면 읽기’의 대상이 된다. 이래서는 상대의 말에 담긴 진심이 전달될 길이 없다.

이런 일이 이번 ‘김정은 신년사’에서도 되풀이됐다. 김정은은 ‘완전한 비핵화가 나의 확고한 신념’이라고 밝히면서 ‘고질적인 주장에서 대범하게 벗어나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기’를 미국에 요구했다. 북-미 관계를 언급한 문장 대부분에 신뢰를 통한 문제 해결 의지를 실었다.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된 ‘새로운 길’이라는 표현조차 주저하고 고심한 흔적을 앞뒤로 짙게 남겼다. 그런데도 미국 언론은 바로 이 문장에 초점을 맞춰 ‘김정은이 아주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고 보도했다.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널리 퍼진 선입관을 따라 이 해석이 자가 증식을 거듭하면, 결국 ‘올리브 가지’는 사라지고 ‘날카로운 가시’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불신이라는 인식론적 장벽이 ‘북-미 신뢰’를 키워나갈 길을 미리 봉쇄하는 것이다.

이런 선입관에 붙들린 ‘게으른’ 보도와 논평이 워싱턴 정가를 압박하고 북-미 협상에 걸림돌을 만들어냈다. 도널드 트럼프는 사적인 욕망 때문이든 기존 경로에 대한 무지 때문이든 남다른 통찰력 때문이든 이 완강한 선입관에 덜 물들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트럼프의 힘에만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 북-미 관계 전환을 막는 이 오래된 선입관을 깨부수지 않는 한,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정착이라는 한반도의 목표는 성취하기 어렵다. 북한 불신이라는 인식론적 장벽과 이 장벽에 기댄 미국 주류 사회의 게으른 해석을 뚫고 나가는 힘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올해 비핵화 협상도 지난해처럼 교착을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남-북-미 지도자들의 단호한 각오와 분발이 필요한 때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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