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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07 16:56 수정 : 2019.05.07 18:58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가 열렸던 3월 29일 오전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 모형항공기 뒤로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파장은 창대했지만 시작은 미약했다. 그룹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핵심 계열사를 매각해 그룹을 사실상 해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휴직 신청을 받게 된 사태의 실마리는 ‘감사의견 한정’이라는 건조한 회계 용어 한마디였다.

아시아나항공은 외부감사기관인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한정’ 의견을 받은 지 나흘 만인 3월26일 ‘적정’ 의견을 받아냈지만, 한번 잃은 신뢰를 되찾기엔 이미 늦은 터였다. 영업손실과 부채가 늘어난 사업보고서를 받아든 것보다는 채권단을 비롯한 자본시장에서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찍힌 불명예 딱지가 뼈아팠다.

사태를 되짚어볼 때 새삼 의아한 것은 회계 문제의 일차적 책임자인 기업 내 감사위원회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외부감사기관이 부적정 회계를 지적하고 경영진에 수정을 요구하는 동안 내부통제 조직은 아무것도 몰랐던 것일까, 알고도 모른 체했던 걸까?

올해 주주총회 때까지 아시아나항공의 감사위는 3명의 사외이사(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 한대우 전 산업은행 이사,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로 짜여 있었다. 박삼구 회장 출신 대학의 총장, 그룹 주채권은행의 임원, 금융감독 당국의 수장 출신이란 이력이 도드라져 보인다. 감사위원 자질의 두가지 핵심으로 꼽히는 독립성과 전문성보다는 외풍 차단 용도에 더 중점을 뒀다는 인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나항공 사업보고서에 적혀 있는 감사위의 활동 내용 또한 미심쩍다. 회사가 문제를 안고 있던 지난 한해 동안 감사위 회의는 2월7일 딱 한번 열렸을 뿐이었다. ‘내부회계 관리 운영 실태 보고서 승인의 건’에 만장일치로 찬성하는 결론을 내린 자리였다. 자본시장에선 충당부채, 마일리지 문제 같은 회계 현안이 얼추 알려져 있었음에도 감사위에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회사 신뢰성에 중대한 타격을 준 사안에 무지했거나, 알고도 방치했던 셈이다.

감사위가 독립·전문성과 멀어 보이는 건 아시아나항공만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여기게 하는 근거 자료가 있다. 삼정케이피엠지(KPMG)가 올해 1월 펴낸 ‘국내 감사위원회 전문성과 다양성 현황’에 실린 ‘2017사업연도 감사위원 경력 분포’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감사위원 1006명 가운데 회계 및 재무전문가는 134명으로 13.3%였다. 재계 26.9%, 학계 23.0%, 관료 17.1%, 법조인 12.8% 차례였다. 기업 내부통제의 최후 보루라는 고유의 기능보다는 외풍 차단용 병풍 노릇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감사위는 외환위기 뒤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일정 규모(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에 두게 돼 있는 내부통제 조직이다. 3분의 2 이상을 사외이사에서 뽑도록 하는 것은 경영진에서 한발 떨어져 회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한다는 취지다. 정부 조직에 비유하자면 국회 아래 설치된 미국의 감사원과 비슷한 임무다. 병풍 노릇이 아니라 내부의 습기와 곰팡이를 제거하는 햇빛 구실이다.

국내 회계부정 사건의 대표 격인 대우조선해양·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문제에서도 감사위원들의 행태나 책임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가려졌다. 시혜나 보은 차원에서 뽑혀 법상 권한과 달리 실질 권한이 작으니 책임도 작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대통령(대표이사 사장)이 국회의장(이사회 의장)을 겸하는 체제에서 감사원(감사위원회)이 제 역할을 못 하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 있는 형국에 비유할 수 있겠다.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정 외부감사법에 따라 감사위의 역할과 책임이 커진 것에 맞춰, 회계부정에 개입하거나 적절한 조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받는 처벌 수위도 높아졌다. 관성적으로 병풍용 명망가를 뽑는 일을 계속하다가는 자칫 기업을 위기에 빠뜨릴 뿐 아니라 감사위원들의 처지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감사위원 자리를 제안하는 쪽이나 수락하는 쪽 모두 신중해져야 할 것 같다. 이미 재직하고 있는 이들의 처지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기업의 건강성, 직원들의 생계 안정과도 연결되는 사안이다.

김영배
논설위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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