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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1 17:55 수정 : 2019.06.11 19:29

그래픽 김지야

“야당이 진정으로 국민을 걱정하고, 민생을 생각한다면 당장 추가경정예산안 심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번 추경은 ‘고용 절벽’ 앞에 절망한 청년들과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걱정하는 실업자들을 위한 절박한 추경이다. 다시 한번 추경은 타이밍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야당은 조건 없이 신속히 추경 처리에 임해주기를 바란다.”

더불어민주당의 논평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8월11일 김현아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낸 논평이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7월26일 11조8천억원 규모의 추경을 국회에 제출했다.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투자 부진이 지속되면서 0%대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추경 추진 배경을 밝혔다. 이 추경은 38일 만인 9월2일 국회를 통과했다.

문재인 정부가 4월25일 국회에 제출한 6조7천억원 규모의 추경이 50일이 다 되도록 국회에 상정조차 안 됐다.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을 하며 국회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때 추경은 2013년, 2015년, 2016년 모두 3번 편성됐는데, 국회 통과에 각각 19일, 18일, 38일이 걸렸다. 문재인 정부의 추경은 2017년과 2018년엔 각각 45일이 걸렸고, 올해는 지금 봐선 기약이 없다.

자유한국당은 “지금 경기는 추경으로 풀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맞는 얘기다. 다만 누구도 지금의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를 추경만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종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며 추경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21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4%로 낮추면서 “한국 정부가 성장세 둔화에 대응해 정부 지출을 늘리는데 특히 이번 추경이 경제 활력을 제고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노동 생산성 향상 등 구조개혁 정책을 동반한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자유한국당은 또 이번 추경이 “내년 총선용”이라며 반대한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 시절 2013년 추경은 2014년 지방선거용이었고, 2015년 추경은 2016년 총선용이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총선에선 왜 졌는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고 고질적인 ‘발목잡기’다.

추경만 발목이 잡혀 있는 게 아니다. 경제 활성화 법안들도 국회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빅데이터 산업 육성을 위한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 등 이른바 ‘데이터 경제 3법’, 산업 재편 촉진을 위한 ‘기업 활력 제고 특별법 개정안’, 국내 복귀 기업 지원을 위한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법 개정안’(유턴 기업 지원법), 최저임금 속도 조절을 염두에 둔 ‘최저임금법 개정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이다. 모두 경제 활력 제고와 기업 경영 활동 지원이 목적인 법안들이다. 자유한국당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고 일부 법안은 정부 여당이 지지층의 비판을 무릅쓰면서 추진하고 있다.

올해 들어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는 단 사흘 열렸고 4월 이후에는 ‘민생 법안’이 한건도 처리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은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때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기승전-소득주도성장’ ‘기승전-최저임금’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이라며 “재정 확대를 위한 예산과 이념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것을 총선까지 어떻게 막아내느냐가 우리 당의 과제”라고 말했다. 정부의 손발을 묶어 경제정책이 실패하도록 만들겠다는 뜻이다. 경제가 더 나빠져야 내년 4월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유리해질 것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당리당략만 있을 뿐 국민은 안중에 없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4일 ‘경제대전환위원회’ 출범식을 열었다. 황교안 대표는 “벼랑 끝에 몰린 민생경제를 구하는 동시에 경제의 근본 체제를 바꿀 정책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좋은 얘기다. 다만 ‘경제 대전환’은 집권을 하면 해라. 지금은 국회로 돌아와 추경과 법안을 심의할 때다. 국회를 여는 걸 무슨 결단인 양 착각하지 마라. 국회의 예산·법안 심의는 국민에 대한 의무다.

안재승
논설위원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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