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8 18:05
수정 : 2019.06.1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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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사령부가 2018년 6월29일 73년 만에 서울 용산을 떠나 경기 평택의 험프리스 기자로 옮겨 개관식을 열었다. 사진은 개관식 축하 예포를 발사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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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미군기지에 있던 한미연합사령부가 돌고 돌아 결국 경기도 평택의 험프리스 미군기지로 옮겨가기로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15년 전 한-미가 공식 합의했던 이전 장소가 다시 낙점된 것이다. 결국엔 이렇게 원점으로 되돌아올 것을, 왜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는 수고를 해야 했을까. 연합사는 한반도 유사시 전쟁을 지휘할 군 최고사령부다. 아무리 어디에 둘지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중요한 전쟁 지휘부라 하더라도, 그동안 이를 둘러싼 오랜 논란과 혼선은 지나치게 소모적이지 않았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달 초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합의한 연합사의 평택 이전은 2004년 1월 한-미 간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에서 이미 합의된 내용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권과 사회의 반응이 전혀 달랐다. 15년 전 연합사의 평택 이전 계획은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며 온 나라를 들썩였다. 야당인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과 성우회 등 예비역 단체,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안보 공백’을 우려하며 ‘이전 반대’ 여론을 주도했다. “연합사의 한강 이남 이전은 수도권 방어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강력한 반발이 나왔고,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주장하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색깔론에 가까운 주장까지 난무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이견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로 연합사가 평택으로 가면 서울의 국방부나 합참본부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정도의 기술적 우려였다. 정치권에서도 별로 문제를 삼지 않았다. 당장 안보가 위태로워지기라도 하듯 호들갑 떨던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안보 환경이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도 이처럼 우리 사회의 수용성이 크게 다른 것은, 15년의 세월을 거치며 사안의 민감도가 어느 정도 퇴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동안 진행된 논의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15년 전 우리 사회 일각의 격렬했던 반응과 반발은 합리적 비판을 넘어 정치적으로 동기부여된 과잉 대응이 아니었을까 의심이 든다.
지난해 우리 사회는 9·19 남북군사합의를 놓고 논란을 빚었고, 논란은 일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야당과 일부 예비역 단체, 보수언론은 이번엔 남북 군당국 간 긴장완화 방안을 담고 있는 합의서의 내용을 두고 “일방적인 무장해제”라거나 더 나아가 “사실상 백기 투항”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과연 15년 뒤엔 9·19 합의에 대해 또 어떻게 반응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한미연합사의 평택 이전 계획을 처음 번복한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 한-미는 2014년 10월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와 함께 연합사의 서울 용산 기지 잔류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10월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의에서 ‘연합사를 서울에 남겨두되, 다만 용산 기지가 아닌 국방부 영내로 옮기는 것’으로 바뀐다. 빈센트 브룩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그해 말 이런 내용의 양해각서에 서명까지 했으나, 연합사 이전 장소는 지난해 11월 로버트 에이브럼스 신임 주한미군사령관 부임 이후 다시 평택으로 조정됐다.
문제는 이런 합의 번복의 과정에 합리성과 투명성이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연합사의 용산 잔류를 결정한 배경에 대해 “연합사가 서울에 있어야 유사시에 국방부나 합참과 원할한 업무 협조를 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이번 정부는 주한미군 지휘부가 대부분 평택에 주둔하게 된 사정을 들어 “연합사가 평택으로 이전하면 주한미군과 완전한 동일체로 근무하기 때문에 연합작전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불과 3~4년 사이에 이렇게 평가와 강조점이 달라진 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설명을 떠올리게 한다.
국방부는 지난해 연합사의 국방부 영내 이전 준비 작업을 80% 남짓 완료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막판 돌연 평택 이전으로 번복하는 바람에 이들 비용은 모두 매몰 처리될 수밖에 없다. 연합사 이전을 놓고 더는 이런 불합리가 되풀이되지 않길 기대한다.
박병수
논설위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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