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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7 18:49 수정 : 2019.06.27 20:24

신승근
논설위원

무모한 건지 대범한 건지 뭘 모르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우리 의원들의 의견이 국민의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합의한 국회 정상화 방안을 2시간 만에 걷어찬 의원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감싸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언변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이런 국민 의견도 있다. 국회의원에게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일한 만큼 수당을 지급하는 ‘일하는 국회법을 만들자’. 찬성 80.8%, 반대 10.9%. 지지 정당, 이념, 지역 관계없이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다. 지난 10일 ‘리얼미터’ 여론조사다.

이런 국회는 없었다. 올해 들어 딱 네차례 본회의를 열었다. 모든 정당이 참여한 본회의는 4월5일이 마지막이다. 80일을 허송세월하다 지난 24일 네번째 본회의가 열렸다. 자유한국당의 몽니를 보다 못한 여야 4당이 국회법 제5조 2항에 의무로 명시된 6월 임시국회를 소집했다. 그런데도 버틴다. 정부가 낸 추경안을 63일째 심사조차 안 한다. 이 때문에 청년들은 추가고용장려금을 못 받는다. 강원 산불 피해 복구비 지원도 가로막혔다. 신경 안 쓴다. ‘총선용 선심예산’이란 꼬리표를 붙였고, 예결위원장은 우리 당 몫이니 어쩔 수 없을 것이라며 무작정 버틴다. 정말 대범하다.

꼬박꼬박 세비는 챙겨갔다. 국회의원 1인당 연간 세비는 1억5176만원이다. 수당,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 입법 및 정책개발비, 여비가 포함된다. 지난 4월5일 이후 83일을 놀고먹었으니 자유한국당 의원 한 사람당 3450여만원의 세금을 축냈다. 의원실 운영비와 보좌 인력 월급이 연간 6억원 정도 된다 하니 합산하면 의원 1인당 1억7천여만원씩 무위도식한 셈이다. 국민 입장에선 공복인지 세금 도둑인지 의문이 들 만하다. 직장인 같았으면 일찌감치 해고됐다. 사규 위반, 업무 태만, 직무 유기… 사유는 많다. 오죽하면 국민들이 ‘국회의원 소환제’ 청원까지 나섰겠나 싶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대범하다. 민주당에 “전향적 제안”을 요구한다.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고소고발된 44명의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소 취하에 대해 명시적인 답을 달라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야 속 터지겠지만 우회로는 없다. 국회선진화법은 해머를 동원한 육탄전이 난무하던 동물국회에 대한 반성의 결과다. 회의 방해는 5년, 재물 손괴는 7년 이하 징역으로 엄벌하는 국회법 제15장은 자유한국당이 여당 시절 너무 엄하다는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법제화했다. 친고죄도 아니다. 민주당이 취하한다고 수사가 중단되는 것도 아니다.

상임위원회마다 쫓아다니며 훼방놓지 말고, 조건 없이 등원해야 한다. 그나마 체면을 덜 구기는 방법이다. 패스트트랙 철회를 선결 조건으로 내건 황교안 대표가 그 조건을 철회하는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에서도 무조건 등원 목소리가 나온다. 장제원 의원은 “조건 없는 국회 복귀를 통해 주도적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지지층에게 더 화끈해 보였을 것이다. 그런 기회들을 놓치니까 점점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틀린 말이 없다. 국회에 들어와 추경, 입법 등 밤새워 밀린 숙제를 하는 게 등 돌린 민심을 되돌리는 길이다.

놀고먹은 날만큼 세비도 반납하는 게 옳다. 이미 2016년 국민의당 의원 38명이 국회 개원이 법정 시한보다 늦어지자 이틀치 세비 2872만원을 반납한 전례도 있다. 마침 의원들이 무노동 무임금 관련 법안도 냈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국회 불참 의원 세비를 삭감하는 ‘반쪽국회 방지법’을, 정성호 의원은 국회 불참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환수하는 ‘국회 파행 방지법’을 발의했다. 회의 방해죄 판례 확립을 통해 국회선진화법을 뿌리내리고,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담은 세비 반납을 법제화한다면 80여일 놀고먹은 국회가 정치 발전에 기여했다고 자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프랑스, 벨기에, 포르투갈, 폴란드, 스웨덴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국회 불출석 일수만큼 세비를 삭감한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은 상임위 불출석 각각 3회, 4회면 상임위원 자격도 박탈한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인도, 터키는 본회의 불출석 의원에 대한 제명제도 시행한다.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skshin@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 라이브 6월27일| 뉴스룸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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