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1 17:58
수정 : 2019.07.11 19:03
안재승
논설위원
<조선일보>가 지난 6일치 신문 1면에 ‘한국 떠나는 국민, 금융위기 후 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외교부에 따르면 해외이주 신고자 수가 2016년 455명, 2017년 825명, 2018년 2200명으로 2년 새 약 5배가 됐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그 이유로 “자산가는 국내 정치·경제적 상황을, 중산층은 환경·교육 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고 전한 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정치·경제적 불안이 자산가는 물론 중산층까지 해외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며 ‘전문가 발언’을 곁들였다. 문재인 정부가 싫어서 이민을 가는 국민이 급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튿날인 7일 오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한국을 떠나는 국민이 급증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며 “문재인 정권 포퓰리즘 시작, 그 후 1년, 2년….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이웃이, 이웃의 삶이, 우리의 꿈이 멀어져가고 있는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황 대표는 “떠나고 싶은 나라에서 살고 싶은 나라로 다시 대전환시켜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오후 이 글을 ‘황교안 “文정권 들어 해외이주 5배…우리 뭉쳐 바꿔보자”’라는 제목의 기사로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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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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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몇몇 언론이 ‘팩트체크’ 형식으로 조선일보 기사의 문제점을 짚었는데, 한마디로 이 기사는 통계를 가지고 장난을 쳤다. 해외이주 신고자 수가 증가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원인은 다른 데 있다. 해외이주 신고 사유는 크게 4가지다. 외국에 사는 친족을 따라 이주하는 ‘연고이주’, 외국 기업에 취업해 이주하는 ‘취업이주’, 투자이민처럼 이주국의 허가를 받아 진행하는 ‘사업이주’, 그리고 앞의 세 경우에 속하지 않는 ‘기타이주’다. 2018년에 연고·취업·사업이주는 거의 변동이 없었는데 기타이주만 79명에서 1461명으로 급증했다. 2017년 12월 해외이주법이 개정되면서 이미 외국에 사는 이주자들이 국민연금 수령 등을 위해 뒤늦게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전체 기타이주자 중 1395명이 이런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서류상 이주자’인 이들을 빼면 2018년 실제 해외이주자는 805명으로 2017년의 825명보다 되레 20명 줄어들었다. 조선일보 기사는 해외이주 신고자 통계에서 구체적 사유는 무시한 채 전체 숫자만 가지고 사실을 왜곡했다.
조선일보가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황교안 대표가 확산시키고 조선일보가 다시 기사화한 것이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11일 ‘정부의 현란한 팩트 흐리기’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친여 매체가 총반격에 나선다”고 억지를 부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다.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24일 <뉴스1>은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를 인용해 ‘“한국을 탈출한다” 국적 포기자 3만명 돌파…10년 만에 최고’라고 보도했다. 이튿날인 25일 송희경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이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 소득불평등 심화와 살기 위한 탈한국을 하고 있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다음날인 26일 조선일보는 ‘국적 포기자 올들어 3만명 넘었다’는 기사에서 “한국당 송희경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소득주도성장의 여파로 인한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 각박한 사회 현실 등 부정적 요인 때문에 외국에서 새로운 삶과 가능성을 찾으려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 또한 가짜뉴스였다. 2018년 ‘국적 상실자’가 증가한 것은 법무부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인명부 작성을 위해 그동안 국적을 옮긴 사람들의 행정 처리를 집중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서류상 국적 상실자’가 늘어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4·13 총선이 있었던 2016년엔 국적 상실자가 2018년보다 더 많았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민을 많이 가는 미국과 캐나다는 국적 상실의 기준이 되는 시민권을 얻으려면 영주권 취득 이후 5년 이상 걸린다. 2018년에 시민권을 얻었다면 최소 5년 전인 2013년에 이민을 결정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때로 소득주도성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실 이런 기사들은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정부의 잘못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언론과 야당의 중요한 사명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 선동일 뿐이다. 특히 언론은 ‘사실 보도’가 생명이다. 입맛에 맞춰 사실을 비트는 건 언론의 기본 윤리를 저버리는 짓이다. 또 그 부작용이 크다는 점에서 백해무익하다. 정부에 대한 맹목적 불신을 부추기고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악영향을 끼친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가 싫어도 그래선 안 된다.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에 말해주고 싶다. “니가 가라, 이민.”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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